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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 포노사피엔스 세대 교육

2019-06-17

“스마트폰 차단하면서 4차 산업혁명 인재 키울 수 있나”

20190617
일러스트=최소영기자 thdud752@yeongnam.com

5월의 어느 휴일이었다. 아침부터 아이가 열이 있어서 응급실에 갔다. 화창한 봄날이어야 할 5월이지만 학교에서는 독감이 유행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걱정된 마음에 응급실을 찾게 된 거다. 휴일의 응급실은 아픈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도 병상 한 자리를 차지했다. 독감 검사를 받고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의 병상 옆으로 외국인 여자가 다가왔다. 검은색 머리카락과 까만 피부가 동남아시아 쪽에서 왔다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스마트폰 자유자재로 쓰는 요즘 세대
중독의 위험성만 강조하는 가정·학교
문화적 흐름 읽고 취할 건 취하는 자세
교육, 포노사피엔스 세대 맞춰 변해야


“어디가 아프세요?” 응급실 담당 의사가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는 대답 대신 배를 만졌다. 의사가 몇 가지 질문을 더 했지만, 갈수록 여자의 표정이 불안해졌다. 여자는 한국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간호사가 손짓을 동원해서 키와 몸무게가 얼마냐고 물었다. 하지만 여자는 눈치를 보며 고개만 갸웃 하고 있었다. 옆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아이와 나 또한 안타까웠다.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것 같은데….”

의사와 간호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고민하던 의사가 여자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영어를 할 수 있냐며 물었다. 같은 질문을 몇 차례 한국말로, 영어로 바꿔 말하면서 겨우 인도네시아에서 왔고 영어를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오늘은 휴일이어서 진료하면 병원비가 많이 나와요. 내일은 평일이어서 비용이 덜 나오거든요. 의료보험 적용이 안 돼서 많이 비쌀텐데 괜찮겠어요?” 의사가 비싸다는 것을 손짓으로 크게 표현했다. 하지만 여자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 포털사이트에서 통역을 검색하면 인도네시아 말로 할 수 있어.” 아이가 내게 귓속말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때 의사는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다른 병상을 살펴보러 가고 있었다. 나는 포털사이트로 접속해서 한국어를 인도네시아어로 변환해주는 기능을 찾았다. 빨리 도와주고 싶어서 핵심 내용만 간단히 한국어로 입력했다.

‘오늘은 비싸고 내일은 싸요.’

문장을 입력하고 음성 서비스 실행을 눌렀다.

“엄마, 그거 아닌데….”

아이가 말렸지만 이미 조용한 응급실 안에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오늘은 비싸고 내일은 싸요’라는 문장이 연결되지 않고 한국말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느릿느릿 발음됐다.

뒤돌아서던 의사를 비롯해 응급실에 있던 모든 시선이 아이와 내게 집중됐다. 순간 당황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엄마, 음성은 한국말이 나오는 거고 번역된 인도네시아어를 보여줘야 해.” 아이도 집중된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빠르게 말했다. 그제야 상황이 파악된 나는 여자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여자는 번역된 인도네시아어를 읽더니 환하게 웃으며 “OK”라고 했다. 여자의 환한 웃음에 나 또한 잠깐의 실수를 잊은 채 아이와 함께 방긋 웃었다. 다행히 아이는 독감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 나는 약을 처방 받고 응급실을 나섰다.

병원을 나서면서 최재붕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최재붕 교수는 스마트폰을 오장육부처럼 주머니 안에 넣고 다니는 요즘 세대를 ‘포노 사피엔스’ 세대라고 말한다. 현재 세계적인 기업들의 대부분은 IT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학교에서나 집에서는 스마트폰 중독의 위험성만 걱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이 됐다.

조선 시대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으로 우리 고유의 문화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일본보다 근대화가 늦어졌고 신식 무기를 가지고 있던 일본에 침략 당하고 말았다.

제4차 산업혁명과 함께 변화하는 시대에 스마트폰을 차단당하고 책으로만 공부한 학생들이 세계적인 기업에 취업할 수 있을까. 그건 마치 자전거 타기를 실제로 경험시키지 않은 채 이론으로만 가르치고 나서 “충분히 배웠으니까 이제 자전거 타고 달려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에서는 노숙인의 구걸함에 QR 코드를 붙여서 스마트폰으로 돈을 후원할 수 있도록 하는 사례가 있다. 중국 또한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만진다고 무조건 중독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열기도 전에 나쁘다고 여기고 생각의 창을 닫아서는 안 된다. 직접 경험해 나가면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릴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변화하는 시대의 문화적 흐름을 읽고 함께 알아가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앞으로의 교육은 포노 사이엔스 세대에 맞게 진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수진<대구 욱수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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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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