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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25] 저널리즘과 소설의 거리

2019-12-05

치열한 미디어 각축전…혼란만 부추기는 저널리즘
문제 키우거나 축소…또다른 권력 행사
옳고그름 판단 어려운 시대 ‘독서가 답’
사회문제 깊이 조명한 소설에 주목해야

[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25] 저널리즘과 소설의 거리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25] 저널리즘과 소설의 거리

미디어는 콘텐츠다. 현대 미디어학을 수립한 마샬 맥루한의 말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어떤 콘텐츠가 있을 때 그것이 아무런 변화 없이 이런저런 미디어를 통해 유통된다기보다 특정 미디어에 맞추어 콘텐츠가 선택되고 가공되기 마련이다. 텔레비전은 책과 달리 텔레비전에 적합한 콘텐츠만을 골라서 전달하며, 대부분의 경우 자신에게 적합한 형식으로 콘텐츠를 가공한 뒤에 그렇게 한다. 종이 신문과 인터넷 신문이 다루는 기사의 종류에 차이가 있고 같은 뉴스거리라고 해도 다루는 내용과 방식이 달라지는 것도 맥루한의 말을 증명한다. 이렇게 각각의 미디어는 자신에 적합한 콘텐츠를 골라 자신의 특성에 맞추어 가공한다.

사정이 이러해서 ‘저널리즘은 사회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저널리즘이라는 매체가 사회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말이 아니다. ‘기레기’라는 말이 알려주듯 그런 경우가 적지는 않지만, 여기서는 저널리즘이 사회문제를 사회문제로 만들어 내는 경우를 주목한다. 사회가 돌아가는 데 있어서 바람직하지 않은 일도 저널리즘이 다루지 않으면 사회문제가 아니게 되고, 그와는 반대로 사회적으로 그리 큰일이 아니어도 저널리즘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문제로 부각하면 사회문제가 된다는 것, 이런 사정을 가리키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를 관련시켜 보자. 저널리즘을 이루는 미디어들이 자신에 맞는 콘텐츠를 골라 강조함으로써 사회문제를 만들어 낸다. 어떠한 콘텐츠를 골라 사회문제로 부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미디어의 특성만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미디어를 다루는 저널리스트들의 의도와 그들을 관리하는 언론사 사주, 그리고 이들과 관계되어 있는 사회 특권층의 이해관계 등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때로는 이런 영향력이 훨씬 큰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의 특성이 ‘자신에 맞는 사회문제’를 만들어 낸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정치나 경제의 권력자들은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있듯이 언제까지고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지는 못하지만, 물질로 이루어진 미디어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영향력을 계속 발휘한다. 이런 면에서 미디어가 콘텐츠며 저널리즘이 사회문제라는 사실은 변치 않으며 권력자들보다 더 지속적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하겠다.

텔레비전이나 신문, SNS 등의 미디어가 서로 자신들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공론장에서 각축을 벌이는 것이 우리의 상황이다. 여론이 조작되거나, 생각이 맞는 사람들끼리 뭉쳐 자신들만의 생각을 여론이라고 착각하고 주장하는 것이 이러한 상황의 문제다. 해서 각각의 문제의식은 날카로워졌지만 여러 문제의식들이 충돌하면서 정작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기 어려운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 문제 진단과 해결책 제시의 혼란, 이것이 우리 시대의 진짜 문제라고 할 만하다.

이러한 상황에 맞서는 길은 무엇일까. 책이라는 미디어를 활성화하는 것이 답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고 실제의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지혜를 길러 주는 독서 교육을 시행하는 길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다. 궁극적이고 근본적인 방식인 데다 국민의 절반이 일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상태이니 어느 세월에 가능할지 막연한 것이 탈인데, 이를 보완해 줄 좀 더 직접적인 해결책이 없지 않다. 읽는 재미도 갖추며 문제를 문제로 조명하여 깊이 있게 제시하되 섣부르게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이러한 책이 바로 소설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강력하게 환기할 뿐 섣부른 해결책 제시는 삼가는, 요즈음 보기 드문 소설이 나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18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작품인 박해울의 ‘기파’(허블, 2019)가 그것이다. 한국과학문학상이라니, 맞다, SF다. 2070년 전후를 시간 배경으로 하는 소설 ‘기파’는 SF의 재미를 한껏 갖추면서 현재와 미래의 여러 사회문제를 담는다.

