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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봉동 방천시장 푸드스토리

2019-02-22

예술인 취향 저격 술맛 당기는 찌짐집, 토박이 주당까지 가세 별별 막걸리

대구에는 이런저런 ‘푸드존’이 많다. 강력한 파워를 가진 핫플레이스 식당이 하나 생기면 그 특수를 겨냥한 이런저런 ‘카피숍’이 뒤따르기 마련. 이후 그 숍들은 벨트를 이루게 된다. 앞산 안지랑시장권을 뒤덮은 양념곱창골목은 김광석길을 둘러본 관광객이 가장 좋아하는 푸드존이 돼버렸다. 남구 대명9동에 있는 카페거리는 앞산순환도로의 맛둘레길과 연계돼 시너지효과를 올리고 있다. 대구를 대표하는 음식인 ‘대구십미’를 축으로 그런 푸드존이 종횡으로 엮어지면 대구의 음식 위상은 더욱 제고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구의 별별 푸드존 틈새에 숨어 있는 아기자기한 푸드스토리를 찾아 길을 나서본다.

말린 생선 우려낸 깊은맛 日 식당 ‘미야코’
토박이 ‘신월상회’ ‘태양쌀집’‘보성떡집’
입맛 잃은 인근 숍주인이 단골 ‘마산아귀찜’
빈대떡·파전·동태전·계란말이 ‘방천찌짐’
13.2㎡ 안되는 공간에 빼곡한 낙서도 정감
여주인의 순발력있는 선곡 LP주막 ‘마틸다’

◆대봉1동 푸드존

대봉1동을 남과 북으로 나눌 때 푸드존은 방천시장~김광석길이 맞물려 돌아가는 남쪽 구역에 더 조밀하게 형성돼 있다. 거기에 비해 북쪽존은 웨딩·한복·패션숍이 독점하고 있어 식당가는 상대적으로 헐겁다. 남쪽권에서 가장 핫한 식당은 대구에서 가장 일본스러운 메뉴라인을 보여주는, 덮밥·우동·소바 전문 일식당 ‘미야코’다. 16년전 삼덕동 1가 옛 동인호텔에서 야시골목 가는 길 첫째 골목 안에 1호점을 냈다. 이어 6년전 대백프라자 바로 서쪽 이경빌딩 1층에 2호점을 냈다. 올해 73세의 다정다감하면서도 뭔가에 골똘한 포스의 도쿄 출신 다케모토 가쓰시게가 요리를 진두지휘한다. 맛 국물은 정말 도자기를 빚듯 공을 들인다. 8종류의 말린 생선에서 우려낸 그 깊은 맛 때문에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 특징이 있다. 상차림은 1인상의 기본 반찬상을 중심으로 고객이 주문한 각종 메뉴를 즉석에서 조리해 제공하고 있다. 또한 대백프라자 바로 옆 골목 안에 있는 ‘마산아귀찜’은 입맛을 잃은 근처 숍 주인이 단골로 찾는다.

대봉1동 북쪽존으로 내려온다. 일단 방천시장 토박이 상인을 만나보지 않을 수 없다. 조그마한 판자에 적어 놓은 조기, 갈치, 명태란 글귀가 정감어린 ‘신월상회’. 여기 할매도 인간승리의 삶을 살아왔다. 남편이 워낙 별난 사람이라 도저히 살 수 없어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두 딸을 들쳐 업고 야반도주해 좌판을 깐 게 바로 방천시장 이 자리다. 그게 벌써 50년 전의 이야기. 억척스럽게 살던 어느날 남편이 불쑥 나타나 합치자고 애원했다. 50대 후반에 접어든 남편은 예전의 그 남자가 아니었다. 폐지를 주워 적잖은 돈을 거머쥔다. 여든에 접어든 그 할매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때란다.

맞은편 ‘태양쌀집’도 방천시장이 왜 대구 최고의 쌀시장인가를 엿보여주는 가게다. 경산 남천 출신인 쌀집 아지매는 1985년 영업을 시작해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기서 가장 오래된 ‘보성떡집’도 그시절 쌀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다. 근처 ‘대흥상회’ 할매는 종일 밀가루반죽을 치대 만든 칼국수용 생면, ‘성주상회’는 메주가 전문이다.

◆꾼들의 사랑방 ‘방천찌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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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천찌짐’은 지금도 방천시장 거주 작가에게 사랑을 받는 막걸리집이다. 콧구멍만 한 실내는 낙서로 도배돼 있다.


