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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15] ‘파탄 사회’의 위험을 탐사하는 소설의 힘

2019-07-18

권력 조종하는 재벌에 던지는 소설의 경고 메시지

20190718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이야기의 힘을 새삼 보여주는 소설이 나왔다. 1천200쪽에 육박하는 조정래의 신작 ‘천년의 질문’(해냄·2019)이 그것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돈이 행사하는 위력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라 하겠다. 돈의 위력은 작가가 인용해 둔 사마천의 다음 말에서 자명하다. ‘자기보다 10배 부자면 헐뜯지만 100배 부자면 두려워하고, 1천배 부자면 고용당하며, 1만배 부자면 노예가 된다’(1권 275쪽). 이러한 사정이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전개된다는 것이 작가의 진단이며, 그 문제적인 양상을 폭로하고 대안을 모색해 본 결과가 바로 소설 ‘천년의 질문’이다.

소설 ‘천년의 질문’ 한국 사회의 온갖 문제 꼬집어
재벌개혁 해결책으로‘비용 없는 핸드폰 선거’등
작가의 근본적 문제의식 넘어 구체적 대안도 제시
현재 상황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의 참된기능 입증


20190718

이 작품의 초점은 재벌에 놓여 있다. 보통 사람들보다 1만배 이상 부자여서 우리를 마음대로 부리는 재벌의 횡포를 다각도로 보여주려는 것이 작가의 의도다. 다각도로 보여 준다 함은 재벌이 국회의원이나 정부의 고위 공무원, 법조인, 언론계 인사 등과 어떠한 커넥션을 맺고 있으며 그들을 어떻게 주무르는지를 그려낸다는 말이다.

조정래가 비판적으로 제기하는 문제는 실로 전방위적이다. 짧은 지면에 일일이 소개하는 것은 무리지만, 이 작품이 얼마나 폭넓게 권력층의 문제를 다루는지 알려주기 위해 다소 무리지만 주요 사항을 열거해 본다.

먼저 재벌에 대해서. 비자금 조성과 그룹 내 일감 몰아주기 및 막대한 사내유보금 축적, 문화사업을 통한 부의 세습 및 세금 회피, 재벌 가문의 갑질과 윤리적 타락, 광고를 통한 평상시의 언론 길들이기 및 긴급할 때의 언론 통제, 떡값을 통한 권력 기관 조종 등 현란하다 할 만큼 많다. 입법·사법·행정부의 경우라고 다르지 않다. 이들 모두에 해당되는 특수활동비,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주의와 국민 비하, 고위 공무원의 낙하산 인사, 국회의원들의 각종 세금 탕진 행위들과 온갖 특권 그리고 무능과 태만, 부당한 인사 청탁, 뇌물 및 향응 수수,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조장하는 사법부의 전관예우와 국민의 법 감정을 무시한 저질 판단, 로펌들의 ‘법 장사치’ 노릇, 검사동일체 원칙과 상명하복에 강박된 검찰 조직의 정의롭지 못한 권력 행사, 이상의 기관과 결탁해 여론을 조작하는 언론 등이 이 소설의 비판 대상이 된다.

조정래가 비판과 반성의 눈길을 주는 것은 이들 5대 권력에 한정되지 않는다. 환경 문제와 경제민주화의 지연, 기업과 대학의 비정규직 문제, ‘스마트폰 쓰나미’ 현상, 성매매, 마약 유통, 장애인 성폭행, 기득권 계층의 공감의식 결여 등 온갖 사회 문제들이 망라된다. 우리들 자신에 대한 반성도 빠지지 않는다. 권력 기관의 부정 및 불법과 관련해서는, 권력을 감시하는 일에 태만한 ‘국민으로서의 직무 유기’가 반성적으로 제시된다. 촛불 혁명을 이루었지만 민주주의의 일상화를 이루지는 못한 국민의 책임이 절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기 인생에 무책임한 것”이라는 표어로 여러 차례 반복된다. 윤리적인 면에서는, 부처가 가르친 ‘삼독’을 생각하지 못하는 잘못 곧 ‘욕심 부리지 말고, 화내지 말고,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탐진치(貪瞋癡)의 가르침(1권 272쪽)을 깨닫지 못하는 허물이 반성된다.

물론 ‘천년의 질문’은 비판과 반성 일색이지도 않고 부정적인 인물들의 고발에 그치지도 않는다. 위에 열거한 숱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희망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조정래에게는 확고하다. 이는 세 가지로 드러난다.

