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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제2회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수상자 정한아 시인

2019-01-19

“수학과나 통계학과를 나왔어도 쓸 수 있는…그래서 詩는 자유다”

제2회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수상자 정한아 시인
정한아 시인은 “구상 선생님이 시에 구구절절 남겨놓으신 ‘비극을 아는 자의 명랑’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정한아 시인의 ‘울프 노트’가 제2회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정한아의 ‘울프 노트’는 사회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자본주의의 묵직한 문제들을 진지하게 제기하면서도 새로운 시적 장치와 발화 형식을 가동하고 있다”고 평했다.

▶소감을 말해달라.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내 시가 상을 받았다고?’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건가?’ ‘기쁘다. 너의 기쁨은 어디서 비롯된 거지?’ ‘상금 때문인가?’ 와 같은 모순된 말들이 떠올랐다. 저 말들을 모두 치우면 상투적인 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쓰겠습니다’가 된다.”

▶구상 선생님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있나.

“물론이다. 구상 선생님의 작품으로 ‘초토의 시’가 자주 회자되지만 나는 ‘까마귀’ 연작을 재미있게 읽었다. 까마귀의 불길한 예언자적 면모는 어딘지 희비극적인 데가 있어 마음에 든다. 이것은 아마 기질에서 비롯한 것이라 생각한다. 달콤한 환상을 벗긴 뒤 세상을 일갈하는 까마귀의 듣기 싫고 이상한 울음소리는 위선에 대한 미움을 전면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자기 자신을 신화화하거나 영웅화하거나 유아론에 빠뜨리지 않아 계속 듣고 싶은 풍자적인 음악을 닮았다. 그 음악들은 물론 전혀 주류의 것이 아니다. 감각적으로 완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완미한 감각이 당신을 어떻게 속여 왔는가를 깨닫게 해준다. 거기서 오는 통쾌함을 좋아한다.”

▶철학과를 나와 시인이 됐다.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다. 응용통계학과나 수학과를 나왔어도 쓸 수 있다. 전공 학과가 없어도 쓸 수 있다. 그럴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철학과에 다니면서 내 ‘의심병’이 깊어진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의심할 줄 아는 직관을 가진 사람은 그가 무엇을 전공했건 새로운 국면을 보고 성찰하는 데 확실히 유리한 포지션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시는 자유이니까.”

▶시를 쓰게 된 계기는.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사춘기 때 치솟은 호르몬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체시계가 느린 어린 시절에는 하루가 몹시 길게 느껴지니까. 호르몬은 치솟고 시간은 많고. 집에 있는 문학전집에 질렸을 무렵 부모님의 책장에서 이런저런 책들을 꺼내 읽고 매일 일기를 쓰다가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아마도 아버지의 오래된 김소월 시집이나 해외 시선집, 연습장 표지나 책받침, 껌종이 등에 쓰인 시들이 영향을 준 것 같다.”

▶현재까지 시집을 2권 냈다. 간단히 소개를 해달라.

“첫 시집 ‘어른스런 입맞춤’은 2011년에 나왔다. 등단 5년 만이었다. 당시로서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인데 ‘울프 노트’가 작년에 나왔으니 두 번째 시집은 더 오래 걸린 셈이다. 매사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딱히 빨리 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 첫 시집의 크루소씨 연작을 한 곳에 몰아둔 것 말고는 딱히 배치에 신중을 기하지 않았고, 두 시집 모두 대개 쓰인 순서대로 실었다. 두 시집의 가장 큰 차이는 내가 그만큼의 시간을 지나왔다는 데 있다. 첫 시집의 첫 시와 두 번째 시집의 마지막 시 사이에는 적어도 12년의 나이 차이가 있다.”

▶시를 쓸 때 영감을 얻는 방법이나 자신만의 습관이 있나.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간접적이고 직접적인 경험과 생각, 감각, 상상, 인상 등으로부터 서서히 자라다가 어느 날 기록되기 시작한다. 일종의 발효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런 이유로 많이 자주 쓰지는 못한다. 읽는 것도 아주 오래 걸린다. 만화책도 한 시간씩 읽는다. 내가 늘 관심을 갖는 것은 여전히 인간이다. 특히 짐승 같은 인간과 성자 같은 인간이 한 범주 안에 있으며 생각보다 이 두 측면이 매우 긴밀하다는 점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범죄학과 신학에 늘 흥미를 느낀다.”

▶이번 수상 시집 ‘울프 노트’에 울프란 무엇인지. 첫 시집에도 울프가 나온다.

“울프씨가 처음 등장한 것은 첫 시집의 ‘론 울프씨의 혹한’이라는 시에서였다. 연작을 쓸 생각을 처음부터 했던 건 아니다. 처음 울프씨가 튀어나왔을 때 그는 어떤 인물로부터 주체성을 떼어내어 그 주체성에 이름을 붙인 것 같았다고나 할까. 우리 인간이 가진 단독적이고 주체적인 우리 자신은 세상 속에서 버젓한 인간 행세를 하기 위해 우리가 껴입어온 여러 의장을 모두 벗겨놓은 것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울프씨가 다시 튀어나왔을 때 그는 처음 등장했던 시에서 자신이 휘발 처리된 것에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 소문이나 유령처럼 모호한 흔적과 목격담을 통해 그와 관련한 여러 수수께끼와 의혹이 점점 증폭하기 시작했다. 시집의 스포일러는 여기까지 하겠다.”(웃음)

▶심사위원들이 울프 노트를 선정하면서 자본주의 묵직한 문제들을 던진다고 했고, 정치적인 시의 좋은 예라고도 평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필요 이상의 것을 계속 생산하고 유통하고 판매해야 유지 가능한 현대 자본주의는 시종일관 속이는(manipulative) 데가 있다. 그러나 명백한 사기가 아니라면 모든 매매 행위는 털린 사람의 책임이 된다. 우리는 돈을 버느라 너무 바쁘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의 몹시 기쁜 일에도, 말할 수 없이 슬픈 일에도 돈으로 마음을 대신하고, 그러느라 너무 익숙해져서 누군가로부터 받은 봉투 속에 문화상품권 대신 손 편지가 들어 있으면 어쩐지 실망할 것만 같다. 시집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아마도, 울프씨?’의 울프씨로 추정되는 인물의 과거 모습은 아무것도 영악하게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인다. 관습과 사회가 가르쳐준 모든 것을 의심하는 자는 일종의 아이러니가 되어버린다. 울프씨나 크루소씨가 매우 왜소하게 생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도 이런 아이러니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것은 내가 정치적이려고 했다기보다 여기와는 다른 다소 공상적인 사회의 전범을 흐릿하게 머릿속에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적인 시로 읽혔다면, 그것은 심사위원들로 대표되는 독자들의 욕망 역시 내 머릿속의 그림과 그 음화로서의 시에 감응했다는 증거일 테니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각오와 활동계획을 말해달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강의하고 살림하고 읽고 쓰고 그 와중에 겪게 되는 쓴맛 단맛을 밑천으로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구체적으로 기획하는 일에 형편없이 약하다.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유승진기자 ysj194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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