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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제5회 밥상머리교육 우수사례 공모전] 동상 박미진씨 가족 수기

2019-03-25

“든든한 내 편, 가족 덕분에 힘든 고비 이겨낼 힘 얻어”

20190325
박미진씨의 단란한 가족. 부모님과 나눴던 시간들이 자신에게 살아가는 힘이 되듯 그 자신도 자녀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한다. <박미진씨 제공>

박미진씨는 어릴적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던 어머니, 자신이 속상해 남몰래 울 때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그에게 가족이란 ‘함께 식사를 하며 정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어릴적에 부모와 식사시간 많은 대화
살아가는 힘·고난을 이기는 원동력 돼
아이들과 식탁서 소중한 시간 보내길


#1. 어릴 적부터 삼남매인 우리를 키우고자 부모님께서는 밤낮으로 힘들게 장사를 하였습니다. 학부모 공개수업, 예술제, 심지어 졸업식까지 부모님의 얼굴을 뵙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가끔씩 못 오시는 부모님이 밉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였습니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뒤에 계시는 부모님을 향해 미소 짓고 손을 흔들 수 없다는 것이 어린 나이에는 한번씩 상처가 되곤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윈 저로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제 아이를 낳고 기르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더듬어 보는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친구에게 못된 말을 듣고 속상했던 이야기, 학교에서 할머니 춤을 추어 처음으로 주목을 받고 인기를 끌었다는 이야기를 조잘조잘 이야기했던 저와 그것을 미소 지으며 듣고 계셨던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2. 마지막 임종 전에 병석에 계실 때, 어머니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면 어릴 적 식사 시간에 하였던 이야기를 하시며, 자신이 처음으로 학부모 모임에 갔을 때, 제가 했던 이야기를 하셨더니 다른 어머니들께서 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자신을 부러워 했다며 그때 정말 뿌듯하고 행복했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한참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한 번씩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사무침으로 힘이 들 때나, 학교에서 여러 가지 일로 힘들 때, 세상살이가 생각보다 쉽지 않고 내 힘으로 무언가 되지 않아 낙담해 있을 때, 어머니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있는 그 식사시간을 떠올려 봅니다.

#3.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 역시 식사시간에 저희의 이야기를 즐거이 들으시며 자신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따끔한 충고와 조언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침에 딸들의 머리를 헤어드라이어로 손수 말려주는 세상 그 누구보다 다정한 아버지셨고, 주위 사람들의 아픔에 크게 공감하는 마음이 따뜻하고 여린 아버지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께서 크게 화를 내셨던 적이 딱 한 번이 있으셨는데, 그날은 제가 친구들에게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고 온 날이었습니다. 학창시절의 저는 조용히 자신의 할 일을 하는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모의고사를 쳤는데 매번 등수가 높지 않다가 그날은 등수가 꽤 높아졌습니다. 저랑 라이벌 관계인 친구가 있었는데 평소에도 성적이 비슷비슷해서 모의고사를 치면 저나 그 친구는 말은 안했지만 서로의 성적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그날은 제 성적이 꽤 높아진 것에 대해 기분이 상했는지 그 친구가 다른 친구들에게 제가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퍼트리고 다녔습니다. 대학 입시가 얼마 남지 않아서 다들 예민한 여학생들이 모여 있었던 그 때, 그 헛소문은 몇몇 아이들 사이에서 저를 왕따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4. 다행히 몇몇 친구들만 저를 싫어하였기에 버틸 수 있었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시간에 저의 힘듦과 억울함을 얼굴에서 숨기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걱정이 됐던 부모님께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셨고, 그 질문 한 번에 참고 있었던 저의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며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말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어머니께서는 저를 안고 그동안 힘들었을 저를 생각하며 속상해서 펑펑 울었고, 평소에 온순하시던 아버지께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불같이 화를 내시며 그 친구 집에 찾아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우리 가족들이 겨우겨우 말렸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으로 신기한 것이, 아버지의 그 화내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들이 싹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 나에게는 언제나 든든한 내 편이 있었지’라는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아버지의 그 모습이 힘들었던 나의 마음을 녹이고 나를 단단하게 다지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5. 그 다음날 어머니께서 친구의 어머니께 연락을 드려 상황이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그 친구와도 조금은 껄끄러웠지만 사과를 받고 잘 해결이 되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편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어떤 힘든 고비가 와도 이겨낼 힘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회복탄력성이라고들 하지요. 저에겐 돌아가셨지만 식사시간 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힘이 돼 주셨던 어머니의 모습과, 식사시간 울던 딸을 위해 불같이 화를 내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저의 살아가는 힘, 고난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가족을 흔히 식구라고 하는데, 식구란 밥을 나누어 먹는 사람이란 뜻이지요. 밥을 함께 나누어 먹는 것, 아주 단순하고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에서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한 시간이고 일인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그 시간들이 살아가는 힘이 되듯이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도 그 시간들이 소중하겠지요. 아마 그때 부모님과 나누었던 그 시간들이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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