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9(금)

“대구서도 소리가 된다는 것 알리고 싶다”

| 2018-06-13 08:15:45

대구 무형문화재 주운숙 명창

봉산문화회관 가온홀에서

남도민요 음반 발매기념 공연

“대구소리꾼 좋은무대 마련꿈”

대구 봉산문화회관에서 음반 발매 기념 공연을 가진 주운숙 선생(검정 저고리 차림)과 제자들이 마지막 곡을 끝내고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1초도 안 기다려주는 시대에 소리를 배운다고 온 아그들이 기특하다 아입니꺼. 선생은 부모와 맞잡이라 카는데 내 새끼 가르치듯이 야물딱지게 가르쳐 줄랍니다.”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보유자인 주운숙 명창(66)의 남도민요 음반 발매 기념 공연 ‘남도에 반하다’가 지난 9일 오후 6시 대구 봉산문화회관 가온홀 400여 석을 꽉 채운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불교경전을 남도민요화해 부른 ‘보렴’을 시작으로 상주모심기·사랑가 입제창·동백타령·인당수 뱃노래 등 남도민요 12곡을 불러 관객의 추임새를 자아내는 등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음반 ‘남도에 반하다’는 연초 제작돼 이번 공연을 통해 처음 세상에 알리는 것으로, 주씨와 젊은 소리패 ‘도화’가 1년 넘게 함께 작업해 일궈낸 결과물이다. 도화는 주씨와 제자 권가연·우소예씨 등 7명이 중심이 되어 만든 전문 판소리꾼 모임이다. 소리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구에서 이들이 남도민요를 하게 된 이유는 ‘조금 부족해도 대구에서도 소리가 된다’는 것을 알려보고 싶어서다. 주씨는 첫술에 배 부르지 않겠지만 남도민요 제작에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주씨의 소리 입문 시기는 30대 초반으로 비교적 늦은 나이였다. 그는 “결혼 후 모임에서 유행가를 불렀는데 가슴 한구석이 빈 듯 했다”면서 입문 당시를 회고했다. 화전놀이를 할 때 주씨가 ‘천안삼거리’라도 부르면 남다르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게 다 감출 수 없는 소리꾼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주씨의 아버지는 바로 고(故) 주광덕 명인이다.

하지만 주씨가 일곱 살 되던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떴으니 아버지에게서 소리를 배우거나 아버지의 공연을 본 적은 없다. 소리를 시작한 지 30년. 결국 주씨는 2017년 대구시 무형문화재가 됐다.

“내 손으로 밥 해먹이고 내 집에서 잠을 재워가며 가르치던 제자들이 많았지요.” 주씨는 스승 이일주 선생(국악인)이 퇴직하면서 추천한 전주 도립국악원 창악 교수직에 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지만, 30명의 제자를 두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경상도는 전라도 못지않게 소리를 잘하는 이가 많다. 주씨는 좋은 자리 대신 제자들을 안았다.

주씨는 현재 삼성창조캠퍼스 무형문화재 전수 교육원에서 문하생들에게 소리를 가르치고 있다. 소리꾼이 되려면 3인이 합이 되어야 한다. 선생은 잘 가르쳐야 하고 부모는 응원해야 하며 제자는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소리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공부를 해보니 끝이 없다는 말이 맞다”는 주씨는 소리의 세계는 무궁무진해 지금도 보름만 열심히 하면 몰랐던 소리가 난다고 한다.

대구는 판소리의 불모지로 여겨진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 큰 무대가 서면 대구 출신 소리꾼보다 서울이나 전라도에서 소리꾼을 데려 온다. 우리 지역 소리꾼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 선생으로서는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대구의 소리꾼에게 제대로 된 무대를 마련해주는 것이 소망이다.

2집 음반을 계획 중인 주씨는 남도민요의 진수로 불리는 ‘육자배기’ ‘진도 씻김굿’도 해볼 예정이다. 그는 “영남권에서 국악을 전공하고 있는 많은 후배와 학생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우리 민요를 사랑해 주고 응원해 주는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건강이 닿는 한 제자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공연을 마친 주씨는 자식 같은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어미처럼 환하게 웃었다.

글·사진=조경희 시민기자 ilikela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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