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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제5회 밥상머리교육 우수사례 공모전] 동상 김혜주씨 가족 수기

2019-03-11

“식사하며 대화, 아이답게 성장하도록 도와줘”

20190311
김혜주씨 가족이 저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1. 아이들의 아빠와 사별 후 삼 남매를 데리고 홀로 계신 친정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온 지 벌써 8년째…. 홀로 삼 남매를 키우는 게 녹록지 않아서 아침저녁 식사시간 이외엔 아이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거의 없다. 막내아들은 그나마 초등학생이라 퇴근 후에는 볼 수 있지만 아들의 누나들, 나의 두 딸은 고등학생이 되고 난 이후 볼 수 있는 시간은 더욱 없어지고 다섯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 밥 한 끼 먹는 것도 힘들어졌다.

아침 식탁에서는 하루를 어떻게 지내야할지를 이야기하고 저녁 식탁에서는 하루를 어떻게 지내왔는지 이야기를 했는데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핑계로 아이들의 소중한 이야기들을 듣지 못한다. 나의 백 마디 말보다 아이들이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듣고 싶기도 하지만 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듣지 못한 채 학교 가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학교 선생님들께 인사 잘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잘 다녀와.”

나는 ‘공부 열심히 하고 와’ 이 한마디는 하지 않는다. 내 자식이 공부를 잘하여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나도 좋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더 예의가 바르면 좋겠다.

공부보단 어른 앞에서 예의가 더 중요
식사속도 맞추는 등 예절, 행동에 배어
일하느라 바쁜 엄마는 미안한 마음뿐
괜찮다는 아들과 많이 대화하고 싶어


막내아들이 어린이집을 다닐 때는 밥 먹기 전 항상 말하였다. “할아버지가 수저를 들면 다음에 민석이가 수저를 들고 밥 먹는 거야” 그러면 아들은 “아니야, 아니야. 내가 1등으로 먹을 거야” 하며 숟가락을 들고 먼저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그런 손자가 귀여워서 “그래, 그래. 우리 민석이가 1등 해라” 하셨다. 하지만 나는 다시 말을 하면서 가르친다. “어른이 수저를 들면 그다음에 민석이가 밥을 먹는 거야.”

#2. 네 살짜리 막내아들이 어느새 열세 살이 되었다. 막내아들은 자연스럽게 어른들이 수저 드신 다음이 자기 차례인 것을 알고 어른들보다 먼저 밥숟가락을 들지 않고 어른들과 식사 속도를 맞추면서 밥을 먹고 일어서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두 딸 아이를 보고 배우며 몸에 행동이 스며들었고 그저 이제 자신에게는 당연한 일이기에 나의 잘못된 행동을 꼬집어 주는 아들이 새삼 신기할 따름이다.

하루 종일 집에만 계시는 친정아버지의 낮 시간, 집에서 친구가 되어주는 것은 텔레비전이다. 그런 아버지에게 친구가 한 명 또 있으니 그 친구는 바로 막내아들이다. 막내아들이 하루 일정을 다 끝내고 집에 돌아와 잠이 들 때까지 아버지의 친구가 되어준다.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 아들은 할아버지 옆에 앉아서 하루 종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한다. 할아버지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할아버지의 벗이 되어 장난도 치며 할아버지를 모시고 동네에 나가 가까운 시장에 가서 요깃거리를 사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할아버지의 입가에 미소가 그치지 않게 해준다. 어릴 때는 더없이 무서운 존재였던 아버지인데 저렇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을 보고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3. 막내아들의 선생님과 통화를 할 때면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민석이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생각을 하고 말한다는 것이 느껴지고 단어 선택이 어린아이 같지 않아요. 가끔 어른이 말하는 것 같아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한편으론 좋지만 아이가 곧이곧대로 말을 하는 성격이라 또래 아이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다. 어린아이 특유의 느낌을 잃은 것 같아서 조금은 슬프다. 아빠의 부재로 아이를 애어른으로 키운 것 같아서 많이 안타깝고 미안하다.

가끔씩 일이 늦어져서 아들에게 문자를 보내는 일이 있다. ‘아들, 엄마 늦을 것 같아. 할아버지한테 물어보고 할아버지 밥 차려드리든지 아니면 조금만 기다려. 미안해.’ 평소라면 답장이 오던 아들이 답장이 없었다. 나는 부랴부랴 일을 끝내고 집에 갔다. 이미 집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밥을 다 먹은 상태였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밥상을 치우는 아들을 도우며 설거지를 시작한다. 설거지를 하면서 문득 아들의 답장의 부재를 떠올리게 되고 아들에게 물어본다.

#4. “너 왜 엄마한테 답장 안 해?” 아들은 핸드폰을 들고 툭툭 걸어온다. “엄마 문자 내용 좀 봐.” 나는 문자를 확인해본다. ‘아들 엄마 조금 늦을 것 같아. 할아버지께 말씀드려. 미안해.’ ‘아들, 엄마 오늘 참관수업 못 갈 것 같아. 미안해.’ ‘아들, 엄마 오늘은 많이 늦으니 할아버지랑 먼저 저녁 먹어. 미안해.’

아들은 내가 매일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싫다고 하였다. 자기는 괜찮으니깐 미안하다고 말하지 말라며. 나는 설거지를 끝내고 아들과 식탁에서 오랜만에 하루 종일 어떻게 지냈는지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지친 몸을 이끌고 방에 들어오니 눈물 한 방울, 방울 떨어졌다.

#5. 이제는 아이가 아이답게 클 수 있도록 그러면서 예의를 가르치기 위하여 노력하려고 한다. 이렇게 우리 가족에게 식사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아이가 똑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시간, 아이가 행복하게 클 수 있는 시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잘 차려진 밥상이 아니어도 그저 밥과 반찬에 한 끼 먹는 것이지만 우리는 성장하고 배운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이면 늦어도 밥은 가족과 다 함께 먹으려고 한다. 그냥 밥 한 끼…. “아버지 진지 드세요, 얘들아 밥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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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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