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6(월)

[우리말과 한국문학]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

| 2019-09-12 09:01:11

일상언어는 은연중 사고 지배

일제가 한말글 없애려던 이유

백색국가 제외는 또다른 침략

주시경의 한글사랑 가슴 먹먹

이참에 일본어 잔재 씻어내야

김덕호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 국어학자이자 민족주의자인 한힌샘 주시경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다. 주시경 선생은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학회의 기초를 마련한 분이다.

금년 1월에 조선어학회의 조선어 사전 편찬 사건을 소재로 한 ‘말모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말모이’란 사전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영화 ‘말모이’는 일제시기 조선어 말살을 위해 혈안이었던 일제의 감시를 피해 우리 말글을 ‘사전’으로 지켜내려고 했던 선각자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다. 실제로 주시경 선생께서 초석을 다진 조선어학회와 학회 선각자들이 끝내지 못했던 조선어 사전 편찬 이야기를 소재로 만든 영화라 새삼스럽게 한말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올해는 기미독립선언 100주년과 한글학회 창립 111돌을 맞이하는 해이다. 원래 한글학회의 전신은 조선어학회였다. 1907년에 주시경 선생께서 하기국어강습소를 열었다가 이듬해 1908년에 봉원사에 모여 학회의 뿌리가 되는 국어연구학회를 만들었다. 그런데 1914년 선생의 급작스러운 별세 이후 일제의 극심한 탄압으로 학회 활동은 잠시 중단되었다. 이후 1921년 조선어연구회란 이름으로 학회를 부활하면서, 1929년부터 조선어사전 편찬을 시작하게 되었다. 1931년에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꾸면서 한말글을 지키기 위한 활동과 조선어사전 편찬을 계속 진행하게 된다. 이 단체를 눈엣가시처럼 보아왔던 일제는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켜 회원 33인을 검거하고 학회를 해체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일제가 제시한 죄목은 내란죄였다. 공소장에는 “고유 언어는 민족정신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 사전 편찬은 조선 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 운동의 한 형태”라는 것이라 내선일체와 황민화라는 이름으로 강제적인 동화정책을 펼쳐온 일제에 항거할 목적으로 벌인 내란죄라는 것이었다.

검거된 이들 중에 16명이 기소되었고, 한뫼 이윤재 선생과 효창 한징 선생은 재판 중에 모진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했다. 이외에도 고루 이극로 선생은 6년, 외솔 최현배 선생은 4년, 일석 이희승 선생은 2년6개월을 언도받았다. 이중 한뫼 이윤재 선생의 묘소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구 달성군 다사읍 마천산에 있어서 매년 한글날에 대구 한글학회 회원들과 참배하곤 했다. 그러다가 2013년 9월에 선생의 묘소는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이장되었고, 한글 묘비는 2016년에 고향인 김해의 나비공원으로 이전됐다. 그리고 조선어학회 간사장이었던 이극로 선생은 영화 ‘말모이’에서 조선어학회의 대표인 류정환의 실제 모델이다. 이극로 선생은 경남 의령의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과 독일에서 유학한 국어학자이므로 극중 배역의 출신 배경과는 다소 차이가 난다.

누군가는 그토록 말을 지키려 했고, 다른 누군가는 그 말을 빼앗으려고 했는가. 말이란 무엇인가. “언어가 정신을 지배한다”는 말도 있듯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 은연 중에 사람의 사고를 지배할 수 있다. 일제가 한말글을 없애려고 한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최근 일본 정부가 수출심사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은 또 다른 침략을 위한 공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과 같은 시대 상황에 한힌샘 주시경 선생의 정신과 조선어학회의 눈물겨운 활동을 돌이켜 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더불어 국민의 일본 상품 불매운동에 공감하면서 국어학자로서 우리 말살이 속에 남아있는 일본말 찌꺼기를 청산해야 하겠다는 의무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2005년에 국립국어연구원에서 발간한 ‘일본어투 용어 순화 자료집’을 찾아서 1천171개의 순화 대상 용어에 대해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많은 순화 권장 용어들이 국민 생활어 속에 순화되어 현재 사용되고 있어서 그나마 참 다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다수의 순화 대상 용어들이 우리 주변에서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참에 일본어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내고 한말글을 잘 지켜서 민족의 자존을 높이고 대한민국의 국격을 바로 세웠으면 한다.

김덕호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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