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금)

[목요시선] 여성 노인 성폭력 피해자는 충격이 적다고요?

| 2019-08-15 08:09:45

노인 대상 성폭력 발생건수

실제로는 연간 수천건 추정

하지만 신고율은 극히 저조

피해이후 무력감 등 큰 상처

법 정비·인권교육 서둘러야


광주고법 제1행정부(재판장 최인규)는 택시 안에서 성추행을 저질렀다 해임된 ㄱ교감의 해임처분 취소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해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회경험이 풍부한 67세 여성이고, 정신적 충격이나 성적 수치심은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회경험이 많은 여성 노인은 성폭행 피해를 입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인가. 아니면 노인 여성은 성폭력을 원한다거나 성폭력 가해자가 젊은 남자면 “늙은 여자가 고마워해야 할 일”이라는 식의 어이없는 남성들의 성희롱 발언을 법조인이 믿고 있었던 걸까. 또는 성추행이란 ‘성적 수치, 혐오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일체의 모든 행위라는 법적 해석을 성추행 범죄판결을 가해자의 행동이 아닌 피해자의 대응 모습을 보고 판단을 내린 걸까.

이 기사를 보는 순간 10여 년 전 필자가 여성의 전화에서 활동할 당시 70대 여성의 성폭력사건이 생각났다. 상담전화기 너머에서 자신이 70대 여성이며 성폭력을 당했는데, 경찰에 신고를 했더니 경찰에서 “할머니! 바깥에 조심히 다니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라고 하면서 돌아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상담을 하고 즉시 담당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해 강력히 항의를 하자 바로 수사에 들어가고 이틀 만에 범인을 잡았다.

우리 사회의 성폭력 신고율은 여전히 10%를 넘지 못하는데, 여성 노인들은 ‘성폭력은 여자가 잘못해 발생한다’는 식의 교육을 받은 세대여서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을 더 수치스러워 하기 때문에 신고율이 아주 낮다. 이 때문에 노인 대상 성폭력은 실제론 연간 수천 건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여성 노인은 강간을 당하고도 당할 뻔했다거나 도둑이 들었다고 축소 신고하는 경향이 있다.

성폭력 사건 발생 수에서 어린이 성폭력과 장애인 성폭력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자신보다 약하고 통제하기 쉬운 사람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성폭력은 욕구를 참지 못해서가 아니라 힘과 권력의 문제임을 새삼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동이나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사건이 많은 이슈가 되면서 이들을 사회적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는 반면, 여성 노인의 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에는 여전히 무관심하다.

비록 그 형태는 개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지라도 노인 여성이나 아동뿐 아니라 어느 연령대에 있든 타인으로부터 성적인 침해를 당한 여성의 피해는 비슷하다. 특히 성폭력피해 경험 여성 노인은 피해 이후 자신이 너무나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느끼는 무력감이 크다. 또한 자식 나이의 남성에게 당한 수치심, 편견에 시달려야 하는 모욕감, 신고를 하더라도 이후 “젊은 남자의 인생을 망쳤다”라고 생각하는 죄책감이 뒤섞이는 감정을 겪는다.

#미투(Me too) 운동 이후,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성폭력을 지우는 한국사회에서 침묵을 강요당했던 목소리가 #미투 운동을 통해 성폭력의 본질을 보게 했다. 성폭력은 ‘성적자기결정권’에서 나아가 신체적·성적·정신적 ‘통합성(integrity)’에 반하는 인권침해이며 시민권 문제이며 건강권의 문제다. 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자기결정권에 대한 ‘적극적 합의 여부’로 규정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기준에 따라 성폭력범죄의 정의부터 법률에 명문화하여 범죄에 대한 입증 책임을 피해자가 아닌 수사기관과 가해자에게로 전환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수사기관과 재판부의 ‘성인지적 교육’이 의무화되고 정부가 밝힌 공교육에서의 인권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10여 년전 자살까지 생각했다던 70대 여성 노인이 “이 나이에 젊은 놈한테 그런 일을 당했다 카면 누가 믿겠노”라는 말이 지금도 너무나 가슴 아프다.

이승연 (소우주 작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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