‘기파’의 무대는 지구 최초의 우주 크루즈 ‘오르카 호’다. 골드서클 사에서 개발한 이 우주선은 길이 250m, 폭 40m 크기에 승객 500명과 승무원 350명을 태우고 달에서 출발하여 2년에 걸쳐 목성까지 왕복한다. 오르카 호의 우주 크루즈는 ‘사람의 온기’를 제공하며 ‘인류 최고의 과학 시설’을 즐길 수 있게 한다고 선전하면서 “완벽한 인간 승무원이 당신의 여행을 책임집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다. 최고의 음식과 다양한 유흥, 최상의 서비스가 제공되고, 여정 내내 우주를 바라볼 수 있는데다가 목성과 그 위성이 일렬로 늘어서는 장관이 클라이맥스로 기다리는 것이니, 오르카 호는 그 자체로 유토피아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 유토피아는 동시에 디스토피아이기도 하다. 승객들의 특권에도 위계가 있고 승무원들에게는 심각한 계층화가 강제되기 때문이다. 오르카 호는 객실을 1·2·3등급으로 나누어 서비스에 차별을 둔다. 승객 모두가 로봇이 일상화되어 있는 시대에 로봇이 아니라 인간 승무원의 서비스를 받는 특권 계층이지만, 그 속에서도 다시 등급이 나뉘는 것이다. 인간의 등급을 나누는 것은 승무원 사이에 더 심각하다. 완벽한 인간 승무원과 그렇지 않은 인간 승무원의 두 계층이 확연히 분리되어 있다. 오르카 호는 겉으로 선전하는 것과는 달리 완벽하지 않은 인간 승무원 즉 신체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승무원을 승객들의 눈에 띄지 않게 배치하여 우주선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실무 인력으로 쓴다. ‘섀도 크루’라 불리는 이들은 경제적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우주선을 돌아가게 하는 부품’으로 활용되는 하류 노동자다.

이와 같은 설정을 통해 ‘기파’는 계층 분리가 명확한 2019년 오늘 우리의 사회상을 제시한다. 오르카 호의 모습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라는 것은, 노동자의 36.4%에 이르는 비정규직이나 3D 업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존재를 생각할 때 자명한 사실이다. 은유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돌베개, 2019)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끊임없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현장실습생들 또한 ‘기파’의 설정이 우리 현실의 재현에 해당함을 말해 준다.

사회의 문제를 조명하는 ‘기파’의 촉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소설의 사건을 따라 여러 갈래로 퍼진다. 이 작품의 중심 사건은 소행성 충돌로 오르카 호가 난파된 상황에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퍼져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이다. 이 와중에 의무실장 기파가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하는데, 이 소식이 지구에 전해져 그가 ‘오르카 호의 성자’로 칭송된다. ‘기파’의 묘미는 이 모든 것이 실제와는 다르다는 점에 있다. 기파는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고, 그의 영웅적인 행위는 그를 대신한 로봇 이언의 임무 수행에 불과하다. 외부와 단절된 오르카 호에 퍼진 바이러스란 무엇인가. 우주 크루즈 산업의 경제성 제고를 목적으로, 승객들의 식재료로 쓸 고기를 신속하게 배양하는 연구를 위해 회사에서 몰래 반입시킨 것이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서 ‘기파’는, 이윤의 추구가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비판하고 영웅적인 인물이라는 식의 사회의 평판이 실제와 괴리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기파’의 이러한 고발이 젊은 긱(gig)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과 도덕성을 훈장처럼 자랑해 온 ‘강남좌파’의 배신에 닿아 있다는 것은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기파와 이언의 스토리와 관련하여 두 가지를 더 지적하자. 이 스토리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버는’ 식의 실제적인 문제를 환기한다는 점이 하나다. 다른 하나는 실제와는 반대로 기파가 영웅이 되는 지구의 상황이야말로 이 글의 허두에서 지적한 대로 저널리즘이 사회문제를 만드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을 작품 전체로 표현하고 섣부른 해결책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 ‘기파’가 소설로서 갖는 미덕이다. 문제 진단과 해결책 제시의 혼란상 속에서 진짜 문제를 문제로서 환기하는 데 그치는 이러한 미덕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소설이 갖는 의의를 말해 준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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