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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이사람] 도예가 김판준

2019-01-18

“보문호·하늘·별·해와 달…가슴에 찬 유년시절 그리움 도자에 되살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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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준 도예가가 그의 작업실에서 오는 4월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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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의 길로 들어선 지 4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작업할 때가 가장 좋다는 김판준 도예가. 주로 물레작업을 하는 그가 물레에 올리는 나무판을 들어보인다.

도시생활에 젖은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간혹 불편을 느끼는 것이 있다. 다들 나름대로 도시생활에 익숙해 세련되었다고 생각하기에 투박한 것들을 보면 자신과 동떨어진 것이라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투박함을 도시화가 덜된 시골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부족함이 묻어나는 것으로 저평가하기도 한다.

‘투박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생김새가 볼품없이 둔하고 튼튼하기만 하다’ ‘말이나 행동 따위가 거칠고 세련되지 못하다’ 등으로 풀이된다. 전자는 물건에 대한 평가인 듯하고 후자는 사람에 대한 설명인 듯하다. 하지만 이처럼 부정적인 의미의 투박함을 새롭게 보는 기회를 가졌다. 도예가 김판준(57)과 그의 작품을 보면서 긍정의 의미를 발견했다. 작가도, 작품도 한결같이 투박하기만 한, 그래서 볼수록 정감이 느껴지는 김판준과 그의 작품은 깊이 알아야만 진가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세계를 가지고 있다. 여느 작가보다 일찍이 도예계에 입문한 그이기에 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온, 세련미를 넘어서는 또다른 세계이다.


40여년간 도예의 길…대작중심 활동
개인전은 세월비해 많지 않은 16차례

고향 경주에서 뛰어놀던 평온한 시절
도자기에 소환된 추억속 따뜻한 기억
이런저런 작업 하다 물레 매력에 빠져
우주·생명상징 원형접시에 담은 경주
통합·분열, 진화·퇴화, 생사 등 담아

팔리기보다 하고 싶은 작품 위주 활동
대형접시·달항아리 대작으로 흘러가
투박함과 보면 볼수록 정감가는 작품

경주 논·산 흙 사용, 거친 느낌 도자기
남산 절터 놀던 기억, 불교 색채 가미
김영태 선생님 인품 영향도 많이 받아
4월에 개인전…대작중심 선보일 계획



▶일찍 도예를 시작한 것으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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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준 작가의 작품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어릴때부터 나도 모르게 도예가를 꿈꿔온 듯합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미술시간이 좋았고 그림 그리고 흙 만지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으니까요. 경주가 고향인데 남산을 뛰놀며 불상, 도자기 파편 등이 떨어진 것을 수없이 봤습니다. 아와중학교에 다닐 때 미술선생님(손문순)이 대학에 가면 미술을 전공해 보자라며 격려해준 것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자기를 배우고 싶었는데 그 당시는 고등학교에 요업과가 있는 곳이 전국에서 서울공고와 경주공고밖에 없었지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경주공고를 갔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도예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꿈을 이루고 지금껏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입니다.”

▶세월이 곧 실력은 아니겠지만 40여년간 걸어온 도예의 길이 아주 탄탄한 것으로 압니다.

“작가는 작품이 얼굴입니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작업을 하지만 그렇게 많은 작품을 만들지 못했고 세월에 비하면 개인전은 아직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난해까지 16차례 개인전을 열었는데 대작이 많다 보니 전시를 자주 열 수 없었습니다. 일찍부터 도예의 길로 들어섰으니 상은 좀 받았지요. 그러나 그렇게 자랑할 것은 못됩니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의 특징을 가진 김판준은 그의 겸손한 말과 달리 많은 상을 받았다. 신라미술대전 대상, 경북도미술대전 전체부문 금상, 대구공예대전 우수상, 경북미술대전 초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고향의 향기가 작품에 가득 스며있는 듯합니다.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경주에서 보낸 평온한 유년시절의 기억이 자연스레 작품에 스며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있다 보니 그 그리움이 가슴에 차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린시절 경주 이곳저곳을 뛰놀면서 봤던 하늘, 별, 해와 달 등이 작품에서 그대로 되살아났지요. 경주 남산의 풍경과 함께 보문호와 관련한 작업도 많이 했습니다. 강과 수양버들, 둥둥 떠다니는 오리떼, 헤엄치는 물고기, 활짝 핀 매화 등이 특히 많은데 이런 풍경이 어린시절 그렇게도 많이 봤던, 그래서 잊을 수 없는 고향의 추억입니다.”

▶도예분야인데도 작품에 회화성이 강한 듯 합니다. 접시와 둥근 항아리에 특히 그림을 많이 그려넣었습니다. 대작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인 듯합니다만.

