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5(화)

[토요단상] 전자미디어 시대의 폭력성과 선정성

| 2019-03-16 08:10:32

이정희 위덕대 일본언어문화 학과 교수

요즈음 TV를 보고 있으면 먼저 프로그램의 다양성에 놀란다. 볼거리가 많아진 것이다. 그다음에 놀라는 것은 15세 시청가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폭력성과 선정성이다. 어느 사이에 우리나라 TV가 이렇게까지 달라졌나 싶을 정도로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웬만한 드라마에서 키스신은 단골로 나오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애정표현까지 과감하게 한다.

TV화면은 평균적으로 3초에서 5초마다 장면이 바뀌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특히 아이들에게 이러한 장면 전환 스피드는 그 프로그램의 내용이 어떻든 간에 흥미를 유발시킬 수밖에 없게 된다. TV는 시청자에게 눈앞에서 흘러가는 정보, 귀에 들어오는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처리할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는다. 3초 또는 5초라는 시간은 지적 이해를 돕기에는 너무 빠른 속도다. 그래서 TV가 시청자들에게 주는 것은 유익한 정보도 있겠지만 그저 재미와 즐거움일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TV를 보는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자미디어 트레이닝에 사로잡히게 된다. 화면에서 발하는 밝은 빛을 통해서 드라마 속의 현실 아닌 현실세계를 접하게 되고, 그 현실 속에서 느끼는 감정은 살아 숨 쉬고 뜨거운 피가 흐르는 자신이 아니라, 그 화면 속에서 연기하는 실물보다 작고, 밝게 빛나고 있는 인물을 통해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체험을 맛본 순간부터 아이들은 활자로 된 책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기가 어렵게 된다. 결국 각종 미디어의 발달은 청소년들의 손에서 책을 빼앗아 가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TV 앞에 있으면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녹음된 목소리를 소파에 가만히 앉아서 말없이 듣고, 귀를 기울이고 화면을 응시만 하게 되는 수동적인 입장이 되고 만다. 시청자는 반응을 할 수가 없다. 단 시청자는 손에 쥐어져 있는 리모컨을 누를 때 비로소 컨트롤권을 행사할 수가 있다. 이 동작은 비록 작지만 치명적으로 휴대 가능한 제왕적 권력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TV를 보면서 서로 리모컨을 쟁탈하려고 하는 다툼이 바로 이러한 심리적인 작용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상은 TV 리모컨뿐만이 아니다. 컴퓨터의 키보드, 스마트폰 입력기, 게임 컨트롤러도 마찬가지다. 굳이 의도적이지 않아도 한 순간에 손끝 하나로 세계를 컨트롤 할 수 있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런 것에 익숙해지다보면 언어를 개념화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또한 무한한 상상력에 방해를 받게 되어 창의력이 빈약해 지고 만다. 언어는 인간의 지혜를 만들어 내는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부터 그 언어로부터 멀어져만 가게 된다. 그래서 결국 TV에서부터 컴퓨터,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각종 전자미디어는 어린이를 비롯하여 젊은 세대들까지 사로잡아 언어, 문자, 사고력 등을 빼앗아버려 사고의 깊이가 얕고 충동적으로 되기 쉬워지고, 그것이 점차 폭력적으로, 선정적으로 이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린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하루 평균 2시간에서 4시간 정도만 TV를 봤다고 해도, 이 어린이는 8천번 이상 살인을 목격한 셈이 된다. 여기서 ‘목격’한다고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자. 우리가 TV 드라마에서 방영하는 폭행과 살인 등에 대한 픽션을 조용히 앉아서 보면서 때로는 공모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당사자가 되어 점차 무감각적이고 자연스러운 친근한 행동으로까지 받아들이는 것을 몸으로 서서히 익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오랫동안 행동하지 않는 ‘목격자’로서 잠자코 있다가 어떠한 계기로 인해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행동이 문제의식이 결여된 채로 나타나고 마는 것이다.

이미 ‘전자미디어 사용을 줄이자’라는 캠페인도 일고, 전자미디어의 폐해에 대해서도 많은 지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미디어는 더욱더 진화해 가고, 전자미디어를 사용하는 연령대는 유아까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우리 모두 적극적으로 전자미디어 대신에 손에서 책을 놓지 않게 하지 않는 한, 앞으로의 미래사회는 치명적으로 위험해질 것이다. 책을 지니고 다니는 것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깨달았으면 한다. 이정희 위덕대 일본언어문화 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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