2009년부터 필 받기 시작한 ‘방천찌짐’. 도시철도 2호선 경대병원역 3번 출구에서 수성교 방향 셋째 골목, 그러니까 방천시장 서쪽 출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왼편에 보인다. 평범한 가게였는데 2013년 8월8일 KBS ‘한국인의 밥상’에 소개된다. 13.2㎡(4평)도 안되는 ‘콧구멍 열차주점’. 사람들은 이 공간을 그렇게 부른다. 밀폐된 이 구석방은 예술인들의 취향에 딱 들어맞았다. 대표 안주는 빈대떡·파전·동태전·배추전·계란말이 등이지만 실제 빼곡하게 채운 낙서 때문에 더 술맛이 당긴다.

주인 박종구·김태순 내외는 이제 60대 노부부. 처음에는 과일, 형편이 좀 나아져 메밀묵을 팔았고 10년 정도 하다가 좌판을 정리하고 가게를 얻은 게 바로 현재 업소다. 얼추 시장통 생활 37년째다. 아내는 가게 앞에서 빈대떡을 부친다.

낙서 속에서 의미심장한 그림이 하나 보인다. 주인 박씨의 자화상이다. 2008년부터 방천시장에서 사는 정태경 화가의 ‘취중화(醉中畵)’다. 그와 전태규 대봉문화마을협의회장, 그리고 주인 박씨는 66세 갑장. 정 화가와 전 회장의 술은 늘 이 집에서 시작돼 다른 가게로 이어진다. 정 화가의 낙서는 대봉1동 맨 서쪽 웨딩한복거리 도로변에 있는 ‘대봉동의 전설’로 불리는 LP주막 ‘마틸다’에도 흘러내린다. 이 집은 최근까지 남루한 재개발구역 대봉시장 안에 ‘목’이란 이름으로 존재했다. 원래 상호는 ‘쌍목’. 그런데 태풍에 ‘쌍’ 자가 날라가버리는 바람에 목만 남았다. 그냥 내버려뒀다. 그게 상호로 굳어진다. 여긴 모든 연령과 계층을 단숨에 친구로 주저앉혀버린다. 내공절정인 70대 여주인의 순발력있는 선곡 탓이다.

은자골막걸리와 홍어삼합 궁합 ‘방천식당’
전국 13가지 막걸리 맛보는 ‘오늘도 빈대떡’
양조장 리모델링 수제맥주전문 ‘대도양조장’
가성비 좋아 두툼한 단골층 확보 ‘벽돌집’
30분 간격 삶은 족발 새로 썰어내는 ‘가족’
60∼70년대 주름 잡은 추억의 ‘사이펀커피’

◆방천시장 별별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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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빈대떡’ 내부 벽에 붙은 전국 13종 막걸리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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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척스럽게 방천시장에서 꿈을 이룬 ‘신월상회’ 입구 수채화톤의 나무 메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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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봉1동 토박이 주당이 가장 좋아하는 안주 중 하나인 빈대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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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가 있는 레스토랑 ‘배추한잎’의 별미인 ‘치즈짬뽕’.


이 언저리에선 막걸리도 자기 구역이 있다. 찌짐집 조금 위 첫 시장 네거리 사거리슈퍼 모퉁이에 있는 ‘불로막걸리집’, 찌짐집 맞은편 ‘방천식당’은 상주 은자골막걸리. 달구벌대로변에 있는 ‘동곡막걸리’에선 청도 동곡막걸리만 판다. 특히 방천식당 구석방은 많은 자가 노리는 명소다. 찌짐집의 반 정도 공간이다. 이 집 은자골막걸리는 홍어삼합이라야 제맛이 형성된다. 동곡막걸리는 강원도 ‘짝태’가 인기다. 짝태는 명태 배를 가른 후에 내장을 꺼내고 조미된 소금물 등에 담갔다가 말린 거다.

다음은 방천시장의 또 다른 전설의 사내를 만나야 된다. 24년전 태어난 정체불명 카페 같은 식당인 ‘쇼킹’의 윤상식 사장이다. 그는 90년대초 파크호텔 조리부에서 일을 했다. 이후 5군데 업소를 돌다가 자기 공간을 차린다. 초창기엔 하루 3타임 라이브공연도 했다. 그는 3년전 사거리슈퍼 맞은편에 ‘오늘은 이 집’이란 이자카야 스타일의 바텐을 가진 LP카페를 하나 더 차렸다. 3년전 문을 연 ‘오늘도 빈대떡’은 문경오미자막걸리, 화성호랑이막걸리, 제주우도땅콩막걸리 등 전국 13가지 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

김광석길에서 맨 처음 등장한 가게는 2012년 문을 연 우쿨렐레·훌라·손그림·꽃차 전문인 복합문화공간 ‘유칼리툽스’다. 진주 출신의 구근재 대표가 여기서 지역 첫 우쿨렐레 교습소를 차렸다. 2000년을 넘어서면서 강력한 한우집이 나타난다. 바로 TV에 나가 한우 한 마리 해체쇼로 유명해진 ‘대한뉴스’. 그다음에는‘투뿔’, 방천시장에서 새로운 족발시대를 연 ‘가족’ 등이 문을 열었다. 이후 투뿔 자리에는 ‘대구막창’이 들어섰다. 이후 포차 같은 ‘왁자지껄’ ‘방천휴게소’, 최근에는 라이브공연을 곁들여 양식과 중식을 결부한 신개념 짬뽕인 ‘치즈짬뽕’을 먹을 수 있는 ‘배추한잎’까지 가세했다.

