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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 비열한 거리

2019-05-27
20190527
원도혁 논설위원

‘비열한 거리’는 삼류 조직폭력배 이야기를 다룬 국산 영화다. 꽃미남 배우 조인성이 동료에게 배신당하는 조폭 2인자 ‘병두’를 실감나게 연기한, 썩 괜찮았던 영화로 기억된다. 영화 내용이야 밑바닥 조폭들 얘기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왜 ‘비열한 거리’를 떠올려야 하는지는 작금의 대한민국 상태가 잘 말해준다. 전반적으로 돌아가는 이 사회 모양새가 허망하고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2019년 5월 현재 ‘대한민국의 거리는 비열하다’고나 할까. 비겁하고 양심 없는 이들이 넘쳐난다. 특히 사회 지도급 인사와 정치인들이 그러하다.

우선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온갖 이권에 개입하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 비리·불륜 의혹이 불거졌을 때 곧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양심적인 지도자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양심적인 이는 이미 모두 고인(故人)이 돼 버린 모양이다. 정치인들은 또 어떤가. 오로지 개인의 입신양명과 소속 정당의 당리당략 추구에만 몰입하고 있다. 협치는 말뿐이고, 노론·소론·남인·북인으로 갈라져 이틀이 멀다하고 물고 뜯고 있다. 한국인의 유전자속에 나쁜 DNA가 이어져 온 모양이다. 그런데 진보가 의욕적으로 펴는 허울 좋은 정책들이 부작용 투성이에다 일관성도 없는 게 문제다. 보수는 대안제시도 못하고 파벌싸움에다 헛발질만 해대고 있다. 이전에 누군가 촌철살인 지적한 ‘무능(無能)한 진보(進步)에 허망(虛妄)한 보수(保守)의 나라’라는 문구가 적확하다. ‘보수는 영적(靈的) 진공(眞空) 상태이고, 진보는 자만(自慢)의 포만(飽滿) 상태’라는 한 원로의 촌평 또한 유효하다. 이게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다. 이 고질적인 한국병을 어쩔 것인가.

정권을 쥔 측은 부채감 때문이겠지만 자기편만 챙긴다는 지적을 받아온 지 오래다. 요직 독점은 물론 먹고 사는 일거리를 챙겨주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파에 밀리면 끝장이라는 방어심리 때문인지 재야 원로들의 쓴소리는 애써 무시하고 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페어플레이가 나올 수 없다. 비열한 거리다. 이전 정권에서도 그랬다지만 똑같은 폐단을 반복해서는 발전이 없다.

사회는 썩어 문드러진 환부들이 구석 구석에서 드러나고 있다. 정의가 사라진 것 같다. 준엄한 법규나 소중한 가치관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검찰과 경찰마저 신뢰를 잃는 사건도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우리 소시민들은 또 어떠한가. 불의는 모른 체 해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고 했다. 내 배고픈 건 참아도 남 잘되는 꼴은 배아파서 못 본다고 했다. 대구 사람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얘기들이다. 다시는 시원(始原)으로 돌아가지 못할 이 우울한 첨단 문명을 어쩔 것인가.

마이클 샌델은 명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를 논했다. 밴담이 설파한 공리주의뿐만 아니라 정의를 다각도로 분석했다. 그의 주장의 한 대목이다.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좋은 삶을 다같이 고민한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정치 담론이 우리를 그 방향으로 이끌지를 묻는 문제가 남는다’. 작금의 이런 비열한 거리로 인한 낙담은 이 시대 장삼이사 대다수가 공감하는 것이다.

5월, 이 강산 낙화 유수가 절정이다. 동학시인 신동엽은 저 장엄한 서사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에서 지금같은 상황을 개탄하며 읊었다. 그 서사시 대단원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이 돌아가는 자리에선/ 무삼 꽃이 내일날 피어날 것인가. 잡초의 무성을 나래 밑에 거느리며/ 칠천년 늙어 온 몇 그루 고목. 당신네 말씀도, 지혜의 법열도/ 문명의 행복도, 그대네 작업도/ 늘어붙어 지층 이룰 갑충의 무덤. 정신을 장식한 백화 만상여/ 몇만년 풀밭 이룬 인종의 가을이여. 허물어지게 쏟아져 썩는 자리에서/ 무삼 꽃이 내일날엔 피어날 것인가. 우주 밖 창을 여는 맑은 신명은/ 태양빛 거느리며 피어날 것인가? 태양빛 거느리는 맑은 서사의 강은/ 우주 밖 창을 열고 춤춰 흘러갈 것인가?’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비슷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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