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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해서 자식들 이번 설엔 오지말라고 했죠”

2018-02-13

설 앞두고 이재민 대피소 흥해체육관에 가보니
“장손이라 차례상 준비해야 하는데
집에 다시 들어가려니 너무 무서워”
연휴에 갈 곳 있으면 그나마 다행
체육관서 지내야 하는 이재민 많아

20180213
12일 포항중앙초등학교 내부 벽면이 전날 새벽 발생한 규모 4.6 지진 충격으로 파손돼 있다. 이 학교는 학기말 방학 중이어서 학생들은 등교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설을 앞두고 지진 피해 이재민들의 한숨이 깊어져 가고 있다. 여기에다 임시구호소를 운영 중인 포항시 공무원과 이재민의 식사를 도맡아 오고 있는 자원봉사자도 설 연휴를 반납해야 할 처지다.

12일 오전 지진 피해 이재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포항 흥해체육관. 이재민은 물론 이곳에 있는 공무원·자원봉사자들에게 다가오는 설 얘기를 꺼내자 이내 낯빛이 어두워졌다. 임시구호소에서 석 달째 생활하고 있는 김모씨(여·87)는 “아들과 함께 이곳에서 3개월째 생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지진으로 집으로 갈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집 벽면이 갈라지고 밤 마다 ‘쿵’하는 소리에 정상적 생활이 어렵다”면서 “그나마 설엔 큰아들 집에서 보내게 될 것 같아 다행이다. 하지만 이곳의 이재민 중엔 설에도 갈 곳이 없는 사람도 일부 있어서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자식 사랑에 귀향길을 만류하는 이재민도 더러 있었다. 신모씨(여·68)는 “설 연휴에 맞춰 서울에 살고 있는 아들네가 고향(포항 흥해)에 온다고 하길래 오지 말라고 했다”면서 “혹시나 설 때 지진이 일어나면 아들·며느리·손자가 충격을 받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서 만류했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이 장손이어서 차례상을 준비해야 하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기가 너무 무섭다. 명절 음식을 준비할지 아직까지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임시구호소에서 공동 차례를 지내길 바라는 이재민도 있었다.

11일 발생한 지진으로 임시구호소 생활을 하는 차모씨(여·68)는 “혼자 살고 있어서 지금 살고 있는 집 이외엔 명절이라고 해서 어디 갈 곳이 없다. 11일 지진에 너무 놀랐다. 집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또다시 집에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서 대피소에서 공동 차례를 지내길 소망했다.

고향에 갈 수 있는 이재민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강모씨(여·62)는 “남편 고향이 인근 지역이다. 이번 설엔 시댁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예정이다. 포항을 떠나 안전한 곳에서 설을 보내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는 설 연휴를 반납하고 이재민들을 계속 돕는다. 앞서 포항시는 자원봉사자의 피로 누적과 설 명절 봉사단체 운영의 어려움으로 지난 10일 흥해체육관 폐쇄 방침을 내렸지만, 11일 발생한 지진으로 임시구호소를 계속 운영하기로 했다. 설 연휴에도 마찬가지다.

임시구호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포항시 관계자는 “설 명절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없는 것은 안타깝지만 이재민들이 흥해체육관에서 생활하는 동안 구호활동은 계속돼야만 한다”면서 “지진 피해가 아니라도 다른 명절에도 비상 근무를 하는 게 공무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이재민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있는 지구촌공생회 한 자원봉사자는 “자원봉사자들도 설 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설과 하루 전날은 배식 봉사를 쉰다”면서 “설에도 갈 곳이 없는 이재민들이 안타깝다. 하루빨리 일상을 되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포항시는 대한적십자사 도움을 받아 오는 19일까지 이재민에 대한 식사 준비를 모두 마쳤다. 또한 이재민이 원하는 경우 공동 차례상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항시 관계자는 “설 차례상을 준비하지 못하거나 고향에 갈 수 없는 이재민들을 위해 체육관에서 차례를 지낼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3~14일 이재민 설 연휴 계획을 파악해 최종 결정할 예정”이라며 “설에도 이재민들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한편, 12일 현재 흥해체육관엔 196세대 400명의 이재민이 머물고 있다. 11일 발생한 지진으로 50여명의 이재민이 추가돼 60여개의 텐트가 더 설치됐다.

포항=김기태기자 kt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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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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