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90118.010340746530001

영남일보TV

당도 일반 감의 4배 상주둥시…명주1번지 함창·낙동강 최고 포토존 경천섬

2019-01-18

[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상주

20190118
예전에는 과당과 포도당 성분이 혼합된 곶감 특유의 분을 선호했는데 요즘은 그런 분이 없는 걸 좋아한다. 말갛고 주황빛이 선연한 홍시 같은 몰랑한 곶감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20190118
경천대보다 더 수려한 풍광을 보여주는 중동면 비봉산 자락 청룡사 학 전망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경천섬 전경.
20190118
명주1번지 함창의 명성을 위해 연대별 베틀, 각종 연장 등을 버리지 않고 전시장으로 갈무리한 허씨비단의 허호 사장. 그가 물에 불린 고치에서 실을 찾아 물레에 감는 모습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20190118
동네 한가운데 섬처럼 자리를 잡고 있는 6가야 중 하나인 고령가야 태조왕릉.
20190118
상주곶감유통센터 영농조합법인 한 편에 진열된 곶감을 이용한 다양한 먹거리.
20190118
2015년 상주의 대표 곶감마을인 외남면 소은리에 들어선 곶감공원 전경.

쌀과 곶감 이전에 상주는 명주 특구였다. 그 본거지는 단연 ‘함창’이었다. 명주를 짜려면 명주실이 필요하고 그 명주실은 누에고치에서 발원된다. 누에고치 한 개에서 1천200~1천500m에 달하는 실이 형성된다. 너무 가늘어 여러 개를 꼬아서 만든다.

지금은 명주세상이 아니다. 영주의 인견처럼 자기 영역을 확보하는 데 힘겹기만 하다. 곶감처럼 함창 명주도 ‘문화상품’으로 바뀌었다. 김천과 영주를 잇는 경북선이 지나가는 함창역. 지금도 하루 6번 기차가 선다. 하지만 이용객이 많지 않아 근무자가 없는 무인역사로 운영 중이다. 이 역사의 천장에도 명주실을 감는 물레가 걸려 있다. 교촌리 함창명주박물관에 가면 상주슬로시티방문자센터가 있으며 바로 옆에 명주테마파크, 경북도잠사곤충사업장에서 운영하는 누에곤충체험학습관과 나비생태원, 천연 염색을 체험할 수 있는 공방 등이 한자리에 오종종하게 모여 있다. 하지만 이 공간보다 더 특화되고 포스가 느껴지는 체험공간이 있다. 바로 ‘허씨비단 직물공장’이다.

함창역에서 직선 도로를 따라 약 1㎞ 떨어져 있으니 걸어도 멀지 않다. 올해 예순인 허호 사장. 항상 만면에 미소가 감도는 그의 집안은 5대째 비단을 짜왔다. 부인 민숙희씨 집안도 4대째 가업이다. 한때 함창에만 비단업체가 200여개에 달했지만 지금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화장 위주로 장례문화가 바뀌면서 수의로 사용되던 비단 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탓이다.

5대째 가업 잇는‘허씨비단 직물 공장’
청일뽕·와룡뽕나무·꾸지뽕 10종 관리
초창기 족답식·개량식 베틀·부품 전시
함창명주로 스토리텔링 배냇저고리
도내 신생아에도 확산 활성화 되길 기대

증촌리 가야마을 고령가야 태조왕릉
산·강·들 비경 품은 ‘MRF 이야기길’
세조가 문신과 올라 詩文 읊은 문장대
국내저수지 3인방으로 꼽히는 ‘공갈못’
가구당 2대꼴 자전거 수송분담률 21%

남장동과 대표 곶감특구 외남면 소음리
조선 예종실록 임금에게 바치는 진상품


◆허씨비단을 찾아서

공장을 찾았다. 어쩜 한국 명주의 마지막 연대기를 적어나갈지도 모를 공간이다. 처음 보는 뽕나무가 즐비했다. 저 뽕나무가 명주를 만든다니…. 자연의 섭리는 신비롭기만 했다. 명주는 누에고치, 삼베는 대마풀, 모시는 모시풀, 무명은 목화로 만든다. 이 네 가지가 전통섬유인데 유독 명주만 동물성 재료로 만드는 게 특징이다.

