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5(일)

[취재수첩]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진행중

| 2019-07-23 08:10:36

서민지기자<사회부>

피해자 A와 가해자 B가 있다. A는 B가 가해할 당시 입었던 옷을 떠올리면 그날의 생생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하지만 B는 “이 옷은 그 이전부터 형제들이 입고 물려준 의미있는 옷인데 무례하게 간섭말라”며 꿋꿋이 입는다. 주변 사람들은 파급력있는 B의 패션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A에게 2차, 3차 가해가 자행된다.

일본의 욱일승천기에 관한 얘기다. 일본은 “욱일승천기는 오래 전부터 일본문화의 일부분이었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현재 욱일승천기는 일본인의 일상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고, 자위대기로도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제주 국제관함식 당시 일본정부는 욱일승천기 대신 자국기를 달아달라는 우리측의 요청에 대해 “비상식적이고 예의없는 행위”라고 대꾸했다. 욱일승천기를 보면 아직도 공포에 젖는다는 강제징용 피해자 어르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호소는 그들에겐 들리지 않는 공허한 외침이다.

이런 ‘당당함’ 혹은 ‘뻔뻔함’을 업고 욱일승천기가 해외 곳곳으로 퍼지는 기세도 위협적이다. 며칠 전, 뉴질랜드에 있는 친구에게서 “남자친구가 욱일승천기가 그려진 현지 맥주를 사왔는데 착잡하더라”는 연락이 왔다. 친구는 “이곳엔 일본 문화가 크게 자리잡혀 있어, 일본의 만행에 대해서는 대부분 관심도 없고 무지하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다. 세계 대형 쇼핑몰에 욱일승천기를 검색해봤더니, 수만개의 다양한 상품이 있었다. 인기 제품에는 “남은 재고가 3개뿐입니다. 서둘러 주문하세요” “추가 입고 예정” 등의 알림이 한국어로 쓰여 있었다.

하지만 취재를 하면서 느낀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정작 국내에서조차 욱일승천기 남용 사례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대구시도 예외는 아니다. 지자체 차원에서 엄격히 규제해도 모자랄 판국에, 2016년 대구컬러풀페스티벌에서는 일본팀이 욱일승천기가 생각나는 깃발을 버젓이 흔들며 대로를 행진하는 일이 발생했다. 일각에선 이 깃발은 삼바 전통문양이지 욱일승천기와는 상관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설사, 정말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 국민의 정서를 고려한다면 그들이 굳이 욱일승천기가 연상되는 디자인의 깃발을 사용할 이유는 없다. 심지어 일본 국적팀이라면 이 부분에 대해 특히나 신경을 기울였어야 했다. 이에 대해 사전에 발견하지도 못했고, 끝까지 방관했던 대구시도 문제다. 해당 팀은 ‘대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다행히 이런 사태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은 마련된 모양새다. 최근 대구시의회에서는 ‘일본제국주의 상징물의 공공사용 제한 조례안’이 발의했다.

드라마 ‘각시탈’에서 주인공 이강토는 독립군 목담사리에게 “세상이 바뀌겠나.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닌가”라고 묻는다. 그러자 그는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것이고 계란은 아무리 약해도 산 것이다. 바위는 세월이 가면 부서져 모래가 되겠지만 언젠가 그 모래를 밟고 계란 속에서 태어날 병아리가 있을 것”이라고 답한다. 2019년 현재, 우리의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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