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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 스스로가 판 함정

2019-05-20

“의심을 눈덩이처럼 키우면 좋은 관계 깨트릴 수도”

20190520
일러스트=최소영기자 thdud752@yeongnam.com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탐정이 되어 샤프 펜을 가져간 범인을 찾아보기 바랍니다. 샤프 펜을 잃어버린 김논리 학생의 시각으로 사건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김논리는 지난 주말에 삼촌에게서 생일 선물로 불빛을 내는 특이한 샤프 펜을 받았습니다. 샤프 펜을 누를 때마다 빨강, 파랑, 초록의 세 가지 빛이 번갈아 나오는 매우 아름다운 펜입니다. 월요일이 되었습니다. 학교에 간 김논리는 아침시간부터 옆 짝 박순진에게 보란 듯이 샤프 펜을 꺼내어 똑딱똑딱 눌러댔습니다.

꼬리에 꼬리물어 확신까지 생기기도
사실과 다른 판단 하는 오류 가능성
여러 방향으로 생각하는 자세 갖춰야


박순진은 “와!” 하는 감탄사를 터트리며 한 번 사용해 보자며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김논리는 “안 돼. 고장 날 수도 있단 말이야”하며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김논리의 눈에는 박순진이 수업시간마다 자신의 샤프 펜을 부럽게 쳐다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화요일이 되었습니다. 1교시 수학시간이 시작되어 수업 준비를 하던 김논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의 것과 똑같은 샤프 펜이 순진이의 수학책 사이에 끼워져 있는 것을 얼핏 보았기 때문입니다. 김논리가 쳐다보는 것을 안 순진이는 급하게 수학책을 덮어 샤프 펜을 감추는 것 같았습니다. 김논리는 그것이 자신의 샤프 펜일 수 있다는 생각에 옆 짝 몰래 자신의 필통을 열어 보았습니다. 샤프 펜은 없었습니다. 가방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고 또 뒤져도 샤프 펜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순진이가 자신의 샤프 펜을 가져갔다는 의심이 굳어졌습니다. 도대체 언제 내 샤프 펜을 가져갔을까를 생각하다가 어제 5교시 체육시간이 생각났습니다.

체육시간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순진이는 배가 아프다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운동장으로 돌아왔었습니다. 체육을 좋아하는 순진이가 오랫동안 화장실에 가 있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에도 순진이의 행동은 이상했습니다. 보통은 교문 앞까지 논리와 같이 하교를 하는데 어제는 바쁘다며 후다닥 먼저 교실을 뛰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5학년 때에도 순진이가 다른 사람 물건을 가져갔다고 의심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여러분은 순진이가 샤프 펜을 가져간 범인이라는 것을 확신합니까? 순진이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말할 것입니다. “모든 정황과 순진이의 행동이 범인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거의 완벽해요. 범인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순진이가 범인이라는 전제를 하고 보면 모든 정황이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종종 결론을 미리 내어 놓고서 그것을 뒷받침할 자료나 상황을 모아 사슬처럼 엮어 보고 논리적으로 연결이 되면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매우 위험합니다.

이러한 확신이 왜 위험한 것인지 김논리의 다음 이야기를 계속해 보겠습니다. 박순진이 자신의 샤프 펜을 가져갔을 것이라고 확신한 김논리는 선생님께 말씀드려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옆 짝을 고발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망설이던 김논리는 선생님께 말씀드리기 전에 어머니와 상의하기 위해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로부터 예상 밖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샤프 펜? 너 책상 위에 있던데….” 깜짝 놀란 김논리는 어찌된 일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제 저녁에 일찍 잔 김논리는 아침에 사회 숙제를 하지 않은 것이 생각나서 부랴부랴 숙제를 하고 급히 가방을 챙겨서 학교로 왔었습니다. 그때 샤프 펜을 그냥 책상 위에 두고 왔던 모양입니다. 순진이를 의심한 것이 미안한 김논리는 순진이에게 다가가서 물어 보았습니다. “어제 수업 마치고 왜 그렇게 급하게 갔어?” “너의 샤프 펜을 보니 나도 갖고 싶어서 학원가기 전에 사러 가려고 먼저 갔었어. 같이 못가서 미안해.” “그래, 그럼 너도 나한테 샤프 펜 자랑하지 그랬어.” “너랑 똑같은 샤프 펜 산 걸 네가 알면 싫어할까 봐 보여 주지 못했어.”

여러분은 아직도 순진이가 샤프 펜을 가져간 범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이번에는 순진이가 샤프 펜을 가져가지 않았다는 결론을 갖고 보니 순진이의 행동은 논리의 샤프 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마음속에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거의 모든 생각이 그쪽으로만 흘러가서 자신의 의심에 확신을 가지는 오류를 범하곤 합니다. 자신의 의심과 다른 방향으로는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고 계속 의심만 눈덩이처럼 키우곤 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의심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지요. 이러한 의심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끼리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의심에 대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직접증거가 없는 한 너무 쉽게 자신의 의심에 대해 확신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판 의심의 함정에 빠져 주위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깨뜨리는 잘못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장수<대구진천초등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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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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