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6(월)

[정문태의 제3의 눈] 누가 평화와 정의를 말하는가

| 2019-08-23 07:55:23

2차 세계대전 종전 74년째

세계 곳곳선 아직 독립분쟁

역사관 차이가 끝없는 갈등

침략자는 이젠 우기지 말고

독일의 좋은 본보기를 보라


지난 15일, 일흔네 번째 광복절을 맞았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일이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늘 떠오르는 말이 있다.

“당신들은 일본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안(중근 의사) 같은 독립투쟁가들을 테러리스트라 부르는가. 만약 그렇다면 내 몸에 붙은 테러리스트란 말을 훈장으로 여기겠다.”

2000년 11월, 제2차 인티파다(민중봉기)가 한창이던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비밀스레 인터뷰한 아흐메드 야신이 내게 던졌던 화두다. 12세 때 척수를 다쳐 평생 휠체어에 몸을 싣고 팔레스타인 독립투쟁을 이끌었던 그는 이스라엘, 미국, 유럽 정부가 테러리스트 공적 제1호로 낙인찍은 하마스(Hamas)의 창설자이자 정신적 지도자였다. 2004년 이스라엘군은 로켓포로 야신을 살해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한테 하마스는 독립투쟁에 앞장서온 정당일 뿐 아니라 학교와 병원 같은 대민 복지사업을 벌여온 자선단체로 널리 존중받아왔다. 야신이 독립투쟁 영웅인지 테러리스트인지는 오직 팔레스타인 사람들만 답할 수 있다.

역사관의 차이를 말하고 싶었다. 침략자이자 가해자인 이스라엘과 그 희생자이며 피해자인 팔레스타인의 역사관이 같을 수 없다는 뜻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영국과 미국이 휘두른 국제질서 재편에 따라 1948년 이스라엘이 태어나면서 난데없이 삶터를 빼앗기고 난민이 된 팔레스타인 사람만도 500만명에 이른다. 유엔은 1949년 유엔팔레스타인난민사업기구(UNRWA)라는 특별조직을 만들어 이 세계 최대, 최장기 난민들을 70년째 돌보고 있다. 그 사이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시민 10만명을 학살했다. 옛날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2000년 9월부터 올해 5월 사이에만도 1만853명이 살해당했다. 이스라엘, 미국, 영국이 우겨온 ‘평화’를 곧이 들을 수 없는 까닭이다. 이게 야신이 말한 그 ‘훈장’의 배경이고 현실이다. 국제사회가 평화와 정의를 외칠수록 팔레스타인이 더 아리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제2차 세계대전 뒤, 강대국이 써내려온 현대사의 볼모로 잡혀 신음하는 이들은 팔레스타인만도 아니다. 쿠르드, 카슈미르, 타밀, 티베트, 위구르, 모로, 서파푸아를 비롯해 아시아 지역에만도 80여개 소수민족이 독립 분쟁을 겪고 있다. 바스크, 코르시카를 비롯한 유럽의 100여개 소수민족, 카빈다와 암바조니아 같은 아프리카의 50여개 소수민족을 포함해 오세아니아의 20여개, 북·남미의 30여개 소수민족이 자치·독립을 외쳐왔다.

현재 자치·독립 분쟁 지역만도 300개가 넘는다. 말할 나위도 없이 이 모든 소수민족의 비극적 역사는 강대국들의 식민통치 유산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모든 식민지가 독립한 것처럼 알려져 왔지만, 사실은 74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 많은 소수민족이 자결권마저 박탈당한 채 울부짖고 있다. 달리 말해, 현대사에서 모든 전쟁과 분쟁의 뿌리로 또 그 밑감으로 이용당해온 이 소수민족 문제를 풀지 않고는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지구적 문제는 약자와 소수의 역사관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데서부터 실마리를 풀 수밖에 없다. 강대국의 우격다짐 역사관으로는 결코 풀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을 지난 74년 세월이 증명해왔다.

요즘 다시 충돌한 한국과 일본을 보라. 그 뿌리도 역사관의 차이다. 종전 74년이 지났지만 두 나라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침략자이자 가해자인 일본이 그 희생자이자 피해자인 한국의 역사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한국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이 전쟁은 영원히 끝날 수 없다. 진정한 종전은 침략자의 역사관을 우기지 않는다. 독일이 그 좋은 본보기를 던져놓았다.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

경기도 고등학생들의 유쾌한 외침을 곱씹으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4돌을 돌아본다. 이게 바로 역사관이다. 신세대 젊은이들을 존경하는 까닭이다.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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