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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과 책상사이] 파스칼의 내기

2019-08-12
[밥상과 책상사이] 파스칼의 내기

중3 학생이 어머니와 찾아왔다. 2박3일 동안 진행되는 교회 수련회 때문이었다. 학생은 맡고 있는 일 때문에 반드시 가야 한다 했고 엄마는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엄마는 있지도 않은 신을 믿는다고 쓸데없이 힘을 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각자의 주장을 말하고 나서 “선생님은 종교가 있는가요. 혹시 교회 다니는 것은 아닙니까”라고 어머니가 물었다. “제가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할 수 없습니다. 문제 해결에 방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머님은 아드님과 종교가 다른가요?”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신의 존재를 믿는가요?” “안 믿는다고 이야기했잖아요. 죽고 나면 다 끝이지 무엇이 더 있겠습니까?” “친정 부모님은 살아 계시나요?” “아버지는 제가 중2 때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 제사는 지내는가요?” “예. 11월에 제사가 있습니다.” “제사 지내러 가시는지요?” “매년 갑니다.” “제사 지낼 때 어떤 생각을 하는가요?” “아버지가 좋은 곳에서 편안히 지내시길 빌어요.” “신 같은 것은 없다면서요?” “그렇긴 하지만 만약에 신이 있고 저승이 있다면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그냥 별 생각 없이 그렇게 빌어요.” “어머니께서는 신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단정적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은 아니네요.” 나는 어머니와 대화하며 학생 편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팡세’의 한 대목을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이야기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 가톨릭 등 어느 종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과학자면서 종교철학자인 파스칼이 생애 마지막 무렵에 쓴 책이 ‘팡세’ 다. 우리말로는 ‘명상록’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이 책에는 ‘파스칼의 내기’라고 하는 천재 수학자의 재기발랄한 이야기가 있다. “신의 존재 유무를 입증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현명할까요. 신이 있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사람은 사후에 정말 신이 있다면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갈 것입니다. 신이 없다고 해도 잃을 것은 없습니다. 신의 존재를 부정했는데 사후에 정말 신이 없다면 이 사람은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신이 있다면 신앙생활을 안 했기 때문에 엄청나게 당황하며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파스칼은 신이 있다고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어느 경우에도 크게 낭패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뜻이지요.”

어머니는 아이를 수련회에 보내주겠다고 했다. 아이는 몇 번씩 절을 하며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말했다.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갈대에 불과하다. 수증기나 물 한 방울로 인간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과 우주가 자신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연보다 더 위대한 존재로 남을 것이다”라고 한 파스칼의 말을 떠올리며 두 손을 꼭 잡고 나가는 모자(母子)의 뒷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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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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