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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 작은 장례식

| 2019-02-11 08:26:00

배재석 논설위원

사회가 변하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장묘문화도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납골함을 인공위성과 함께 우주로 쏘아 올리는 우주장(宇宙葬)이 등장했다. 일본 도쿄에는 7천기 분의 유골을 수납할 수 있는 7층짜리 빌딩형 운반식 납골당이 인기다.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해 스마트폰 안에 묘지를 조성하고, 심지어 차에 탄 채로 조문하는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 장례식장까지 생겼다.

유교문화 전통이 뿌리 깊은 우리나라도 매장 위주의 장례문화가 최근 들어 화장(火葬)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1993년 화장률이 19.1%이던 것이 지난해는 84.6%까지 치솟았다. 1998년 당시 최종현 SK그룹 회장이 화장을 한 것이 일반인들의 인식 변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요즘 새로 들어서는 화장장은 시설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얼마 전 부친상을 당한 친구를 따라 들른 구미시립화장장은 무색·무취·무연의 첨단시설에 화장 시간도 1시간30분~2시간이면 충분했다. 아파트 거실처럼 TV와 소파가 있는 유족별 대기실에 식당·카페까지 갖추고 있어 혐오시설은커녕 휴게시설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반면 250만 대구시민이 이용하는 명복공원은 용량이 부족하고 시설도 낡아 안타깝다.

화장 증가와 더불어 친환경적이고 자연순환의 철학이 담긴 자연장(自然葬)도 확산 추세다. 참고로 우리나라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화장한 유골을 수목·화초·잔디 등의 주변 또는 밑에 묻거나 뿌리는 것을 자연장으로 정의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7년에는 수목장 등 자연장이 50%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지난해 별세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수목장을 한 것을 계기로 관심이 부쩍 커졌다. 하지만 수목장의 경우 수요에 비해 공급이 한정돼 있고 그것도 대부분 수도권에 몰려 있다. 더구나 가격이 저렴하고 믿을 수 있는 국공립 수목장림은 5곳에 불과하고 공공법인에서 조성한 것도 4곳뿐이다. 이런 틈을 악용해 한 그루에 많게는 수천만 원씩 받고 분양하는 사설 수목장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경황없는 유족들을 울린다. 지자체와 산림청 등 공공기관이 나서 가격이 저렴한 공설 자연장지를 하루빨리 많이 만들어야 한다.

지나치게 형식에 치우치고 낭비적인 요소가 많은 장례식장 문화도 고인·가족 중심의 ‘작은 장례식’으로 바꿀 때가 됐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의 장례식장은 고인의 삶을 기리고 추억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남은 자들의 사회적 지위와 존재감을 확인하는 자리에 가까웠다. 고인을 직접 알거나 유족과 친하지 않아도 체면상 또는 사업상 봉투를 내밀고, 얼굴 도장을 찍는 게 관행이었다. 김영란법을 비웃듯 수많은 근조화환이 장례식장 입구부터 도열해 있는 모습도 바뀌지 않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장례 한 건당 평균 비용이 1천400만원 정도인데 이 중 80%가 식대라고 한다. 과도한 조문객 접대문화만 바꿔도 장례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무한리필’ 되는 술과 음식 대신 간단한 다과나 감사의 의미가 담긴 답례품으로 대신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핵가족화시대에 굳이 3일장만 고집할 게 아니라 형편에 따라 2일장 또는 가족끼리만 장례를 치르는 가족장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작은 장례식’ 못지않게 우리 장례문화 속에 스며든 일제강점기 잔재를 청산하는 일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그간 장례식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마주하던 삼베수의, 국화로 꾸민 영정, 상주의 팔 완장도 알고 보면 일제 식민통치의 결과다. 삼베옷만 해도 부모를 여윈 자식이 ‘나는 죄인’이라는 의미에서 상복으로 입던 것이다. 평소 고인이 가장 좋아하던 평상복을 수의로 하는 것이 우리 전통에 더 가깝다. 이처럼 한국의 전통 장례법이 일본식으로 바뀐 것은 조선총독부가 1934년 발표한 의례준칙 때문이다. 비단 등 값비싼 수의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3일장이 굳어진 것도 이때부터다. 일제가 수탈과 감시·통치의 목적으로 강요한 것이지만 이를 제대로 아는 국민은 드물다. 무엇보다 올해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 장례문화 속에 알게 모르게 뿌리내린 일제잔재와 허례허식을 바로잡고 건전한 장묘문화를 정착시키는 원년이 됐으면 한다.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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