아래로 잘 자라는 뽕나무, 하수상(下垂桑) 10그루가 입구에서 터널을 이루고 있다. 누에가 가장 좋아하는 청일뽕을 비롯해 와룡뽕나무, 꾸지뽕나무 등 10여종이 정원형으로 관리되고 있다. 지금은 겨울이라 앙상하지만 5월이면 구름처럼 잎을 피워물 것이다.

허 사장이 전시장을 겸한 작업장 안으로 안내했다. 발로 페달을 밟아 동력을 전달하는 초창기 족답식 베틀부터 개량식 베틀까지…. 한국 베틀의 역사를 입증할 기계를 빠짐없이 다 전시해놓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설명을 듣지 않고서는 무슨 용도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고치용 둥지’였다. 참나무 가지로 만든 초창기 둥지, 플라스틱으로 만든 백년섶, 특히 1970~80년대 유행한 ‘회전섶’은 그가 발명한 건데 누에고치가 편하게 고치를 만들 수 있게 두꺼운 종이로 아파트처럼 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는 어릴 때 번데기를 질릴 정도로 많이 먹었다. 이젠 그 번데기도 수입해 먹고 있으니 그런 세월이 올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가 평생 수집해놓은 여러 버전의 명주 제작기와 각종 부품이 민속박물관 전시품처럼 관리되고 있다. 뽕훑기, 뽕낫, 뽕가락지, 꾸리, 얼레, 바디, 18가지 부품으로 구성된 물레, 그가 발명한 자전거물레…. 그는 자식처럼 품고 있던 일부 전시물을 명주박물관 측에 기증했다.

그가 새로운 사실을 알려줬다. 진주는 실크로 유명하고 함창은 명주로 유명하다. 그 차이점은 “기계식으로 관리되면 비단, 수제방식으로 제작하면 명주라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실도 두 종류가 있다. 생사와 옥사. 생사는 누에 한마리가 실을 형성한 것이고 옥사는 두 마리가 함께 실을 만든 것이다. 당연히 생사는 고급, 옥사가 하급이다. 원래 업자들 사이에서 옥사는 불량품으로 취급됐다. 그는 천대받던 옥사로 옥견을 만들어 대박을 쳤다. 우툴두툴 투박해 보이는 옥견에 감물을 들여 스카프로 팔았다. 옥사를 예술적으로 갈무리하는데 성공한 셈이다.

그가 함창밖에 없었던 전국 유일의 ‘명주전’에 대해서도 알려줬다. 명주전은 함창전통시장 내에 있었다. 충남 서천군 한산면 한산5일장의 ‘모시전’과 마찬가지로 특화거리다. 그 거리는 난전 형태였다가 상주시에서 특화하기 위해 가게 형태의 장옥을 지어주었다. 2000년대 초까지 명맥을 잇다가 이젠 다 사라졌다. 그는 명주의 추억을 현대로 연결시키기 위해 2014년 함창 ‘예고을 금상첨화’란 마을미술프로젝트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때 최현주 작가와 손을 잡고 함창 명주 스토리텔링을 마련했다. 바로 명주로 만든 갓난아이용 배냇저고리다. 50벌 한정으로 만들어 함창읍 신생아에게 선물로 줬다. 반응이 좋아 상주시로 대상을 더 확산시켰고 이젠 경북도 신생아한테도 주고 싶어한다. 그게 함창 명주를 활성화시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제 전과정을 다루는 사람은 없다. 모든 과정은 분업돼 있다. 누에와 생사 보급은 잠사곤충사업소가 전담한다. 다들 만들어진 실로 천을 짠다. 모자라는 생사는 동남아 등지에서 수입해 온다. 그도 생사를 받아 천을 짠다. 허씨비단같은 업체는 함창읍에 고작 10여개만 남았다.

◆MRF의 고장

상주시는 본래 ‘사벌국(沙伐國)’이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해 영남의 중추도시였다. 신라 때는 전국 6주(州, 통일신라 때는 9주), 고려 때는 전국 8목(牧)의 하나였다. 조선시대에는 상주목사가 경상감사를 겸해서 사실상 영남의 중심도시였다. ‘경상도(慶尙道)’라는 이름을 경주와 상주의 앞 글자에서 따온 것만 보더라도 한때 대단했던 상주의 위상을 알 수 있다.

그랬던 상주의 발전이 정체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1905년 개통된 경부선 철도가 상주를 비켜나 김천을 지나게 된 것이다. 철도세상이 자동차세상으로 돌변하면서 상주도 재도약하게 된다. 중부내륙·청원상주고속도로가 연이어 개통되자 국토의 중간에 자리해 있는 상주는 3시간 내 전국생활권의 중심이 된 것이다.

