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5(일)

극장 중심의 매출 구조…한국 영화산업 다양성을 잃다

| 2019-06-10 08:04:35


한국 영화산업 구조는 여전히 상영 쏠림과 배급에서 불공정 상황을 낳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영화산업 매출의 76.3%가 극장사업에 집중된 탓이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이 최근 공개한 ‘영화계 불공정 관행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영화산업은 하나의 플랫폼에 지나친 매출 의존도를 보이고 있고, 이러한 불균형은 영화계 전반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개봉작 매년 늘지만 관객수 정체
흥행 입증 소재·장르 등에 집중
이외의 영화 자금 조달 어려워져


대형 투자배급사 스크린 독과점
소규모 영화 상영기회도 못 잡아
법제정 통한 규제 목소리 힘실려


◆극장상영사업 집중 구조

한국 영화산업은 매년 위기론이 제기되는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극장사업에 지나치게 집중된 산업 구조는 상영 규모 측면에서 고질적인 문제를 야기했다. 극장들은 예매율과 개봉 첫 주 관객 수를 기준으로 이후 상영 규모를 정한다. 이 기준에 따라 메이저 배급사들이 투자와 배급을 담당한 영화를 제외한 많은 영화가 개봉 이후 1주일 안에, 짧게는 3~4일 내에 운명이 결정된다. 때문에 어떤 영화는 제대로 된 상영기회를 얻지 못한 채 스크린에서 내려오게 된다.

한해 개봉되는 영화는 2018년 기준 728편으로 2009년의 361편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전체 관객 수는 2009년 대비 약 38% 늘어나는데 그쳤으며, 2013년 최초로 2억명을 돌파한 이후 2억1천만명 수준에 계속 머물러 있다. 영화의 공급은 늘어났지만, 수요는 거의 그대로인 상황이다. 이러한 산업 구조는 영화를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는 기획개발 단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흥행이 입증된 소재, 장르, 감독, 배우와 연관된 프로젝트 이외의 영화 기획은 사실상 기획개발 자금 자체를 조달하기도 어려워졌다. 영화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는 기획개발 단계에까지 극장상영 중심의 시장 구조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상영 쏠림

극장 중심의 시장 구조가 안고 온 상영 시장 경쟁 집중은 상영 쏠림 현상을 가져왔다. 점유율 1위 영화가 일일 상영횟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는 ‘어벤져스’ 시리즈를 비롯한 마블 프랜차이즈 영화(이하 마블 영화)들이 개봉하는 시기다.

한국영화는 마블 영화의 개봉일 1~2주를 전후로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간다. 주요 국내배급사들이 마블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개봉일을 조정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마블 영화는 개봉 1주 전부터 폭발적인 예매율을 기록하고, 개봉일부터 약 1주일간 동기간 상영기회의 대략 40% 이상을 모두 가져가는 일종의 패턴이 만들어진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와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의 경우 일별 최고 상영점유율은 각각 77.4%(2018년 4월29일)와 80.9%(2019년 4월29일)에 달했다. 그날 언제, 어떤 극장에 가더라도 70% 이상의 상영관에서 하나의 영화만이 상영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수요 공급의 단순한 시장경제 원리로 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기다려왔고 보길 원하는 영화는 다수의 관객 동원이 가능하기에 극장은 그 수요에 맞게 공급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소규모 영화들이 제한된 상영기회 안에서 결과를 기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은 작은 영화들이 겪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칠곡 가시나들’을 연출한 김재환 감독은 “전국 159개 영화관에 1천182개 스크린을 가진 CGV에서 ‘칠곡 가시나들’에 내줄 수 있는 스크린은 딱 8개, 그것도 퐁당퐁당 상영할 것이며, 개봉일 실적에 따라 향후 유동적으로 몇 회 상영할지 결정하겠다”고 알려왔던 일화를 전했다. 결국 CGV와 메가박스 상영 보이콧을 결정한 ‘칠곡 가시나들’은 지난 4월21일 기준 전국 138개의 스크린에서 3천238회 상영되었고, 4만1천263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한국 영화산업 구조가 극장매출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상영기회 불균형이 개선될 여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 다양한 영화들이 제작되고 유통될 수 있을지 우려되는 부분이다.

◆영화계의 공정성은 ‘다양성’을 향해 나아가야

영화 상영 편성은 극장의 고유 권한 중 하나다. 하지만 많은 영화인들은 CJ, 롯데와 같은 대형 투자배급사들이 극장을 함께 운영하면서 계열사 영화에 상영기회를 더 배정하는 이른바 ‘계열사 밀어주기’의 폐해를 꾸준히 문제점으로 지적해 왔다. 사실 각 기업의 매출액은 해에 따라 변동이 있지만 CJ, 롯데를 포함한 4개사를 합산한 매출액 점유율은 상영, 배급 모두 증가 추세이며 상영 매출은 2018년 96.9%에 달했다.

배급과 상영이 결합된 기업의 수와 시장 내 비중에서 각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다 보니 제작업계나 중소규모의 배급사들은 정산 정보와 P&A(영화의 배급 및 마케팅 비용)의 투명성을 높이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를 개선하고자 2012년 ‘한국영화 동반성장 이행협약’이 체결돼 2014년 부속 협의까지 진행됐다. 그러나 2017년 실시한 한국영화 공정환경 모니터링 결과, 차별적 예매 오픈, 교차 상영 등의 관행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의 자발적 노력으로 해결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법을 통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2016년 도종환, 안철수 의원이 발의한 두 건의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대한 법률 개정안’에 상영과 배급의 겸업을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하지만 아직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상태다. 집중과 획일화는 결국 생태계를 위협한다. 양소은 영화진흥위원회 공정환경조성센터 팀장은 “영화계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다양성”이라며 “이러한 부분이 시장 논리로 확보되지 못한다면 적절한 정책 마련과 시장 플레이어들과의 조율을 통해 다양성의 씨앗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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