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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궁함과 통함

2019-12-09

진정으로 누구를 사랑했다면 그 이별은 아름답다.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은 연인과 헤어지는 순간이 오면 가슴 전체로 안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한 사람들은 연인이 떠나겠다고 하면 그제야 허둥지둥하면서 어쩔 줄 모른다. 연인이 떠난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그동안 무언가 핵심적인 것을 놓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기쁘고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랑 속에는 기쁨도 있지만 슬픔도 있고, 행복도 있지만 고통도 있다. 기쁨과 슬픔, 고통과 행복을 함께 경험했다면 슬픔과 고통이 있었기에 기쁨과 행복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낮은 밤이 있기에 더욱 환하고 밝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한 순간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감사를 느껴야 한다. 고통이 없으면 행복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은 고통과 행복 모두를 포함하고 있기에 살 만한 것이다.

공자가 천하주유를 하다가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포위되어 궁지에 빠졌다. 무려 7일이나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굶는 상황이 되었는데, 공자는 태연하게 방안에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이 부분까지는 ‘논어’와 ‘장자’의 이야기가 같다. 그러나 그 이후의 이야기는 서로 다르다. 먼저 ‘논어’에서는 공자의 제자인 자로가 성난 얼굴로 방에 들어가 공자에게 따진다. “군자도 궁할 때가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군자는 진실로 궁한 것(固窮)이니 소인은 궁하면 넘친다.” 넘친다는 것은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고궁’이라는 말은 곤경에 처해서도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바가 없다는 뜻이다.

‘장자’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공자가 방안에서 거문고를 타고 있자 밖에서 채소를 다듬고 있던 자로와 자공은 스승인 공자가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험담한다. 안회가 두 사람의 험담을 공자에게 고자질하니 공자가 자로와 자공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게 무슨 소리냐? 군자가 도에 통하고 있음을 통(通)이라 하고, 도에 궁하고 있음을 궁(窮)이라고 한다. 지금 나는 인의(仁義)의 도를 품고 난세의 재난을 만났다. 그게 어찌 궁하다고 할 수 있느냐? 때문에 마음에 돌이켜보아 도에 궁함이 없고 이 재난을 만나도 덕을 잃지 않는다. 추위가 닥치고 눈서리가 내려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의 무성함을 안다. 진(陳)과 채(蔡)에서의 재난은 내게 오히려 다행이다.”

공자는 ‘논어’에서와 같이 군자는 진실로 궁한 것이 아니라 궁함이 없다고 말한다. 궁함이란 도에 통하지 못함을 뜻하는데, 공자는 자신이 도에서 떠난 적이 없기에 궁한 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이런 고통을 통해 자신의 도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공자가 설명을 마치고 다시 거문고를 안고 노래하자 자로는 스승의 설명에 신바람이 나서 방패를 잡고 춤을 추었다. 그것을 보고 자공이 말했다. “나는 하늘 높은 줄은 알아도 땅이 낮은 줄은 몰랐다. 옛날 도를 터득한 자는 궁해도 즐기고, 통해도 즐겨 그 즐김에 궁도 통도 없었다. 이처럼 도를 터득하면 궁과 통은 마치 추위와 더위, 바람과 비의 변화처럼 되어 버린다.” 도에 통해 즐기는 것이 하늘 높은 것을 아는 것이라면, 궁해서 즐기는 것은 땅이 낮음을 아는 것과 같다. 이처럼 자공은 스승의 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군자에게는 궁함도 통함도 없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대구교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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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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