그런 상주에 참 생뚱맞은 마을이 있다. 함창읍 증촌리에 있는 ‘가야마을’이다. 이 마을엔 두 개의 커다란 무덤이 동네 한가운데 놓여 있다. 고령가야(古寧伽倻) 태조왕과 왕비의 무덤이다. 서기 42년 낙동강을 중심으로 일어난 6가야 중 하나로 함창, 문경, 가은 지방을 영역으로 하는 고령가야 태조의 왕릉이다. 고령(高靈)군과 구분하기 위해 ‘고녕’으로 표기한 책자도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학설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낙동강의 수려한 비경을 품은 상주에는 ‘MRF 이야기길’이 있다. 산(Mountain)·강(River)·들(Field)을 끼고 있어 ‘MRF’라는 이름이 붙었다.

상주에서 가장 풍광이 좋은 곳은 그동안 경천대로 알려졌다. 그런데 중동면 오상리 비봉산 자락에 앉은 청룡사 근처 학전망대에 올라가면 예천과 하회마을의 강줄기 회룡보다 더 미학적인 낙동강의 풍치를 만나게 된다. 바로 눈 아래 다리로 연결된 총연장 2㎞의 경천섬이 한눈에 보인다. 낙동강 최고의 포토존으로도 평가받는다.

화북면에는 속리산이 있다. 속리산은 충북 보은군과 괴산군 등에 걸쳐 있다. 속리산 중심부에 위치한 문장대는 상주에 속해 있다. 조선 세조가 이곳에 올라 문신들과 시문을 읊었다 하여 ‘문장대(文藏臺)’라 한다.

상주가 ‘들의 고장’이라면 당연히 저수지를 빼놓을 순 없다. 공검면 양정리의 공검지는 삼한시대 혹은 고령가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저수지다. ‘공갈못’으로 널리 알려졌다. 김제의 벽골제, 제천의 의림지와 함께 국내 저수지 3인방으로 꼽힌다. 이곳에서 ‘상주 함창 공갈못 노래’, 일명 ‘공갈못 채련요(採蓮謠)’란 노동요가 생겨나 전라도로 번져간다.

상주는 ‘자전거 천국’으로도 유명하다. 삼백에 자전거 은륜(銀輪)을 더해 ‘사백(四白)의 고장’으로도 일컬어진다. 가구당 2대꼴로 자전거를 갖고 있고 자전거 수송 분담률이 21%에 이른다. 도남동에는 자전거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국 첫 자전거박물관이 있다. 목마에 바퀴를 단 독일의 ‘드라이지네’를 비롯해 60여종의 희귀한 자전거가 전시돼 있다.

감만큼 한국적 정서를 가진 과실수가 또 있을까? 아이들은 봄철 하얀 감꽃을 실에 꿰어 목에 걸고 다니다 배고프면 곶감 빼먹듯 떫은 꽃잎을 하나씩 따서 입에 넣고 다닌다. 마을 사람들은 손님이 찾아오면 감잎차를 내놓는다. 차는 3~6월 딴 어린 잎을 살짝 찐 뒤 햇빛에 말려 만든다. 파라시(8월감)는 미리 따 장아찌용이나 염색용으로 활용한다.

상주는 북서쪽으로 백두대간 소백산맥을 두르고 동쪽으로 낙동강을 따라 널찍이 평야가 펼쳐진다. 배수가 좋고 서고동저 지형으로 온화하지만 동절기엔 일교차가 커 곶감생산의 적지였다. 물론 상주와 함께 충북 영동, 경남 산청, 함안 등도 곶감특구로 발전했다. 상주둥시는 일반감에 비해 당도 4배, 비타민A 함유량 7배, 비타민C는 1.5배다.

외남면 소은리는 남장동과 함께 상주의 대표적 곶감특구다. 소은리뿐만 아니라 외남면은 좀 부풀려 말해 보이는 나무마다 모두 감나무일 정도다. 조선시대 예종실록(1468년)에 ‘상주 곶감을 임금에게 바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750살이 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해묵은 감나무로 불리는 소은리 ‘하늘아래 첫 감나무’를 친견하러 걸음을 옮겼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home/yeongnam/public_html/mobile/view.php on line 399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