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일)

[서성희의 독립극장] 조국을 흔드는 바람

| 2019-10-09 08:04:25

오오극장 대표

내게 ‘조국 사태’는 실망이라는 감정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두 편으로 갈라서는 모습을 지켜보는 지금은 불안함과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찾아본 영화는 아일랜드 내전을 다룬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다.

영화는 영국의 압제에서 벗어나 독립하려는 아일랜드 공화국 군(IRA)의 단합된 투쟁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러나 단합된 조국 아일랜드 속에도 비극은 있다. 지주의 하인이었던 크리스가 고용주의 협박에 못 이겨 독립군인 IRA의 위치를 누설한 것이다. 데미안은 크리스가 아직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망설이지만, “비록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지금은 전쟁 중이며, 배신행위를 그냥 둘 수는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친형제와도 같았던 크리스의 심장을 자신의 손으로 쏜다. 데미안은 사람을 살리는 전도유망한 의사에서 독립군이 되어 권총으로 동생같던 크리스를 쏜 후 “조국이란 게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는 거겠지?”라며 눈물을 삼킨다. 그래도 외부에서 불어오는 위기의 바람이 극심한 경우 오히려, 조국은 공동의 신념과 가치로 지탱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아일랜드 독립 투쟁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진짜 이야기는 아일랜드가 영국과 평화조약을 맺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IRA가 결사 항전을 하자, 마침내 영국은 북아일랜드를 영국령으로 남기는 불완전한 평화조약을 타협안으로 내놓는다. 현실적인 형 테디는 일단 조약을 받아들이고,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가자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동생 데미안은 조국의 완전한 자유와 독립은 타협될 수 없는 목표라는 주장을 한다.

생각이 다른 형제는 서로를 등질 수밖에 없는 슬픈 아일랜드의 운명을 상징하듯 갈라선다. 결국 동생 데미안은 조약 반대파와 함께 지하 활동을 하게 되고, 아일랜드 자유국 정부의 무기를 훔치다 잡힌다. 아일랜드 자유국 정부군의 장교가 된 형 테디는 동생에게 “전향하고 동료들의 위치를 밀고하라”고 설득하지만, 데미안은 “내가 크리스의 심장을 쐈어. 왜 그랬는지 형도 알잖아”라는 말로 거부한다. 결국 테디는 자신의 손으로 동생을 처형하는 비극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가 2006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던 해 이라크 내전이 있었다. 켄 로치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과거 아일랜드의 상황은 지금 이라크전과 다르지 않다. 나는 과거를 통해 현재의 모순을 비판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영국이 아일랜드를 두 집단으로 분열시키고 분할-통치했던 비슷한 시기에, 영국은 이라크를 수니파와 시아파로 분열시키고 분할-통치함으로써 이들 간에 씻을 수 없는 원한의 싹을 만들었다. 이것이 다시 미국의 침략 과정에서 불거져 이라크의 내전을 불러왔다.

1922년의 아일랜드 내전은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특수한 사건이지만, 이 사건은 과거를 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역사는 언제나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중요한 테마’이다. 이 역사의 교훈은 “네가 싸우는 적이 누군지는 알기 쉽지만, 네가 왜 싸우는지는 알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싸움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왜 싸우는지 알면 해결책과 타협안이 더 쉽게 도출될 수 있다. 왜 싸우는지에 대한 이성적 판단력을 상실하는 순간 분열은 더 쉽게 조장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누구와 싸우는 걸까? 우리는 지금 왜 싸우는 걸까? 조국을 흔드는 이 바람이 자기 밥그릇 챙기는 방향으로 부는 바람이 아니라, 더 나은 조국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는 방향으로 부는 바람이 되도록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시점이다.

오오극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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