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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단상] 고통의 대물림

2019-12-07
20191207
최환석 맑은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진료를 보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부모님처럼 안 살려고 그랬는데 내가 우리 애들한테 똑같이 하고 있어요.” 툭하면 화내고 고함지르고 부부싸움하고 심지어 폭행까지 하는 부모를 저주하면서 닮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지만, 어느 순간 똑같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나마 이런 절규라도 하고 도움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래선 안 된다는 자각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실제로는 자각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고서도 왜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을까.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당신보다 네댓 배 큰 거인하고 같이 살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런데 그 거인이 당신에게 무서운 표정으로 화를 내고 고함을 지르고 있다면 아마 그 두려움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당신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 죽음의 공포는 겪어보지 않고는 알기 힘들다. 어쩌면 이런 공포와 두려움이 당신이 어렸을 적에 겪었던 감정이었을 수 있다. 그래도 당신은 거인으로부터 도망이라도 갈 수 있지만 어린아이는 그럴 수가 없다. 거기에 더해서 아이들에게는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유기불안이 작동한다. 그래서 애정을 확보하기 위해서 감정을 누르고 눈치를 보는 것이 습관이 된다. 저 거인이 오늘은 기분이 괜찮을까? 오늘은 날 사랑해 주려나? 오늘은 화를 내려나? 문제는 이런 습관이 다른 사람한테도 반복이 된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제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내가 참고 눈치봐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지므로, 내가 담을 수 있는 감정의 무게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언젠가는 초과하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우울해질 수도 있고 불안해질 수도 있으며 강박증도 생기고 공황장애도 생기게 된다.

물론 성격의 형성이나 정신적인 발달 과정을 한 가지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 타고난 성질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며 인생은 언제나 카오스적이어서 많은 요소들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주된 경험들은 뇌의 작동방식을 결정해서 나머지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금까지 감정에 대한 개념은 두뇌에 본능적으로 내장되어 있으며 환경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라는 것이 주된 생각이었지만, 최근에는 감정은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성하는 것, 즉 만들어진다는 개념이 확산되고 있다. 이를 구성주의라고 하는데 감정이 구성되는 데에는 나의 뇌가 어떤 패턴에 습관이 들었는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부정적인 사고패턴이 사춘기 이전에 확립이 된다면 나이가 들수록 긍정적으로 생각하기가 어려워진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부모처럼 살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그는 아마도 사춘기를 넘어서면서 자신이 담을 수 있는 감정의 한계치를 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청소년 시절은 삶이 단순하므로 그냥 무난히 넘어갔을 수 있지만 당연히 화를 많이 쌓아두었을 것이고, 분노를 표출하지 않으려하니 그 분노가 자꾸 자신을 향하는 바람에 자존감이 바닥을 치게 될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잠자기가 힘들어진다. 이제 나이가 들면서 사회생활과 결혼생활에서 자신이 참아야 할 분노가 넘쳐나니 화가 꽉 차 있는 상태에서는 더 이상 억압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노는 대개 만만한 사람들에게 터진다. 그래서 밖에서보다는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분노를 표출하기가 더 쉽다. 당신의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과 모습은 어릴 때 당신의 모습과 똑같을 것이다. 이제 당신의 아이들도 화를 담아두고 눈치를 보고 자랄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그렇다고 당신의 부모는 나쁜 마음을 먹고 가족들을 괴롭히기 위해 그랬을까? 아니다. 그들도 그렇게 자랐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인생의 고통은 이렇게 대물림된다. 이 불운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뇌의 부정적 패턴을 긍정적인 쪽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컵에 물이 반만 차있는 걸 보고 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긍정적으로 변한다는 것은 어쩌면 성격이 변해야 한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으므로 오랜 기간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최환석 맑은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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