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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토요단상] 누구를 위한 불매운동인가

2019-08-24
20190824
김병기 일본 시가국립대학 경제학부 교수

한일관계 악화로 한일청소년 교류사업과 지자체 간의 문화교류가 중단되고 일본 지방도시를 연결하는 항공편 운항도 중단되고 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가면서 시민생활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해 우리 정부는 아베정부가 취하고 있는 경제규제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거기에 맞는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1965년 국교정상화를 위해 양국이 맺은 ‘한일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을 이행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양 정부 간의 신뢰회복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50만명의 재일동포가 안고 있는 조국에 대한 불신감을 떨쳐 버리지 못할 것이다.

반일운동이 큰 사회 이슈가 된 우리나라와는 달리 한일관계 악화가 일본 사회에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다. 아베정부가 행하고 있는 경제규제 조치나 그에 따른 한국의 대응책에 대해 일본 시민들은 그렇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다. 그래서 한국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나 반한 데모는 거의 볼 수 없다. 그러나 반일운동으로 인해 K-pop과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국 여행을 주저하거나 한국 투자를 재고하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불매운동 집회, 런던 한인 20여명 참가’ 등 해외 동포가 모두 반일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이미지를 주는 기사를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가족과 함께 실리콘밸리에 온지 반 년이 되어 간다. 한국 마트에 자주 장보러 가는데, 거기에 가면 한국 음식과 아이·아내가 좋아하는 일본 음식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마트의 가까운 곳에는 일본 마트도 있는데 거기는 K-pop을 들으면서 한국 음식을 살 수 있는 곳이다. 마트 안에는 한국사람과 일본사람, 그리고 아시아계 사람들로 활력이 넘친다. 적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근처에서 불매운동을 한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한 것 같다.

지난 주에는 자동차 도로주행시험을 보기 위해 운전면허 시험장에 갔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주의 운전면허증을 소지한 사람과 함께 와서 접수하지 않으면 시험을 볼 수 없다고 담당자가 설명했다. 그래서 시험장에 다른 업무로 온 한국사람이 있으면 부탁을 하려고 했지만 없었다. 한 부부가 일본어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내 상황을 설명하고 접수를 부탁했다. 남자분이 자기도 한국 친구가 많이 있고 한국을 아주 좋아한다며 선뜻 부탁을 들어 주었다. 한일관계가 좋지 않은 시기라 거절당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조금 있었지만 서슴없이 도와준 덕분에 무사히 도로주행시험을 볼 수 있었다. 지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이웃나라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 또한 일본사람을 접하면 친근감을 느낀다.

일본 제품을 불매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일본 제품인지 정의가 필요하다. 카메라, 컴퓨터, TV, 스마트폰에 사용되고 있는 주요 부품은 어떻게 해야 하나. 매일 같이 사용하는 이모지나 QR코드 사용도 그만둘 것인가. 세계의 부품 공급 연쇄사슬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 형성이 점점 심화되어 가고 있는 지금, 제품의 국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가장 싸고 품질 좋은 부품을 구매해 완성품을 생산하는 것이 기업의 목표이며 소비자의 바람 아닌가.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을 효율적으로 활용해나가는 것이야말로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고 소비자의 만족을 최대로 이끄는 길이다. 유니클로 불매운동이 개도국의 생산현장이나 우리나라 판매회사와 유통업체, 그리고 종업원에게 미치는 영향도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 취업을 희망하며 대학에서 일본을 공부하고 있는 젊은이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인력난으로 우리나라의 유능한 젊은이를 원하는 일본 기업도 많이 있다. 일본과의 다리 역할을 할 인재가 일본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무산시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50년 전, 포항제철소 건설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세계은행에 요청했는데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지만 일본은 자금을 지원했다. 1997년 외환위기(IMF사태) 당시 일본으로부터 100억달러를 넘는 지원을 받아 국가부도의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이제 일본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될 비즈니스의 상대이며 오랜 역사를 함께 써온 미래의 동반자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때다.김병기 일본 시가국립대학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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