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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한국문학] 떠오르는‘제국’, 부활하는‘총독의 소리’

2019-08-15

日서 상영중인 영화 ‘주전장’
제국주의자의 목소리 생생
한국의 일각선 지금 어떤가…
1965년 체제에 은폐돼 있는
식민주의적인 무의식 여전

[우리말과 한국문학] 떠오르는‘제국’, 부활하는‘총독의 소리’

지난 유월, 도쿄대학교에 재직 중인 후쿠이 레이 교수의 연락을 받았다. 현재 일본에서 상영중인 ‘주전장(主戰場)’이란 영화가 7월에 한국에서 개봉될 터인데, 아주 잘 만든 영화이니 꼭 관람하라는 내용이었다. 후쿠이 레이 교수는 5월에 우리 학과에서 진행한 해외학자 초청 특강을 하러 대구에 왔는데, 그때 함께 탐방한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성노예)의 존재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의 영상을 보던 그는 일본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탄원서에 서명을 하며 ‘희움’을 소개해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 시민이 함께 연대했듯이, 동아시아의 평화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각국 시민이 서로 연대할 때 가능하다.

‘주전장’은 일본계 미국인 감독이 일본 내외의 정치가, 지식인들을 인터뷰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각도로 탐색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아베 정권은 일본군의 개입 사실을 은폐하고 있는데, 그 핵심에 일본제국헌법으로의 개정을 꿈꾸는 ‘일본회의’의 욕망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요지다. 영화에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한국인과 일본인을 비교하며 일본의 우월과 한국의 야만을 강조하는 제국주의자들의 목소리였다. 무례한 이들의 언설에 선명하게 겹쳐지는 것은 1967년에 발표된 최인훈의 소설 ‘총독의 소리’다.

“충용한 제국 신민 여러분, 제국이 제기하여 반도에 다시 영광을 누릴 그날을 기다리면서 은인자중 맡은 바 고난의 항쟁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제국의 군인과 경찰과 밀정과 낭인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총독의 소리’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광복 후 20여 년이 지났지만, 식민지배의 상징이었던 총독이 여전히 반도(조선)에 남아 지하조직을 결성해서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총독은 전쟁 전의 영광스럽던 제국으로 회귀할 것을 꿈꾸며, 조선을 다시 제국의 식민지로 만들고자 현 시국 상황을 분석하고 기록한다. 총독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조선의 통일과 민주주의 확립이다. 그렇게 되면 조선을 다시 식민지화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이 발표되던 1967년에 있었던 한국의 선거과정을 지켜보면서 총독은 크게 기뻐한다. 금권 부정선거로 얼룩진 당시 선거가 말해주듯이 “역시나 조선인들은” 민주주의의 자유를 거추장스러워하며 오히려 제국의 식민지배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난날의 발길질과 뺨맞기, 바가야로와 센징을, 그 그리운 낱말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총독의 평가는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제국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양상이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정치사회에 대한 풍자적 성격을 띠고 있다. 작가 최인훈은 빙적이아(憑敵利我), 즉 적의 입을 빌려 우리를 깨우치게 하는 방식으로 1965년 체제(한일협정)가 야기한 정치사회적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 속에는 국내외적인 복잡한 정치상황과 함께 여전히 우리 안에 작동하는 식민주의적 무의식에 대한 냉철한 비판도 있다. 내면화된 식민주의적 무의식이 국가주의적 파시즘과 연동될 수 있음을 작가는 간파하고, 1965년 체제에 가장 적절한 ‘총독’을 불러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사과가 선행되지 않는 한, 현재와 같은 한일 양국 간의 문제는 반복될 것이다. 아베 정권에 의해 조용히 ‘제국’은 떠오르고 있다. 수십 년을 한국에 살면서 한국에 관한 비하발언을 일삼는 일본의 우익 언론인, “아베 수상님께 진심으로 사죄한다”며 눈물로 호소하는 어느 보수단체의 대표, 그리고 ‘우리 일본’을 운운하는 일부 정치인들. 그들을 보니 조선인들이 제국의 식민지 노예가 되기를 바란다고 호언장담하던 ‘총독의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1965년 체제에 은폐된 제국의 욕망과 식민주의적 무의식은 50년이 지나도 이렇게 건재하고 있다. 제국의 식민지 조선을 꿈꾸는 ‘총독의 소리’, 그 부활을 목도하는 씁쓸한 광복절 아침이다.

배지연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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