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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했다는데 본 사람은 없고… ‘경북대 70년史’ 희귀본 된 사연

2019-01-16

주보돈 교수가 편찬위원장 맡아
기존과 다른 서술방식·체계 구성
“내용 일부 명예훼손 등 우려 있다”
대학본부 수정요구에다 출판 연기
우여곡절 끝에 100부 발간후‘쉬쉬’

경북대판(版) 사초(史草)사건이라 할 만한 ‘경북대학교 70년사’ 실종사건(?)이 발생했다. 경북대가 지난해 8월 ‘경북대학교 70년사’를 발간했으나 발간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교수들은 물론 학내 구성원 대부분이 70년사가 발간된 사실 자체를 잘 알지 못한다. 책이 나온 지 다섯 달이 됐지만 본 사람도 거의 없다. 대부분 대학이 10년 단위로 학교발전사를 수천 부씩 출판해 내부 구성원은 물론 동문, 전국 대학 도서관, 언론사 등에 배부하고 있지만 ‘경북대학교 70년사’는 내부는 물론 외부에도 거의 배부되지 않고 있다. 발간되자마자 희귀본(?)이 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사건의 시작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0주년 개교기념일(2016년 5월28일)을 1년쯤 앞둔 2015년 6월 중순 당시 손동철 총장직무대리 체제에서 주보돈 사학과 교수(현 명예교수)는 70년사 집필을 의뢰받았다. 주 교수는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편찬을 담당할 위원 구성 일체를 자신이 맡고, 앞으로 정리될 내용에 대해 간섭받지 않는 조건으로 편찬위원장을 맡았다.

경북대 사학과 출신으로 모교에 재직하면서 누구보다 학교역사에 정통했던 주 교수는 정년퇴임(2018년 2월)을 앞두고 학교를 위한 마지막 헌신이라 생각하고 각별한 공을 들였다.

그동안 10년 단위로 간행된 ‘경북대학사(慶北大學史)’의 내용 가운데 오류를 바로잡고 체계전반을 역사서답게 새로 짜기로 했다. 10년을 하나의 단위로 해서 단순히 시간 순서에 따라 기술한 기존 대학사의 서술 방식은 역사학자 입장에서 보면 원시적 서술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편찬 당시 총장의 업적을 과대포장해 기술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지난 30년사 편찬작업을 도운 경험을 바탕으로 이 같은 그릇된 관행을 근본적으로 고쳐보고자 했다. 또 ‘경북대학교 100년사’ 편찬을 위한 밑바탕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자 했다. 70년사를 편찬하면서 자료를 잘 정리해 놓으면 100년사 작업이 한결 수월해지리라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경북대학교 70년사’는 여느 대학사와는 확연히 다르게 역사서 서술방식의 내용과 체계로 구성됐다. 원고는 2016년 9월 대학본부에 제출됐다. 그러나 대학본부는 내용 일부가 명예훼손 등의 우려가 있다며 변호사에게 자문해 두어 번 내용수정을 요구했다. 이에 편찬위원 등이 자구수정에 동의했으나 대학본부는 차일피일 출판을 미뤘다. 우여곡절 끝에 2년이 지난 지난해 8월 출판됐으나 당초 1천부 발행 예정에서 100부로 축소되고 출판사실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학교 측에서 명예훼손 문제와 함께 예전의 대학사 내용과는 달리 ‘경북대학교 70년사’가 과거 대학운영의 공과를 적시한 부분에 대해 부담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사초(史草)= 고려나 조선시대에 사관(史官)이 시정을 적어 둔 사기(史記)의 초고(草稿)로 실록(實錄)의 원고(原稿)가 되었다. 사실에 부응하고 객관적인 실록을 남기기 위해 사관은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도록 했다.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 사관이 쓴 기록은 왕이라도 보거나 고칠 수 없도록 제도로 보장했다. 이 사초(史草)가 빌미가 되어 일어난 대표적인 정치 탄압이 연산군 때 무오사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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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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