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90524.010330759060001

영남일보TV

텃밭의 소확행 ‘도시 농부’

2019-05-24

# 단독주택 텃밭 가꾸는 김해원씨

20190524
김해원씨가 마당 텃밭에서 자란 겨자채를 보여주고 있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대구 수성구의 한 단독주택 밀집지. 촘촘히 들어선 주택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텃밭을 가꿀까 하는 호기심이 아담한 주택의 문앞에 다다르자 맥없이 풀려버렸다. 대문 틈 사이로 보이는 텃밭은 마당 입구까지 장악하고 있다. 마치 텃밭이 이 집의 트레이드마크인 양 다양한 채소들이 텃밭에서 촘촘히, 그리고 너풀너풀 싱그럽게 자라고 있다.

마당 한 편 고추·깻잎·상추 가꾸기
5년전 퇴직후 식물종류 10여종 늘어
햇빛 가리는 큰나무는 과감히 없애
봄 돌나물∼가을엔 열무 자급자족
이웃·친구들과 나누며 행복한 일상


대문을 열자마자 손님을 반기는 것은 적겨자채와 청겨자채. 손바닥만큼이나 크게 자란 잎사귀들이 보기만 해도 군침을 돌게 했다. 그런데 마당 앞에 있는 텃밭이 끝이 아니었다. 마당 구석구석에 조금이라도 빈 공간이 있으면 거기에는 어김없이 이런저런 채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채소들을 손수 가꾸는 이는 김해원씨(희망경제연구원 원장). 오랫동안 아파트생활을 하던 김씨는 2000년대 초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농사를 지어본 경험은 전혀 없었는데 한번씩 이런저런 일로 시골에 갈 일이 있어 채소, 열매 등을 따먹으면 재미가 있더군요. 그래서 주택으로 이사를 온 뒤 재미삼아 고추, 깻잎, 상추 등 손쉽게 기를 수 있는 채소를 심었습니다. 이사를 왔을 때 큰 향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가 햇빛을 가려 뽑아버리고 그 자리에 텃밭을 일궜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회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크게 손이 안가도 되는 채소들만 심었다. 5년 전 퇴직 후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텃밭 가꾸기에 힘을 쏟았다. 집 거실 앞에 있는 장미, 영산홍 등의 꽃나무들이 너무 커서 집안에 들어오는 햇빛을 가려버리자 이 역시도 과감하게 없애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 블루베리 등 키 작은 나무나 페퍼민트 등의 허브, 부추 등의 채소를 심었다. 몇년 전에는 마당 뒤편에 있는 매실나무도 뽑아버렸다. 매실나무 역시 잘 자라는 나무라서 집안을 어둡게 하고 날파리 등 벌레가 많이 생겨서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식물도 사람과 똑같더군요. 몇년 정이 드니 없애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해마다 매실을 따서 엑기스, 장아찌 등을 담아먹었는데…. 집에 있는 키 큰 식물을 없애면서 생명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 대신 3년 전쯤 키위나무 2그루를 심었다. 키위나무는 덩굴식물이라 그리 높게 자라지 않도록 지지대를 만들어주면 햇빛을 가릴 염려가 없다. 1그루는 죽고 1그루는 잘 자라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며 아직 제대로 된 열매맛을 보지 못했는데 올해는 혹여 열매를 맛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 설렌다는 말도 덧붙였다.

텃밭을 꽤 오래 가꾸면서 한두 작물씩 늘리다보니 이제는 키우는 식물 종류가 10여종에 이른다. 초봄부터 돋아나는 돌나물을 시작으로 가을에 먹을 수 있는 열무, 곰보배추까지 다양하다. 그러니 봄부터 가을까지는 채소를 거의 자급자족할 수 있다. 직접 기른 채소는 싱싱한 데다 파는 것에 비해 씹는 맛이 있어 직접 기른 채소에 길들여지면 사먹는 채소는 먹기가 힘들다는 말도 살짝 곁들인다.

“그저 식물 키우는 것이 재미있고 농약 안치고 내가 기른 것을 먹는 것이 좋아서 하니까 제대로 된 농사를 짓는다고 할 수는 없지요. 물 잘 주고 햇빛 잘 쬐도록 하는 것밖에 없어요. 그런데도 이런저런 채소를 키우면서 터득하는 것들이 생기더군요.”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데 열린 대문 사이의 텃밭풍경을 본 이웃주민이 “아이고, 이렇게 농사를 잘 지어놓았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구만”하며 마당 입구에 무성히 자라고 있는 채소의 이름을 묻는다.

그 이웃주민의 물음에 “겨자채인데 맛이 아주 좋습니다. 이것 맛보고 나면 상추는 싱거워서 못 먹습니다”라며 흰비닐봉지에 겨자채를 한 움큼 따서는 맛보라며 쥐어준다. 괜찮은데라며 사양을 하던 그 주민은 못 이긴 척 받아들고는 너무 잘 먹겠다며 연신 감사를 표한다.

“채소를 키우면 나눠 먹는 재미 또한 큽니다. 아내와 둘 밖에 살지 않는데 텃밭에서 나는 채소를 다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웃, 친구들과 나눠 먹는데 그 속에서 또다른 행복을 느끼지요. 채소 때문에 만나고 그로 인해 더 친해지기도 하고….”

마당 곳곳에 있는 돌나물이 이제 거의 끝물이란다. 김씨는 굵게 잘 자란 돌나물 몇 움큼을 바구니에 담더니 잠시 기다려보라고 한다. 김씨 손에 들려간 돌나물이 연둣빛 주스로 돌아왔다. 돌나물과 요구르트로 만든 건강주스라며 기자에게 건넨다.

맛이 상큼했다. 살아있는 자연의 맛이랄까. 김씨는 작지만 자연의 기운이 넘치는 공간에서 소소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도시농부들이 늘고 있다. 도시농부는 집이나 주말농장 등에서 농사를 직접 짓는 도시사람을 가리킨다. 김씨처럼 도시에 살지만 집이나 인근 공간을 이용해 농사를 직접 지어 자급하는 사람들이다. 도시농업은 먹거리를 직접 생산하거나 도시에서 농촌의 정취를 느껴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일거리이다. 또 농사라는 노동을 통해 도시생활에 지친 도시민에게 삶의 활력소를 제공하는 기능도 해 새로운 힐링아이템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home/yeongnam/public_html/mobile/view.php on line 399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