첫째는 참여연대나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등 여러 시민단체 및 종교계의 업적을 기리는 것이다. 둘째는 작품 내외에 걸친 긍정적인 인물들의 활약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대중정부에서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을 지냈던 이태복의 ‘5대 거품 빼기 운동’ 곧 기름값, 통신비, 카드 수수료, 약값, 은행 이자 인하를 목표로 한 시민 운동의 경과와 실패를 상세히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3권 271~313쪽). 작중 인물로는 심층 추적 기사를 써 내는 주인공 장우진과 그와 함께 새로운 시민단체를 꾸리는 데 협력하는 인물들을 들 수 있다. 셋째는 이들이 기획하는 새로운 시민단체의 구상이다. 1천만명이 1천원씩 후원해 100개의 시민단체를 만드는 ‘너와 나 나라 사랑하는 모임’ 곧 ‘너나 사모’ 운동을 통해 ‘뭉쳐서 외치는 시민의 힘’(3권 321쪽)을 바탕으로 “시민단체의 전 국민화, 시민 활동의 일상화, 시민 요구의 정치화”(3권 325쪽)를 제시한다.

더 나아가 작가는 한국 사회의 제반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들을 제시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재벌 개혁을 핵심으로 하는 경제민주화라고 지적한 뒤, 그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비용이 안 드는 핸드폰 선거’를 제안한다(2권 286쪽, 3권 358~359쪽). 그 외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데, 이 글에서는 국회의 개혁에 대해서만 소개한다. 작가가 바라는 것은 봉사정신으로 무장한 스웨덴식 국회인데(3권 204~213쪽), 전 국민적인 시민단체를 결성해 그러한 제안을 한 후 이에 동의하지 않는 국회의원에 대한 낙선 운동을 전개하자는 것이다.

한 편의 소설을 통해서 현재 한국 사회의 온갖 문제들을 제기하고 각각의 대안까지 제시한 데 대해서는 여러 생각이 있을 수 있다. 한편으로는 현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입장을 지나치게 앞세운 것은 아닌가, 사회 상태의 복잡다단한 측면을 과감하게 단순화한 것은 아닌가 하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 문제의 제시라는 목적의식이 앞서서 문학적 향취는 찾을 수 없는 거친 작품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가능하다.

먼저 뒤의 의심에 대해 ‘아니요’라는 답을 명확히 한다. 주요 인물인 김태범과 장우진 각각의 풍성한 스토리와, 윤현기와 고석민, 장우진의 관계, 최민혜와 황원준의 사랑 이야기, ‘너나 사모’ 운동을 준비하는 인물들의 공동체적인 성격 등이 작품의 주된 줄기 역할을 하면서 인간 삶의 양태와 심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담고 있는 까닭이다. 김태범와 임예지, 안서림의 스토리를 종결 짓지 않는 방식으로 남겨두는 기법 또한 독자의 참여를 이끌면서 작품의 여운을 강화한다. 이러한 특성들에 의해, 일찍이 ‘태백산맥’이 보여 주었던 소설적 흡인력이 ‘천년의 질문’에서도 확연하다. 문학적인(?) 성취에 기대지 않더라도 답은 동일하다. 사회 문제의 탐구야말로 현대 장편소설이 해 온 주된 역할이기 때문이다. ‘천년의 질문’이 수행해 낸 이러한 역할은 근래 나오는 우리나라의 소설들 대부분이 개개인의 시야에서 작고 소소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어 온 상황이라 더욱 주목된다.

이 소설을 쓰는 조정래의 시각이 편협한 것은 아닌가 하는 비판에 대해서도 답을 해 두자. 이는 작가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오랜 정경 유착의 결과 대한민국 사회의 안정이 심각하게 파괴되었다는 것이 그의 문제의식이다.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된 지 60년이 지나도록 역대 정권들 모두가 ‘경쟁력 있는 기업의 육성’과 ‘분배보다 축적이 필요한 때’라는 말만 반복하며 일방적으로 기업을 편든 결과, “30대 기업이 가지고 있는 사내유보금이 900조가 넘는데, 그들 기업의 비정규직이 평균 42%”(3권 360쪽)인 상황,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의 49.19%(1권 390쪽)를 차지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조정래에게 이러한 상황은 한국 사회가 ‘위기 사회’로 치달아가고 있으며 ‘몰락 사회’ ‘파탄 사회’의 위험에 직면한 것으로 해석된다(2권 284~285쪽).

노동 인구 10명 중 4명이 미래를 계획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사회란 그 안녕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 주변의 뉴스들이 위기의 징후를 매일같이 보여 주지 않는가. 이러한 상황에 눈을 감지 않는다면, ‘천년의 질문’에 대한 다른 맥락에서의 딴지걸기란 그야말로 한가한 노름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것들을 앞세우지 말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성찰하게 하는 이 소설의 힘을 주목해야 한다. ‘천년의 질문’의 사회 성찰이야말로 실제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의 참된 기능, 현대사회의 탐구라는 장편소설의 주된 역할을 새삼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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