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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안용모의 배낭 메고 중미를 가다] 과테말라 플로레스·티칼

2019-09-20

정글속 몸 숨긴 마야문명의 심장…섬처럼 솟아오른 거대한 피라미드군

20190920
끝도 없는 밀림 속에 우뚝 솟은 피라미드 신전이 있는 티칼국립공원.
원시 그대로의 자연에서 느껴지는 경이로움이 매일매일 새로운 감탄사를 만들어 내던 아쉬움을 안고 과테말라에서의 마지막 여행지를 향해 아침 일찍 랑낀을 떠났다. 화려했던 마야문명의 꽃이 신비스러운 정글 속의 피라미드로 남아있는 티칼의 베이스캠프인 플로레스까지는 7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내가 탄 소형버스는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흙먼지를 뽀얗게 날리며 산 넘고 물 건너 북쪽으로 달린다. 푹푹 찌는 날씨와 냉방이 안 되는 고물차에 정원초과 승객들이 이리저리 쏠리고, 차라도 옆으로 지나가면 뿌연 흙먼지를 뒤집어 써야 했다. 티칼로 가는 길은 지금까지의 산길과는 다르게 밀림 속을 지나야 했다. 아득한 옛날의 시간을 더듬어 보는 듯도 했지만 장시간의 어두컴컴한 밀림 속 이동이 마치 과거로 통하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맛보게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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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에 북슬북슬한 털실 꾸러미가 매달린 듯 독특하게 생긴 세이바(Ceiba) 나무는 마야인이 신성시 했던 나무로 현재는 과테말라의 국가 나무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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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한가운데 언덕에 있는 산 파블로 잇자 성당의 외관은 돔으로 된 쌍둥이 종탑이 눈길을 끄는 대칭형 파사드로 건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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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페텐 잇자 호수의 면적은 99㎢, 최대 길이 32㎞, 최대 너비 5㎞, 최대 수심 160m로 플로레스 섬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호수위 꽃의 섬 플로레스(Flores)

스페인 정복자들이 휴양지로 만든 곳
골목 예쁜 가게와 석양에 물드는 호수
쌍둥이 종탑으로 명소 산파블로 성당
자연그대로 보전된 석회석 천연동굴


플로레스는 티칼 유적지를 가기 위해 들르기도 하지만 호수 위에 있어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곳이다. 랑낀을 출발한 미니버스는 산길을 굽이굽이 돌며 언덕을 오르내리고 바지선에 실려 강을 건너서 섬처럼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아름다운 도시 플로레스에 도착했다.

플로레스는 과테말라 북동부 정글로 덮인 엘 페텐(El Peten)주의 페텐 잇자(Peten Itza) 호수 위의 섬으로, 호수 변에 있는 산따 엘레나 마을과 교량으로 연결되어 있다. 페텐주의 주도로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 수는 대략 2천명이다. 해가 기우는 저녁 무렵 많은 여행자들이 한꺼번에 도착하면서 작은 마을은 여행자들로 북적이는 것 같다. 키 낮은 호숫가의 민박집 같은 2층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벗어 던지고 석양을 보러 호반으로 나갔다. 플로레스는 맑고 깨끗하고 꽃이 많은 휴양 섬 같았다.

옛날 스페인 정복자들이 휴양지로 만들어 놓은 플로레스는 스페인 별장 같은 예쁜 집들 사이로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엔 그림처럼 예쁜 수공예점과 기념품가게, 술집, 식당, 작은 호텔들이 늘어 서 있다. 강둑 호숫가에 앉아서 석양에 물드는 호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곳이다. 호수와 면한 곳에는 주로 식당과 카페가 있어 늦은 밤까지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이곳의 또다른 관광명소인 산 파블로 잇자 성당은 플로레스 섬의 중앙 언덕 꼭대기에 위풍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성당은 회반죽을 사용해 간결하면서도 우아한 디자인으로 끝 부분이 돔으로 된 쌍둥이 종탑이 눈길을 끄는 대칭형 파사드로 건립되어 있다. 성당 아래에는 과테말라시티의 평화 기념비 모형이 있는 녹음이 우거진 중앙 공원과 수백 년 된 아리스멘디 성에는 고고학 유물과 페텐 지역의 토착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전시물 및 수공예품점이 있는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성당에서 호수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자갈길을 따라 예쁜색깔을 입은 오래된 다채로운 주택들과 꽃잎을 늘어뜨린 아름다운 테라스를 따라 걸었다. 호숫가 산책로를 따라 마을 주위를 돌아보면 현지 주민과 여행자들이 호수의 반짝이는 물로 다이빙하는 광경과 수영하는 모습을 즐길 수 있다.

다음날 티칼을 다녀와서 플로레스의 주요 관광지인 악툰-칸(Actun-Can)의 석회석 천연동굴을 찾았다. 이 동굴은 자연 그대로 잘 보전하고 있고, 전기시설도 설치하지 않아 헤드전등을 쓰고 들어가야 한다. 그 외에도 그루타스 동굴, 공예촌 그리고 산타 엘레나 동쪽 10㎞에 있는 아르카스 정글에 가면 콩고잉꼬 앵무새와 거미원숭이, 킨카주 곰, 큰 소리를 지르는 하울러 원숭이, 그리고 운이 좋으면 재규어도 만날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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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신전이라 불리는 높이 66m의 거대한 피라미드 유적은 보는 이를 압도할 만큼 웅장하며 가설 계단으로 오르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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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인들은 총 7개의 색을 이용하여 신전과 부속건물을 칠했으나 세월에 닳아 퇴색되어 있다.

