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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대나무숲’에 불어닥친 익명의 ‘미투’

2018-03-13

“환갑 넘긴 교수가 여친돼 달라”
이달들어 구체내용 속속 게시
교내 상담센터 유명무실·불신
익명 보장·파급력에 잇단 토로

미투(#Me Too) 운동이 확산되면서 온라인 익명 게시판이 대학 내 성범죄 폭로의 장이 되고 있다. 신분 노출을 꺼리는 피해자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할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달 들어 지역 대학 페이스북 ‘대나무숲’에는 교수·선배·동기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게시글에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성폭행이나 성추행 당했는지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실제 경험이 아니고서는 서술하기 어려운 내용이어서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10일 페이스북 A대학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에서 작성자는 “당시 환갑을 넘긴 모 학과 교수가 밤 10시가 넘어 나에게 긴히 줄 게 있다고 불러냈다. 교수는 그날 밤 나에게 대기업 혹은 공기업에 책임지고 취업을 시켜주겠다는 빌미로 본인의 여자친구가 되라고 했다”며 “충격을 받아 집에 가겠다고 하자 억지로 당겨 끌어안았고, 넘어진 저의 다리를 잡아 억지로 눕히려고 했다”고 폭로했다.

피해자들이 이처럼 SNS를 통해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은 우선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대나무숲의 경우 하나의 계정으로 글을 게시하고 있어 당사자가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 신분 노출 위험이 적으면 적을수록 2차피해 우려도 그만큼 적어진다. 또 전파력과 파급효과가 크다는 점도 선택의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임운택 계명대 교수(사회학)는 “그동안 인권센터 등 공공기관에 신고를 해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신고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이뤄질 뿐 아니라 집단 따돌림 현상도 있었다”면서 “때문에 피해자들은 2차피해를 입지 않고 피해사실을 말할 수 있는 또 다른 통로로서 익명성이 보장되는 SNS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나무숲에는 성범죄 폭로 외에도 각종 비리가 고발되기도 한다. 지난 9일 대구 모 대학 대나무숲에는 간호학과 교수가 자기 딸의 석·박사 과정에 특혜를 줬다는 게시글이 올라와 대학 측이 진상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에 비해 대학 내 성폭력상담센터는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경북대·영남대·계명대·대구대 등 학교별로 인권센터 또는 양성평등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양숙희 대구성폭력상담소장은 “학내 상담센터의 경우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 없이 내부 권력관계에 따라 사건이 덮이는 경우가 많았다”며 “외부 관계자가 인권센터에 자문을 해주고,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엔 학교 측에 대한 제재를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희정 계명대 인권센터 상담교수도 “피해자가 고통받지 않도록 2차피해에 대한 보호와 철저한 조사를 통한 가해자 처벌이 가능하도록 매뉴얼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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