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4(수)

[취재수첩] 응답하라, 1950 호국의 다리

| 2019-02-12 08:18:41

마준영기자<경북부/칠곡>

칠곡군 왜관읍엔 6·25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구조물이 있다. 왜관읍 석전리에서 낙동강을 건너 약목면 관호리를 잇는 ‘호국의 다리’다. 한강철교와 함께 6·25전쟁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단선 철교로 출발한 이 다리는 낙동강을 건너는 철제 교량이다. 원래 ‘왜관철교’로 불렸다. 길이 469m·폭 4.5m로 축조 공법은 한강철교와 같은 철골트러스 방식이다. 경부선 복선화에 따라 1941년 새 노선이 개설되면서 기존 철교는 본래의 운송 임무를 신설 철교에 넘겨주고 국도 4호선의 도로 교량이자 인도교로 바뀌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초기,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에 최후 방어선을 쳤다. 왜관에서 마산·진해로 이어지는 낙동강 서부전선은 미군이, 왜관에서 동해 영덕까지의 동부전선은 국군이 사수했다. 전세가 점점 불리해지자 미군은 남하하는 북한군을 막기 위해 철교와 인도교 등 낙동강 위의 모든 다리를 폭파해 갔다. 1950년 8월3일, 이 다리도 미군 주도 하에 결국 폭파됐다. 전세 역전의 발판이 되긴 했지만 폭음과 함께 수백명의 피란민이 함께 사라지는 아픔을 겪었다. ‘호국의 다리’라는 이름엔 이 같은 비운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현재는 보행전용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2008년 등록문화재 제406호로 지정돼 역사적 근대유물로도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호국의 다리 모습에서 6·25전쟁의 아픔도, 철교로서의 어떠한 형태도 찾아볼 수 없다. 외관상으론 그 의미를 좀처럼 가늠하기 어렵고 안내판과 간간이 매스컴을 통해서만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심지어 이 다리는 2011년 6월25일 또다시 수모를 겪었다. 6·25기념일인 그날 오전 4시쯤 태풍 영향에 따른 집중 호우와 4대강 정비사업 후유증으로 인해 일부 교각과 상판 등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주민들은 6·25전쟁의 상흔을 고이 간직한 ‘호국의 다리’가 무너진 데 대해 ‘제2의 6·25’를 겪은 느낌”이라고 분노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70년 가까이 묵혀 두었던 오랜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칠곡군이 호국의 다리 상징성 제고사업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반가운 뉴스가 아닐 수 없다. 다리 위에 증기기관차를 놓고 전시공간을 설치하는 등 사업의 구체적인 윤곽이 공개된 상태다. 교량 난간과 교면을 교체하고 최첨단 기술과 아트트릭 등을 활용해 끊어진 다리를 표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미국 하와이 진주만 애리조나호기념관의 예를 보자. 길이 185m의 전함과 함께 바다에 가라앉은 장교와 승조원 1천177명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것이다. 바닥 유리창을 통해 가라앉아 있는 애리조나호를 볼 수 있다. 이들이 침몰한 전함을 치우지 않은 이유는 과거의 실수를 기억하고 역사적 교훈을 얻기 위해서다.

‘호국의 다리 상징성 제고사업’을 이왕 시작한 만큼 역사성·상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돼야 한다. 혈전의 대가로 자유와 평화를 되찾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기억의 저장소다. 이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국민 안보 교육의 장이자 칠곡호국관광벨트의 허브로 거듭나야 한다. 응답하라, ‘1950 호국의 다리’.
마준영기자<경북부/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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