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8(목)

[3040칼럼]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 2019-06-25 08:17:13

옥스퍼드대학 교육의 정수

학생이 써 온 글로 토론수업

글쓰기는 생각하는 힘 길러

지식 전수 급급한 우리 교육

창의적인 인재 양성 어려워

김대륜 디지스트 기초학부 교수

지난주 옥스퍼드 대학을 찾았다. 그곳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이후 2009년 가을에 학술회의 참석차 방문한 일이 마지막이었으니 거의 10년 만에 찾은 셈이다. 거리 곳곳에서 마지막 학기 시험을 치르느라 분주하게 오가는 학생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지도교수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튜토리얼(tutorial)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옥스퍼드 교육의 정수(精髓)라 할 수 있는 이 제도는 튜터라 불리는 선생이 학생 한두 사람과 만나 매주 한 시간 정도 토론을 주고받는 수업방식이다. 문과 학생의 경우 학기 초에 제시되는 주제 가운데 하나를 골라 대략 3천에서 5천 단어 분량의 에세이를 써서 튜터에게 제출하고 토론에 참여한다. 대개 학생들은 주마다 두 번의 튜토리얼에 참석해야 하므로 두 편의 글을 쓰게 된다. 옥스퍼드 대학의 문과는 3년제라 이런 튜토리얼을 아홉 학기 동안 받게 되면 한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써야 할 에세이 분량은 14만 단어를 훌쩍 넘긴다. 단행본 두 권은 족히 나올 만한 분량이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시작된 튜토리얼은 조금 축소된 형태로 영국 여러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하버드 같은 미국 명문대학에서도 주로 고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수많은 대학이 학부 교육에서 글쓰기 교육에 무게를 두고 있는 까닭은 여러 가지일 테지만 무엇보다 그것이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대학 교육의 한 가지 목표가 학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하는 역량을 기르도록 하는 일이라면 글쓰기만큼 중요한 훈련은 없다. 우리는 흔히 생각하는 일과 글 쓰는 일을 따로 떨어진 과정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글을 쓰려면 우선 자료를 충분히 읽고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글을 쓰는 일 자체가 생각을 정리해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료를 읽었으면 바로 글을 써야 한다. 그래야 생각이 미진한 부분도 드러나고, 자기가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도 명확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먼은 어떤 사건에 대해 견해를 피력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그 사건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없으니까요.”

교육의 근간이 되어야 할 글쓰기가 우리나라에서는 보통교육은 물론 고등교육에서도 흔히 경시된다. 최근에 교양교육의 일환으로 글쓰기 교육을 강화하려는 추세가 있지만, 실제로 쓰는 양도 충분치 않을 뿐만 아니라 글에 대한 자세한 논평을 받는 일이나 자기 글을 놓고 의견을 주고받는 토론도 활발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전공교육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 강좌에서 요구되는 글은 대개 짧은 보고서 한두 편이 전부이고, 강의와 연구, 행정으로 바쁜 선생은 세밀한 논평을 제공하지 못한다. 수강생이 50명이 넘는 중대형 강좌가 많다 보니 글쓰기와 토론은 강좌의 핵심이 되지 못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 고등교육은 아직도 고도 경제성장 시대의 틀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 시절 대학은 서양의 앞선 지식, 특히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지식을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전수하는 데 급급했다. 학생이 스스로 문제를 찾아내 탐구하고 이를 글로 풀어내는, 그러니까 연구는 뒷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이 아직도 이런 틀에 머물러 있다면 창의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새로운 생각을 내놓는 인재를 양성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될 창의적인 인재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지적으로 윤택하고 풍성한 삶을 살아갈 기회가 결핍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래서는 좋은 나라,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어렵다. 우리 고등교육을 혁신하려면 교육의 기본을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고, 이런 일은 글쓰기와 토론 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김대륜 디지스트 기초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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