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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미의 가족 INSIDE] 방어기제 ‘투사적 동일시’

2019-07-18

술주정꾼 父와 전철 밟는 오빠들
그래선지 남편 음주 땐 극도 반응
싫어하는 것 없애려다 상처만 내

[송유미의 가족 INSIDE] 방어기제 ‘투사적 동일시’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소장 겸 대구사이버대 교수 songyoume@dcu.ac.kr>

“결혼은 했는데 아이는 없어요. 늦게 결혼한 탓도 있지만 저희 부부는 합의 하에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어요. 아이를 갖지 않은 것에는 후회도, 아쉬움도 없어요. 그런데 가끔은 남편에게 미안하기는 해요. 동조하지 말고 한명 정도는 낳아서 아빠가 되는 기쁨을, 아빠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알게 해 줄 걸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좋은 아빠가 되어 주었을 것 같은데, 저는 여전히 좋은 엄마가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40대 후반의 A씨는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부터 삶 자체가 자신에게는 마이너스 요소였다고 했다. 중학교 졸업 후 도시 생활을 하면서 ‘주눅의 늪’으로 푹 빠졌단다. 도시와 시골의 차이, 혼자 버려진 듯한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막내라면 느껴지는 발랄함과는 거리가 먼 어둡고 무겁고 칙칙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살아 왔기에 또 어떻게 살고 있기에 저런 기운이 돌까 궁금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좋지 않았다. 자식들과는 살가운 대화를 나눈 적 없고, 사소한 일에 역정만 내는 존재였다. 엄마에겐 늘 큰소리치고, 술만 마시면 손찌검부터 하는 남편이었다. 아버지가 무서워 피해 다니기 일쑤였다. 엄마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자신이 얼마나 무능하게 느껴졌는지 자책도 했다. 자기도 자기겠지만 오빠들은 뭘 하고 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 오빠들의 한심함, 자신의 무능함 등을 쏟아내더니, 가슴이 절절해 온다며 눈물을 쏟았다. 특히 오빠들이 아버지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에 “어떻게 이럴 수 있냐. 너무 불공평하지 않느냐”며 격앙된 모습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랬다. 오빠들은 아버지를 피하고 싶었지만 아버지만큼은 닮고 싶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거울이 되어,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조카들의 어두운 얼굴을 볼 때면 미안하고 그래서 더욱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솟구친다고 했다. A씨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그러나 필자를 아프게 했던 것은 A씨의 분위기였다. 아버지의 술주정이 지긋지긋했고, 주눅 들고 감정표현이 서투른 오빠들이 싫었다. 그래서 담대하고 호기가 넘쳐보이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는데, 현재 A씨의 가정은 자식이 없다 뿐이지, 가정 분위기는 유년시절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A씨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남편의 음주였다. 남편은 아버지처럼 주정을 부리지도 않고 손찌검도 없었다. 그러나 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이면, A씨는 극도로 예민해졌다. 다시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던 약속을 어긴 남편으로부터 무시받는 듯 해 필요 이상의 신경질을 부렸다. 어떨 땐 아버지 될 자격이 없다며 극단적인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때의 아버지에게 하는 말인지, 남편에게 하는 말인지, 때론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결국 지금은 남편은 남편으로서도 아이의 아버지로서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되어, 애초에 아이를 갖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안도하고 있었다.

대상관계이론가 클라인(Klein)이 발견해낸 ‘투사적 동일시’ 과정을 통해 A씨 커플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이해할 수 있다. 투사적 동일시는 어떤 사람이 자신이 싫어하는 자신의 일면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방어기제다. 예를 들어 수학에 남모를 콤플렉스를 가진 주부 B씨가 있다고 하자. 그의 아들이 수학을 객관적으로 잘하고 있는데 엄마의 지나친 걱정 탓에 수학을 더 잘하는 아이로 만들기 위해 ‘수학을 못한다’고 계속 지적질을 하면 그 아이는 수학을 잘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아이가 되어버린다. A씨는 호기롭던 남편을 술을 마시고 올 때면 예민해지고 잔소리가 많은 아내에게 조종당해 술이 없으면 안 되는 남편으로 만들어 버렸다. A씨는 남편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소장 겸 대구사이버대 교수 songyoume@d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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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뉴스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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