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90920.010230805590001

영남일보TV

[이재윤 칼럼] 戰線이 너무 많다(I)

2019-09-20

논설실장

[이재윤 칼럼] 戰線이 너무 많다(I)

대한민국이 싸움판으로 변하고 있다. 나라가 갈기갈기 쪼개져 싸우고 있다. 목숨 건 독립투사도 아니고, 열성 운동권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치인도 아닌 이들이 사소한 자리에서 정치문제로 악다구니 싸운다. 싸우다 절교하고 심지어 가족까지 등 돌린다. 목소리는 커지고 삿대질은 다반사다. 평범한 시민이 어찌하여 전사(戰士)처럼 변모한 것일까. 이러다보니 서로 뜻 맞는 사람끼리만 만나는 풍조도 생겼다. 끼리 만남은 작은 위안은 될지언정 자기확신의 최면에 빠진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더 큰 갈등을 부른다. 일약 뉴스메이커가 된 모 대학 인사도 단톡방에 거리의 보수들에게서나 들음직한 말들을 여러 차례 올렸다가 오랜 지인과 다퉜다고 한다. 결국 두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는 소문이다. 단톡방이나 밴드에선 흔한 풍경이다.

전선이 너무 많다. 거미줄처럼 촘촘하다. 대부분 현정부 들어 만들어졌다. 최전선 전장이 따로 없다. 곳곳이 전장이고 화약고다. 충돌의 빈도로 보면 조국 사태가 압도적 트러블 메이커다. 경로당 어르신도 ‘문재인은 몰라도 조국은 안다’할 정도다. 다른 인사청문회의 30~40배, 혹자는 세월호의 5배 기사가 쏟아졌다고 하니 그럴만하다. 조국전(曺國戰)은 하나의 전선에만 머물지 않는다. 확전의 폭발력이 잠복해 있다. 조국 및 가족에 대한 수사, 정부여당과 검찰의 대립, 국정조사와 특검, 공수처 설치·수사권 조정의 검찰개혁 등 온갖 전선을 만들 것이다.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부담을 지고서라도 하고 싶은 게 검찰개혁이니, 검찰개혁은 이 정부 명운이 걸린 핵심 전선이 됐다.

‘조국사태 때문에’ 교육개혁의 화두를 던진 것은 인과관계 측면에서 오답풀이다. 극히 예외적 이유로 가장 보편적 주제를 건드렸다. 장담컨대 조국사태를 반면교사 삼는답시고 교육제도에 칼을 댄다면 몇 년 지나지 않아 다시 손을 봐야 할 것이다. 교육문제는 매우 복합적이어서 ‘조국사태’라는 단편적 질문만으로는 문제풀이가 불가능하다. 국민 각자가 ‘나의 이해관계가 걸렸다’고 생각하는 게 교육문제다. 국민 모두가 교육전문가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이런 전선을 느닷없이 만든 이유가 궁금하다. 섣불리 건드렸다.

여야는 또 어떤가. 난타전 중이다. 이성적 정치가 실종된 지는 오래됐지만, 소통불능 상태까지 이른 것은 탄핵을 거치면서다. 여전히 탄핵의 음습한 그림자가 한국정치를 짓누르고 있다. 시대 뒤떨어진 백병전(白兵戰) 수준의 지루한 전선이다. 문재인정부는 개혁정부 아닌가. 개혁의 마지막 과정이 법제화 단계인데, 여론과 국회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제1야당 대표가 삭발까지 한 형국이니 당분간 기대난망이다.

이뿐만 아니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우리 정부도 고강도 반격을 추진 중이고, 일본은 대한(對韓) 강경론자 일색으로 내각을 재구성했으니 이곳 전선에 화력이 집중되는 양상이다. 언제 전면전이 터질지 모른다. 꼭 이겨야 하지만 버거운 싸움이다.

미국과의 관계는 신뢰에 금이 갔다. 오랜 우정에 조금씩 회의가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 이 정도에서 봉합되면 다행이지만, 불신이 확대돼 척(隻)지면 모든 희망적 전망은 접어야한다. 만약 한미(韓美) 사이조차 전선이 형성되면 다른 모든 전선을 삼키고도 남을 위기다. 방위비 분담, 전작권 환수, 호르무즈 파병, 지소미아 파기, 군 기지 반환 등은 이 전선에 깔린 지뢰들이다.

북 비핵화는 피할 수 없는 전선이다. 이 전선에는 희망과 불안이 교차한다. 희망을 걸어볼 유일한 전선이다. 희망이 불안을 넘어선다면 모든 전선의 공포를 해소하기에 충분하다. 또 있다. 최저임금제, 노사갈등, 재벌개혁, 국정농단 재판, 최악의 실업사태, 미중갈등, 환율 공포,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등의 불씨도 살아있다. 모두 녹록잖다.

나라 안팎의 전선이 너무 많다. 국가 어젠다에 대한 정무적 관리의 실패다. 어젠다의 우선순위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컨트롤할 수 없는 전선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과부하 상태다. 이쯤에서 질문 하나 던져야겠다. 이 모든 전선을 감당할 수 있나?

이재윤 논설실장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home/yeongnam/public_html/mobile/view.php on line 399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