◆대도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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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양조장을 수제맥주전문점으로 리모델링해 오픈한 ‘대도양조장’의 인기 메뉴인 대도스카치에그와 맥주.


방천시장에 명물 하나가 더 생겨났다. 바로 ‘대도양조장’이다. 공작기계업을 하는 정만기씨가 지난 1일 오픈했다. 1953년 건축대장에 따르면 양조장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한때 ‘상주양조장’이란 이름도 있었다. 오래된 양조장의 집수정 등 주요 포인트는 살리면서 리모델링했다.

처음에는 천고가 높은 일본술집 이자카야를 열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 맥주 유통 관계자를 만나면서 생각이 바뀐다. 현재 대구에 살고 있는 수제맥주 전문가인 미국인 제라드 해치와 손을 잡았다. 바로 옆 작업장에는 1천ℓ 술탱크 6개가 비치돼 있다. 아직 이 탱크는 가동 전이라 IPA, 에일, 스타우트 등 모두 8종류의 일반 수제맥주만 한시적으로 팔고 있다.

구은혜 셰프는 한 끼 식사용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인기안주 ‘대도스카치에그’와 ‘감베리에그인텔’ 등을 만들고 있다. 대도스카치에그는 계란에 고기를 입혀서 튀긴 건데 먹물스파게티를 튀겨 만든 둥지를 방석으로 활용한 게 인상적.

◆대봉1동 별미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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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같은 한정식 전문 ‘벽돌집’의 인기 메뉴인 곤드레밥·코다리찜 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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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 전문 ‘가족’이 갓 썰어 도마 위에 올린 족발 편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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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LP뮤직바 ‘길영’의 명물인 추억의 사이펀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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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길의 명물인 ‘기타빵’.


토박이가 지켜주는 별미 가게를 노려보자.

갤러리 같은 곤드레밥 & 코다리찜 전문 한정식 ‘벽돌집’. 곁반찬이 예사롭지 않다. 가성비 좋고 격까지 느껴져 두툼한 단골층을 확보해놓았다. 바로 옆 ‘로타리식당’은 추어탕과 돌문어를 잘한다. 맞은편에는 13년 구력의 ‘예전’이 있는데 김정옥·강미정 모녀가 주방을 칼같이 지킨다. 특히 문어와 수육, 생선구이 등이 좋아 회식에 딱이다. 25년 역사의 ‘일미순두부’도 인근에 있는데 느끼한 순두부에 질린 사람한테 강추해주고 싶다. ‘토방칼국수’는 면발이 수정처럼 고운 게 특징.

현지직송 미주구리를 맛보고 싶다면 13년 구력의 ‘엄마손식당’으로 가라. 옆집 아지매 같은 포스의 이숙자 사장(70)의 고향은 영덕 강구. 그래서 좋은 미주구리를 확보할 수 있다. 백반도 빛난다. 계절이 담긴 호박잎, 우엉잎, 미역국, 시래깃국, 황태국 등이 번갈아 나오는 7천원짜리 백반정식은 딱 엄마손 수준. 바로 그 옆에 있는 ‘방천이용소’는 인디서점에 칵테일바를 섞어놓은 묘한 공간이다. 방천시장 출신인 이주오씨가 5년전 기존 이발관을 고쳐 오픈했다. 한때 대봉동에서 문어튀김점 ‘다락’을 운영하기도 했다.

2013년에 오픈한 족발 전문 ‘가족’은 10년간 동성로에서 옷가게를 하던 한동엽 사장이 마련한 꿈의 가게다. 이 집은 30분 간격으로 삶은 족발을 새로 썰어낸다. 최근 삼색순대가 인상적인 돼지국밥을 파는 신관까지 마련했다.

스페셜한 커피가 생각나면 재즈광인 주인장이 직접 콩을 볶아 드립해주는 ‘로스터리’, 센치한 바텐뮤직이 그리우면 ‘쿠사 18’로 가라. 김광석길 중간에 있는 LP라이브카페 ‘길영’에 가면 60~70년대를 주름잡은, 하지만 이제 지역에선 여기밖에 없는 ‘사이펀커피’를 마실 수 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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