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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 몸으로 느끼는 봄

2019-04-15

‘들판·산으로 나가보세요’ 봄의 소리에 몸과 마음이 ‘쑥쑥’
놀이 본능 억압으로 아이들 산만해져
체험으로 자연의 소중함 아는게 바람직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 몸으로 느끼는 봄
일러스트=최소영기자 thdud752@yeongnam.com

온 산천이 온 들판이 온 누리가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봄입니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건물이나 길바닥이나 그 길바닥으로 다니는 자동차를 봐서는 계절을 알 수 없지만 조금만 고개를 자연으로 돌리면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봄이 가득합니다. 자연으로 나서보면 계절은 달력 속 날짜로 오는 게 아니라 산과 강과 들판으로 온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겁니다. 겨우내 앙상하기만 하던 나뭇가지는 살그머니 찾아온 봄을 어떻게 알았는지 어김없이 잎을 틔우고 꽃을 피웁니다. 목련, 산수유, 개나리, 생강 꽃에 이어 벚꽃과 진달래가 뒤를 잇더니 철쭉에 이어 이팝 꽃이 차례를 기다립니다. 식물들이 봄을 맞이하는 순서를 보면 신기하기 그지없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단단한 땅을 헤집고 힘차게 고개를 내미는 새싹들을 보면 신기한 정도가 아니라 가슴이 벅차고 설레기까지 합니다. 힘내라고 손뼉을 치며 응원을 해주고 싶어집니다.

들판으로 나가봅시다. 동네 산으로 가봅시다. 자연이 봄을 맞이하는 이런 경이로운 모습을 만끽해보세요. 학교나 공원도 좋지만 좀 더 넓은 들판에서 느껴보세요. 좀 더 높은 산으로 가서 감동하세요. 아무리 도시 복판에 살아도 한 시간만 나서면 들판을 만날 수 있고 산을 오를 수 있습니다. 산에 가서 진달래꽃을 따서 암술 싸움을 해보세요. 찔레도 꺾어 먹어보고, 아카시아 꽃이 피면 꿀도 빨아보세요. 이런다고 자연 훼손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꽃을 꺾어가거나 나무를 캐는 행위는 안 되지만,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자연을 놀잇감으로 삼아 노는 정도를 두고 자연보호에 어긋난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자연보호는 ‘절대 들어가지 마세요’ ‘절대 손대지 마세요’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입으로, 구호로, 책상에 앉아서 하는 자연보호보다는 자연에서 체험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아는 게 더 바람직한 진짜배기 자연보호입니다.

할미꽃 알지요? 이른 봄에 양지바른 산비탈이나 잔디밭에서 앙증맞게 쏘옥 고개를 내밀어 봄을 알리는 꽃이지요. 옛날에 참으로 흔하던 할미꽃이 요즘 들어 자꾸만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고 해요. 왜 그럴까요?

우리가 어릴 때는 할미꽃이 정말 많았습니다. 지천으로 깔려 있었어요. 우리는 그 할미꽃을 장난감으로 만들어 곧잘 놀았습니다. 꽃봉오리에 가느다란 막대를 꽂고 꽃잎을 뒤로 말아 올려 족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만든 족두리로 새색시 시집보내는 놀이를 했습니다. 할미꽃이 지고 나면 긴 수염을 단 씨앗들이 둥글고 소복하게 봉오리를 이룹니다. 그것을 따 모아 손바닥에 놓고 두 손을 마주하여 둥글둥글 굴리면, 털이 안으로 들어가고 씨앗이 밖으로 촘촘하게 박힌 보드랍고 예쁜 공이 됩니다. 그걸 공처럼 던지고 받곤 했지요. 놀이가 시들해지면 아무데나 버리고 다른 놀이로 옮겨가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할미꽃을 꺾고, 따고, 가지고 놀면서 못살게 했던 그 시절에도 할미꽃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는데 가만히 놔두는 요즘에는 왜 할미꽃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을까요? 할미꽃이 내 세상이다 하면서 온 산천에 가득해야 될 텐데 말입니다.

할미꽃 씨앗은 스스로 다 익어 땅에 떨어져서는 싹이 트는 발아율이 높지 않답니다. 다 익었을 때보다 덜 익었을 때가 발아율이 훨씬 높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까까중머리 공받기 놀이를 하다가 버려놓으면 얼씨구 좋구나 하고 씨앗을 더 잘 틔웠을 거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요즘 아이들이 할미꽃을 가지고 놀지 않아서 제 씨앗을 제대로 못 퍼트리는 슬픈 할미꽃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할미꽃 놀이 하나로 할미꽃 개체가 전적으로 늘었다가 줄었다가 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할미꽃 놀이가 개체를 널리 퍼뜨리는 데 한몫한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에서 몸과 마음을 닦고 길렀습니다. 싸움에 나가서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다는 신라의 화랑도도 무술을 연마하고 도를 닦으면서 한편으로는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거침없이 넓고 크고 곧은 절개를 키웠다고 합니다. 자연을 최고의 스승으로 삼은 것이지요. 어찌 화랑도뿐이겠습니까? 아무리 농사일이 바쁜 농사꾼이라도 봄에는 꽃놀이, 가을에는 단풍놀이를 다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자연을 즐겼던 것이지요. 학생들도 봄 소풍과 가을 소풍으로 자연에서 추억을 만들곤 했지요.

자연을 찾아 산으로 들판으로 강으로 나갑시다. 공부한답시고 메모장과 볼펜을 준비하지 말고 그냥 가볍게 나서면 됩니다. 놓치고 싶지 않은 게 있으면 ‘찰칵’ 사진 한 장 찍으세요. 산새가 지저귀면 한번 따라 중얼거려보세요. 커다란 나무가 있으면 거기에 기대어 눈을 감고 새소리를 들어보세요. 바람소리를 들어보세요. 눈을 감으면 귀가 더 밝게 열립니다. 자연은 온통 우리들의 놀이터입니다.

아이들이 산만하고, 참을성이 모자라며, 집중력이 부족한 건 제대로 놀지 못해서 생긴 병이랍니다. 아이들의 놀이 본능이 억압되면 몸과 마음이 정상으로 자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이 봄을 그냥 넘기지 말고 산과 강과 들판으로 가서 봄의 신비로움을 눈으로, 귀로, 코로, 입으로, 살갗으로 느끼고 감탄하고 감동해보세요. 가족과 같이 가도 좋지만 친구들과 함께 가면 더욱 좋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과 마음이 쑥쑥 자랄 겁니다. 할미꽃도 좋아할 거고요.

<윤태규 전 동평초등학교 교장·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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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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