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7(토)

[CEO칼럼]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

| 2019-11-12 08:25:54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라는 말이 있다. 너무도 흔하게 쓰이고 자주 듣다 보니 질투와 적대감이야말로 여성이 지닌 태생적 속성인 것처럼 오인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은 겉으론 맞고 속으론 틀린 말이다. 현상만 본다면 여성이 서로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같은 여성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제한된 자원을 두고 여성끼리 경쟁토록’ 하는 가부장적 맥락이 깔려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의 정치참여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막상 공천과정에서는 구색 맞추기처럼 여성에게 겨우 한두 자리 할당해 여성들끼리 경쟁하게 한다든지, 견고한 유리천장이 존재하다 보니 어쩌다 열리는 승진 기회를 잡기 위해서 여성들이 서로서로를 견제할 수밖에 없는 구조 등이다. 결국 여성 내부의 문제라기보다는 다른 여성을 희생해야 내가 사는 구조, 여성에게 태클을 걸고 피 터지는 경쟁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사회구조가 선행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라는 가부장적 담론을 해체하기 위한 좋은 전략이 있다. 역으로 “여성이 여성을 돕는다”를 적극 실천하는 것이다. 여성이 여성을 돕는 연대전략은 여성에게 주어진 적은 자원을 획기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한정된 자리, 한정된 자원을 두고 여성이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연대해 파이를 키움으로써 더 많은 여성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전략이다.

지난 여름 여성창업 지원정책을 보러 떠난 이스라엘에서 여성이 여성을 이끌어주고 서로서로를 북돋아주는 선순환적인 연대 사례를 볼 수 있었다. 하이테크 분야 소프트웨어 개발자 여성비율 50% 달성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교육민간단체 ‘쉬코즈(she codes)’ 사례다. 인구 850만 명 정도인 이스라엘은 영토 크기도 우리나라의 5분의 1에 불과하고 자원도 부족한 나라지만 미국 다음으로 스타트업 기업이 많은 창업국가(Start-up Nation)로 유명하다. 주요 창업 분야가 IT,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하이테크 분야이다 보니 머리 하나로 나라 전체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3년 설립된 쉬코즈는 하이테크 분야 종사자 가운데 여성이 30%,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15%만이 여성이라는 성차별적인 현실을 인식하고, 이를 타개하고자 향후 10년 안에 하이테크 분야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여성비율을 절반까지 올린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2만 명 이상의 여성들이 참여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해오고 있다. 총 8개의 과정으로 구성해 과정마다 15~20주 동안 운영되는 온라인 교육프로그램은 정부 지원으로 무료로 운영된다. 쉬코즈는 이스라엘 전역에 50여 개의 브랜치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 브랜치는 활동가들이 일일이 기업들을 접촉해 공간 후원(office sharing)을 받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참가자들은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퇴근시간 이후 후원 기업의 모든 기기와 교육장, 회의실, 탕비실 등을 공유할 수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400여 명의 활동가들이 각자 모두 자신의 직업을 갖고 있는 여성 자원봉사자라는 것이다. 주로 하이테크 분야 개발자로 일하거나 스타트업 창업을 한 여성들이다. 지난 6년간 쉬코즈를 통해 취업한 여성이 9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이 취·창업을 한 후, 다시 쉬코즈에서 자원활동을 하며 후배여성들을 양성하고 있는 것이다.

쉬코즈에 대해 브리핑 해준 여성에게 “돈도 주지 않고 자기 시간도 뺏기는 이 일을 굳이 왜 하는가”라고 물었다. “쉬코즈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고, 같이 어울리면서 공부했던 것이 정말 행복했기 때문이다. 졸업하고 취업했지만 쉬코즈와 함께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내가 받은 것을 돌려주고 다른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여성이 여성의 적이 아닌 희망이 되고 디딤돌이 되는 일, 그런 여성 연대의 선한 연결고리가 견고한 사회적 관행을 바꿀 수 있다.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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