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91111.010170807040001

영남일보TV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떠오르는 라면

2019-11-11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떠오르는 라면

가을이 깊어가면서 밤이 길어집니다. 매일 조금씩 떨어지는 기온과 줄어드는 일조량으로 우리 몸은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뇌도 이런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고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의 분비를 겨울에 맞춰갑니다. 그러나 다가올 겨울 준비로 사람들은 저마다 바쁜 일과 여러 가지 걱정으로 잠을 설치는 일이 많아집니다. 한참을 뒤척거리다 일어나보면 아직도 창밖은 깜깜합니다. 다시 잠자리에 들어 잠을 청해보지만 이미 잠이 깨버려 머릿속은 멍하고 뱃속은 허전합니다. 그러면 불연듯 라면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라면 한 냄비를 끓여 식은 밥 한 공기 말아 국물까지 다 먹고 나면 포만감에 행복해질 줄 알았건만 다이어트를 깼다는 죄책감만 듭니다. 그래서 라면 말고 좀 가벼운 것을 먹을 걸 그랬나 후회를 하곤 합니다.

그런데 제대로 잠을 못 잔 우리가 고열량의 라면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 뇌의 농간이라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되었습니다. 2019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Thorsten Kahnt 교수 연구진은 수면 부족과 음식물 선택 간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결과를 ‘eLIFE’에 발표하였습니다. 이 연구진에 따르면 잠이 부족해지면 음식을 섭취하는 일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흥미롭게도 수면 부족은 같은 양이라도 좀더 열량이 높은 음식을 선택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냄새를 처리하는 후각 회로와 감정 조절이나 대사과정에 관여하는 엔도카나비노이드(endocannabinoid) 시스템이 관여한다고 합니다.

이 연구진은 일정 기간 각각 4시간과 8시간씩 잠을 자도록 한 두 그룹에 원하는 음식을 선택하게 하고 과연 어떤 음식을 먹는지 또 그 음식은 칼로리가 얼마나 되는지를 검사해보았습니다. 잠이 부족한 그룹은 음식 구별하는 후각 능력에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음식에 대한 선호도는 잠을 충분히 잔 그룹과 다르게 변화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또 잠이 부족한 그룹은 엔도카나비노이드 시스템에 작용하는 물질인 2-oleoylglycerol이 높아져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이 연구결과를 통해 그간 음식 선택에 있어 뇌속 후각 신호처리가 엔도카나비노이드 시스템과 함께 관여한다는 속설을 증명함은 물론, 이들 관계에 수면까지 관여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정리해보면 우리가 잠이 부족해지면 엔도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을 활성시키는 2-oleoylglycerol이 증가하고 뇌 속에서 음식 냄새를 처리하는 후각 회로는 같은 음식이라도 열량이 더 높은 음식의 냄새가 우리에게 더 끌리도록 만들어주어 우린 결국 살이 찌는 고열량 음식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죠. 이 연구를 통해 우리는 섭식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2-oleoylglycerol을 처리하여 좀더 고열량 식사를 선택하여 건강을 유지하도록 도움을 주는 치료법을 개발하거나, 비만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열량이 더 낮은 음식을 선택하게 하는 치료법을 개발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전등의 발명과 더불어 밤에도 일을 할 수 있게 된 현대인에게 야근은 원치 않은 선물 같기도 합니다. 야근이나 밤샘업무는 밤이 길어지며 변화하는 일주기에 따라 조금 더 잠을 자야 하는 우리 몸의 항상성을 망가뜨리게 됩니다. 쌀쌀해졌지만 오후에 잠시라도 밖에 나가 아직은 소중한 오후 햇살을 충분히 즐기시면 밤에 숙면을 취할 수 있고 고열량 야식으로 인한 죄책감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야근한 동료와 함께 하는 라면 한 그릇은 숙면이나 다이어트보다 소중한 정(情)이겠죠?

DGIST 뇌·인지과학전공 교수

기자 이미지

박종문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