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2(목)

[특별기고] 아베 총리에게 영남 사람이 보내는 글

| 2019-08-14 07:21:59

김도현 전 문체부 차관·전 영남일보 논설위원

나는 한국 영남지방 안동에서 생장하여 대구에서 일한 적 있는 한 평범한 시민으로 이웃나라 총리께 글을 올립니다. 몇 달 전 한국과 일본의 전직 총리가 참석한 한일관계를 걱정하는 모임에 함께한 적이 있었습니다. 본인이 한 말 해야 할 차례가 되었는데, 무슨 담론을 펼 처지가 못 되어 다음과 같이 사담을 했습니다.

“나는 1965년 한일협정체결 당시 학생이었는데, 보다 좋은 협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옥고를 치렀습니다. 우리 의성김씨 청계공파(16대 할아버지) 자손 가운데 김동삼 선생 등 독립운동서훈자가 44명이 나왔고, 이상룡 선생 등 연비친척까지 합치면 100여 분은 될 것입니다. 그러자면 우리 고향은 일제 강점기 동안 감시, 체포, 고문, 투옥, 옥사가 일상이 된 공포, 한숨, 분노의 마을이었을 것입니다. 그 400여년 전 우리 선조는 선조대왕의 강신수목(講信修睦)의 화호(和好)의 국서를 들고 일본 도요토미 다이코(豊臣太閤)를 만났지만 그 답은 알다시피 조선을 유린한 침략이었고 그분은 전장에서 순국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내 짝궁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아빠가 일본군에 징병되어 이름도 몰랐던 파푸아뉴기니 서쪽 아이타페로 가셔서 생사를 모르다가, 친구 나이 60이 넘어 부친께서 전사하여 당신을 죽음의 전장으로 내몬 전범들과 함께 야스쿠니신사에 모셔져 있다는 것을 알았답니다. 그래서 첫제사를 올리고 함께 ‘덴노반자이’ 강요 속에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다가 고혼이 된 조선인 징병자들을 모신 위령비를 인근 도시 라발울에 세웠답니다. 우리 선조들과 친구는 일본인과는 한 하늘 아래 살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맹세를 지킬 도리가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고,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천지창조가 다시 되지 않는 한 한국과 일본은 영원불변의 이웃입니다. 우리도, 내 친구도 일본정부를 상대로 최근 한국에서 유행하는 국가불법행위에 대한 재심이나 배상청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이 망각과 관대함도 알아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다시 나는 이 선언을 되삼켜야 하나를 고민합니다. 많은 한국인이 지금 이런 고민에 빠질 것입니다. 8월15일은 한국의 광복절, 일본의 종전일(전범에서 평화주의자로 개장(改裝)한 ‘히로히토’의 성단(聖斷)으로 포장한 패전)입니다. 74년 전 이날 한국민은 잔혹한 폭압에서 해방되어 독립과 자유를, 일본국민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찾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젊은이들도 세계살육 첨병으로 내몰린 죽음의 행군 대신 삶을 되찾은 날입니다. 그로부터 오늘까지 양국민은 폐허에서 고투하여 지금 한국은 경제적 성취와 민주화를 이루며 평화체제를 모색하고, 일본은 평화에 기여하며 선진국에 진입하여 ‘아름다운 조화’를 뜻한다는 레이와(令和)시대(천황제에 대한 견해는 다양합니다만 일본의 공식설명)와 2020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이라는 축제를 맞습니다.

이 설레는 새시대의 여명에 아베 총리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국의 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주는 수출규제를 선포했습니다’(일본 지식인 성명). 총리는 한국이 국가 간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경제전의 동기라고 했습니다. 그 약속이 65년 한일협정을 말한다면 당초부터 협정의 해석과 인식에는 양국의 합의가 없는 명백한 차이가 있고(한일갈등을 해결할 생산적 규범으로서의 불구불임성(不具不姙性)을 지적한 학생운동이 필자가 참여한 6·3운동), 종군성노예·강제징용공 문제 등에 대한 갈등은 양국 정부가 이 차이를 해소하지 못한 데 기인한 것입니다.

어떤 논자는 총리의 경제전 선포가 국교정상화 뒤 일본이 의도했던 일한 수직하청계열화분업체제 대신 한국이 경쟁자로 등장한 데 대한 조바심이라고 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정부 주도로 이러한 종속예속경제를 이웃나라에 강요하는 제국주의적 시도가 이 시대에 용납될까요? 또 어떤 논자는 총리의 조치가 한국을 일본의 하위에 두는 아시아패권추구를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한반도를 폭약고로 아시아의 평화파괴를 부르고 나아가 세계평화를 파괴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 아닙니까? 또 이렇게 일본이 아시아의 패자가 된다면 그 연장 위에서 세계의 패권을 두고 싸울 다음 상대는 어떤 국가입니까? 미국의 양식도 일본중심 아시아정책을 재숙고할 것입니다.

우리 고향 영남 안동에서는 상서로운 일을 앞에 두고는 매사를 근신하고 삼갑니다. 일본은 새 ‘천황’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조화’의 시대와 2020년 세계인을 부르는 큰 잔치를 앞두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일의대수(一衣帶水)의 이웃 한국 영남지방에서도 축복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총리는 일본 국민과 이웃나라와 세계시민의 기대와 소망을 배신하는, 귀국의 ‘천황’과 국민에게 불충하는 조치(이를 통속적 언어로는 잔칫상에 재를 뿌린다고 함)들을 취소하기 바랍니다.”

김도현 (전 문체부 차관·전 영남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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