“처음에는 현대적인 작업도 많이 했습니다.(그 말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작업실에 있는 초창기 작품 하나를 보여줬다. 카메라렌즈에 접시를 붙여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작업을 두루 해보니 결국 물레가 제일 매력적이었습니다.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림을 그린 뒤 상감기법으로 처리해 독특한 느낌의 회화를 만들어냅니다. 저의 추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따뜻한 기억을 도자기로 소환해 즐기지요. 이는 어릴적 찍었던 사진과는 또다른 느낌을 줍니다. 사진이 아주 사실적인 추억이라면 도자기 속 풍경들은 세월이라는 거름망을 거쳐 김판준이라는 현재의 나를 만든, 그 엑기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간결하고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림을 그려야 되니까 자연히 작품이 클 수밖에 없지만 원래 대작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판매되는 작품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해 오다보니 자연스럽게 큰 작품으로 흘러가게 되었지요.”

그의 작품은 접시, 항아리 등 도자가 주는 넉넉함과 작가의 기억 속 아름다운 풍경이 만나 보는 이들에게 일상의 번잡함을 잠시 내려놓게 하는 여유로움을 준다. 그 가운데서도 작품의 크기가 주는 시원함이 있다. 일반적인 접시의 지름이 20~30㎝라면 그의 작품은 60㎝ 이상이며 100㎝가 넘는 것도 있다. 그렇다보니 그의 작품은 실용성보다는 장식성이 강하다.

대백프라자갤러리 김태곤 큐레이터는 이 같은 그의 작품에 대해 “김판준은 경주의 모습을 우주적 공간, 생명, 순환, 중심 등을 상징하는 원형접시에 올려놓음으로써 통합과 분열 그리고 재통합, 진화와 퇴화, 성장과 퇴행, 생과 사의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담아내고 있다”고 평했다.

그의 작품 중에 삼족 수반과 삼족 항아리도 잘 알려져 있다. 발이 세개 달린 수반과 항아리에 보문호의 풍경 등을 담은 작품인데 이것 역시 대작이다.

▶도자기의 경우 실용성을 지닌 예술품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장식성이 강한 작품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는지요.

“차를 좋아하다보니 다완을 만들기도 합니다. 다완을 제외하고는 장식을 목적으로 하는 대형 접시나 달항아리 등이 많지요. 대작은 소품에 비해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특히 가마에서 부서지거나 금이 많이 갑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가마의 불 조절을 통해 가마에서의 실패율은 많이 줄였습니다. 어떤 후배가 ‘선배는 왜 팔리는 작품을 하지 않느냐’고 묻더군요. 팔리는 작품은 저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후배들이 해야 할 몫이라 생각합니다. 이들도 오랜 세월 작업하다가 연륜이 깊어지게 되면 생각이 바뀔 것입니다.”

▶김판준 작품하면 투박함이 먼저 떠오릅니다.

“저의 작업은 첫눈에 마음을 사로잡는 예쁜 도자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간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같은 작업의 특징은 김판준만의 작업방식 때문인 듯합니다. 많은 도예가들이 실험적 시도를 하는데 저는 유약과 흙배합에서 새로운 기법을 개발해내려 노력했습니다. 현재는 다양한 색감의 유약이 있고 쉽게 구할 수 있지만 30~40년 전만 해도 유약이 귀했기 때문에 나만의 유약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특히 청와색의 코발트유를 다양하게 만들었고 지금도 제 작품의 주조색입니다. 경주가 고향이다보니 경주의 논과 산의 흙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 지역 흙에 철분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거친 느낌의 도자기가 나왔습니다. 경주의 흙에다 전국의 다양한 흙을 접목해 나가는 작업도 상당히 매력이 있습니다. 유약의 성분과 제조방법을 실험하고 소성에서부터 흙의 종류와 두께에 따른 감과 맛, 그리고 각 재료의 성분 등을 고르게 탐구했다고 할 수 있지요.”

▶불교적 색채도 강한 듯합니다.

“유년의 대부분을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보냈으니 자연스럽게 불교적 색채가 묻어난 듯 합니다. 아마 신라의 국교가 불교였던 까닭이겠지요. 아직도 남산의 절터에서 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추억을 모티브로 하다보니 불교적 색채가 농후한 목어와 매화, 팔만대장경을 상징하는 판본 등이 작품에 들어온 듯 합니다.”

▶이 같은 김판준만의 작품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친 분이 계시는지요.

“김영태 선생님(도예가, 전 계명대 미대 교수)입니다. 선생님의 작품은 물론 인품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저의 개인전에 써주신 글에서 그 분의 인품과 작품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도예가는 숙달된 기술만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도예가의 잠재의식 속에는 도예가가 알게 모르게 경험한 많은 조형요소들이 저장되어 있고 잠재의식 속에 깊이 묻혀있는 실험적 조형요소들을 작품으로 표출시키는 것’이라는 글이 기억에 남습니다. 스승님이 이런 자세로 도예의 길을 걸어오셨기에 제자인 저도 그 길을 가야 하겠지요.”

▶올해 개인전이 있는 등 바쁜 활동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운 작업실 마련도 계획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오는 4월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엽니다. 대작을 대거 선보일 계획입니다. 대작을 할 체력이 되는 한 여기에 집중하려 합니다. 대구 근교에 작업실을 마련하려고 부지를 물색 중입니다. 그동안 해온 작품들이 대작이다보니 보관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전시실을 겸한 작업실을 짓는 것이 당면한 과제입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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