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7(토)

최첨단 IT업계 노동환경은 ‘원시시대’… 갑질괴물이 도사린다

| 2018-11-08 07:45:38

소모품 취급 받는 노동자


최근 밝혀진 정보기술(IT) 업체 위디스크 양진호 회장의 엽기적인 갑질이 사회적 공분을 사면서, IT업계의 노동 후진성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IT노조, 사무금융노조 등은 성명서를 내고 IT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촉구하고 나섰다. 두 노조는 잇따라 성명서를 내고 IT 노동자의 비정상적 노동 조건이 사건을 키웠다고 지적하며 IT업계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제2, 제3의 양진호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IT업계의 민낯은 어떤 모습일까.

“양진호 갑질 IT계 풍토서 비롯”
장기간 근무 일상…‘관행’ 취급

4명중 1명 주당 12시간 초과근무
89.6% 야간수당 지급 못 받아

하도급으로 상명하복 문화 만연
503명 중 100명만 원도급 계약

◆양진호의 갑질은 노동 후진성 때문?

지난달 말 위디스크 실소유주이자 한국미래기술 양진호 회장(47)이 회사 직원을 폭행하고 수련회 등에서 엽기행각을 벌여 물의를 빚었다. 인터넷매체 뉴스타파가 공개한 영상에는 양 회장이 2015년 4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위디스크 사무실에서 전 직원 A씨를 폭행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A씨는 위디스크를 퇴사한 후 2015년 4월 ‘양진호1’이라는 아이디명으로 위디스크 고객 게시판에 “매사에 성실히 임하면 연봉 팍팍 올려주겠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로 폭행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공개된 영상에는 ‘엽기적인 워크숍’이 담겨 있었다. 그는 2016년 강원도 홍천에서 진행된 워크숍에서 직원들에게 생닭을 죽이라고 강요한 것으로 전해진다. 영상에서는 양 회장이 직원에게 석궁을 쥐여주면서 닭을 쏘라고 하거나, 생닭을 허공에 날린 뒤 일본도로 베라고 시켰다.

이 같은 양 회장의 만행은 가혹한 노동조건과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 IT업계 풍토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제왕처럼 군림하면서 ‘갑질 퍼레이드’를 펼쳤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IT업계의 노동 후진성 개선에 힘이 실리고 있다.

IT업계는 무리한 업무일정과 비효율적인 업무관리에 장기간 노동이 일상화돼 있는 편이다. 하지만 관행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수당도 받지 못하고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하도급과 재하도급에 따른 파견 등은 군대식 상명하복에서, 나아가 갑질문화를 뿌리 내리게 된다. 직원들의 정당한 권리가 묵살되는 것은 물론 언제든지 교체가능한 일회용 소모품으로 취급받는 부조리가 구조화된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갑질 괴물’이 출현한다.

정보기술 업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임인 IT산업노조는 “IT 업계에 만연한 구조적인 문제가 이 사태의 배경에 짙게 깔려 있음을 다시 확인한다. IT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아니었다면 양진호 회장의 갑질이 이토록 극단으로 치달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징어잡이 배’로 불리는 IT업계

사회 전반적으로 장시간 노동은 빠르게 감소하고 있지만, 한밤중에도 불이 훤히 켜져 ‘오징어잡이 배’로 불리던 IT 단지 풍경은 여전히 크게 바뀌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최근 한국정보통신산업노조(IT 노조)와 공동으로 IT 노동자 5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4명 가운데 1명은 1주당 평균 초과 노동시간이 12시간을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설문 응답자 가운데 초과 노동시간이 12시간 이상인 사람은 127명(25.3%), 6~12시간 미만은 123명(24.5%), 6시간 미만은 187명(37.3%)인 것으로 조사됐다.

휴일 근무도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평균 휴일 출근 횟수를 묻는 설문에 ‘1~3회’라고 답한 응답자는 38.8%, ‘4~6회’는 7.4%, ‘6회 초과’라는 답변도 5%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7월부터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으로 주당 노동시간 상한은 52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이는 300인 이상 기업에 적용되는 것이어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사업장이 많은 IT 업계에서는 미적용 사례가 많았다.

이번 설문에서 장시간 노동은 만연해 있는데, 수당을 제대로 받는 경우는 일부에 그치고 있다. ‘(밤 10시 이후 50%가 가산된) 야간수당 지급 여부’에 대해 ‘지급받는다’는 응답 비율은 10.4%에 그쳤다. 10시 이후 연장근무에도 야간수당을 지급받지 못한다는 응답은 52.6%, 계약서상 정규 노동시간이어서 수당을 못 받는다는 응답도 17.5%에 이르렀다.

또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와 근무형태는 같으면서도 개인사업자로 취급 받는 ‘프리랜서’ 형태의 고용은 IT 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단기간에 고강도 노동을 투입하는 IT 업계 생리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정한 집단이나 회사에 소속되지 않는다’는 프리랜서의 사전적 정의와 달리 일반 회사원처럼 매일 아침 같은 곳으로 출근해 팀 일원으로 일하며 월급을 받지만 대부분 노동권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것이다. 노동자와 사업자 사이에 끼인 채 IT 업계의 고강도 노동을 감내하는 게 이들이 처한 현실이다.

하도급에 재하도급, 심지어 재재하도급 업체를 통해 필요할 때만 노동력을 공급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전체 응답자 503명 중 원도급과 계약을 맺고 있는 사람은 100명에 불과했다. 1차 도급업체 소속이 111명, 2차 하도급업체 소속이 101명, 3차 이상 용역업체 소속이 75명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근무처는 원도급이 201명으로 가장 많았고, 1차 도급업체가 122명으로 뒤를 이었다. 대다수가 파견 근무를 하고 있는 셈이다. 1~3차 하도급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 중 소속사가 아닌 원도급 회사로부터 업무지시를 받는다는 응답도 70%에 달했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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