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9(화)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 적절한 좌절감

| 2019-10-14 08:16:31

“아이가 새 환경서 갈등 생기더라도 지켜봐줘야”

일러스트=최소영기자 thdud752@yeongnam.com

마음이는 어릴 적부터 동네 어른들께 착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놀이터에서 미끄럼틀 순서를 기다릴 때에도 줄을 잘 섰고, 다른 아이들과 놀 때에도 질서와 규칙을 잘 지켰지요. 마음이의 옆에는 항상 엄마가 있었습니다. 만일 미끄럼틀 순서를 기다리다 누구라도 새치기를 할라치면 엄마가 먼저 나섰습니다. “얘, 차례를 지켜야지”하고 엄마는 그 아이를 맨 뒤로 보냅니다. 마음이는 친구가 먼저 타도 괜찮았는데, 엄마는 굳이 마음이가 피해보는 것 같아 늘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 주었습니다.

마음이가 학교에 들어왔습니다. 마음이는 복도에서 뛰어다니지도, 계단에서 장난을 치지도, 공부 시간에 떠들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마음이 같은 아이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학교에 와 보니 복도에서 마구 뛰어다니는 친구, 계단에서 다른 아이를 밀어서 다치게 하는 친구, 공부 시간에 뒤돌아보며 말하는 친구가 어느 반에나 꼭 있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죠.


자라는 아이들 부모의 보호는 한계
자립심 기르기 위해선 내성키울 필요
갈등상황 지나치게 끼어들지 말아야



어느 날, 마음이도 복도에서 뛰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는 복도에서 다른 아이들처럼 함께 뛰며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같은 반 친구와 부딪쳐 손목뼈에 금이 가서 한동안 깁스를 하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날 마음이 엄마는 무척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학교로 달려와 선생님을 만나고 마음이와 부딪친 아이 엄마에게 화를 냈습니다. 마음이는 같이 놀다가 그랬는데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날 이후 마음이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집에만 오면 “오늘은 누가 널 괴롭히지 않았니”라고 묻는 엄마의 물음 때문이었지요.

마음이 엄마는 1980~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며 부모님의 지나친 관심과 통제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 시절이 너무나 힘들고 지긋지긋 했습니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 아이가 생기니 ‘나는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야지’라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 내 아이가 피해를 보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마음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즉각 나타나 해결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좋은 줄 알았습니다. 마음이는 늘 보호 받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엄마의 보호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마음이는 점점 자라나 학교에 갔고, 엄마가 없는 곳에서 생기는 문제에 대해 마음이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마음이는 늘 엄마가 문제를 해결해 주었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서 일어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에 대처하기 어려웠습니다. 작은 스트레스 상황이 생겨도 극도로 불안해하고 스스로 해결하기에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마음 근육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부모 손을 떠나는 순간 늘 새로운 상황과 마주칩니다. 아이들이 만난 세상도 부모님 품처럼 늘 바른 일만 일어나면 좋겠지만 세상은 늘 규칙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자신이 ‘규칙만 잘 지키면’ ‘차례만 잘 지키면’ ‘인사만 잘 하면’ ‘양보만 잘 하면’ 세상도 늘 나에게 그러면 좋겠지요. 하지만 그런 세상은 환상 속에나 있을 뿐, 세상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있고, 남에게 해를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세상은 부조리한 상황의 연속입니다. 늘 예상치 못하게 새치기 하는 사람, 시비 거는 사람, 양보하지 않는 사람, 목소리 큰 사람은 꼭 나타나니까요. 이럴 때마다 엄마가 아이를 지켜낼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들, 같이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대부분 학창시절에 억울한 일들을 당해보았을 겁니다. 때로는 과도한 체벌을 받았던 기억도 있을 테고요. 분하지만 친구에게 맞았거나,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로 벌을 받아본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기억들로 인해 자신의 성격에 심각한 장애가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억울한 경험 때문에 이상한 어른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고요. 기억을 돌이켜보면 안타깝고 분한 경험이겠지만, 그것으로 내 성격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입은 것은 아닙니다. 물론 만성적인 학대나 폭력, 성폭행 같은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은 예외입니다. 대체로 우리가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는 오히려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것처럼 말이죠.

아이들이 세상에 나와 꿋꿋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대인관계에서 갈등 상황이 없으면 가장 좋겠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을 키우려면 적당한 수준의 좌절감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아이에게 닥친 상황이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해도 그것을 방관하고 있는 그대로 지켜보며 기다려주는 어른의 인내심도 필요합니다. 아이가 직접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면 그 문제에 대해 캐묻지 않고 덮어주는 것도 부모의 사랑입니다. 완벽한 부모의 역할이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아이들 세계에서 생긴 심각하지 않은 문제는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기다려주는 시간 동안 아이는 적절한 좌절감을 맛보고, 그것을 이겨내며 마음의 근육을 키워나갑니다. 아이들 문제에 지나치게 끼어드는 어른이 되지 맙시다. 적절한 좌절감이 아이를 더 건강하게 해주니까요.

김대조(대구비슬초등 교사)

[Copyrights ⓒ 영남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건강

교육

가장 많이 본 뉴스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