 

◆피라미드가 환상적인 티칼(Tikal)

원숭이·앵무새 오색찬란한 생명의 터전
털실꾸러미 달린 듯한 국가나무 세이바
마야 특유 모양 계단식 피라미드 신전
그림처럼 펼쳐진 사원 ‘잃어버린 세계’


이튿날 새벽 일찍 예약한 소형버스를 타고 티칼로 향했다. 한 시간 반쯤 달려 울창한 열대 정글에서 원숭이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앵무새가 날아오르는 티칼에 닿는다. 저 멀리 태양이 떠오르는 밀림 속 정글 위에 피라미드가 우뚝 솟아올라 있다. 입구에서 걸어서 유적지까지 가야 하는 길이 습식 사우나를 연상시키는 밀림으로 무성하다. 정글이 하늘을 덮어 티칼의 오솔길은 한낮에도 어둑어둑하다. 이름 모를 온갖 새들이 제각각으로 울다 때로는 오색찬란한 모습을 살짝 보이며 후두둑 날고, 원숭이들은 겁 없이 길 앞에 어슬렁거리고, 나무 개구리들은 새소리에 질 새라 합창을 한다. 싱그러운 정글의 산소는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듯하다. 걷다보니 나뭇가지에 북슬북슬한 털실 꾸러미가 매달린 듯 독특하게 생긴 세이바(Ceiba)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마야인은 생명의 나무로 귀하게 여겼다고 하는데, 현재 과테말라의 국가나무로 지정돼 있단다.

티칼은 과테말라 북부 페텐 지방의 밀림 속에 남아 있는 총면적 약 16㎢의 마야 문명 최대·최고의 도시 유적이다. 1979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록되고, 1990년에는 페텐 지방 총면적의 약 40%에 이르는 면적이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깊은 정글 속에 몸을 숨긴 채 세상에서 잊혔던 마야문명의 심장, 티칼은 17세기 어느 스페인 선교사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티칼은 고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고도의 문명을 이룩했던 마야인들의 주요 도시 중심지였다.

티칼국립공원 안에는 태고의 밀림 속에 솟아오른 거대한 피라미드군이 3천개나 되는 크고 작은 건축물들과 함께 밀림 위에 떠 있는 섬처럼 솟아 있다. 유적의 중심부에는 궁전이나 신전이 모여 있는 아크로폴리스라고 부르는 곳에 석조 건축물과 왕의 고분들이 흩어져 있고, 주변에 모두 5개의 피라미드 형태 신전이 있다. 밀림 사이로 한참 들어가니 유적지 중앙 광장에는 ‘대자연과 신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제1호 신전은 서기 732년에 완성된 피라미드로 높이 47m에 석회암 계단이 있다. 이 신전은 여행객들이 올라가다가 부상당하거나 많이 죽었기에 지금은 올라가지 못하게 막아놓았다.

제1호 신전과 마주하고 있는 제2호 신전이 우뚝 솟아 천년의 세월을 지켜보고 있다. 제2호 신전은 높이 38m로 여행자들이 신전 위쪽까지 옆에 설치된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다. 해는 아직 숲 위로는 떠오르지 않았다. 뿌연 안개에 덮인 밀림을 바라보니 스멀스멀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 신비로운 분위기가 주위를 휩싼다. 저 멀리 밀림 속을 뚫고 튀어나오듯 서 있는 피라미드의 형체가 드러난다.

한참을 걸어 닿은 흙속에 묻혀 얼굴만 내밀고 있는 제3호 신전은 앞, 뒤, 옆으로 길게 뻗어있는 신전에 여러 개의 방들이 있다. 어떤 방은 에어컨이 나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시원하다. 마야인들이 건축할 때 바람의 통과가 잘 되는 원리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많은 피라미드가 밀림 속에 잠들어 있는 것을 마주하게 된다. 제1호에서 제5호까지의 신전과 남쪽 광장, 중앙 광장, 7개의 신전의 광장 가운데 정글의 마천루를 연상시키는 마야 특유의 모양을 한 계단식 피라미드의 신전들에 눈길이 머문다.

티칼의 가장 유명한 제4호 신전은 높이 66m나 되는 건축물로서 그 스케일이 웅장하다. 경사가 급해 못 올라가므로 옆에 계단을 가설해서 올라가게 해 놓았다. 다리가 후들거리면서도 힘겹게 올라가니 한눈에 엄청난 열대정글 속에 우뚝 우뚝 솟아있는 제1호 신전과 제2호 신전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장관이 펼쳐진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제5호 신전이 대자연 속에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다. 티칼유적은 신비 그 자체이다. 물론 그 규모도 마야문명의 유적지 중 단연 으뜸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밀림 한가운데에 펼쳐지는 피라미드 도시는 ‘신비롭다’거나 ‘영화 같다’란 단어가 떠오른다.

이끼 낀 돌계단을 밟고 피라미드 뒷면으로 올라서 주위를 둘러보니 밀림의 녹음이 펼쳐진 마야의 세계가 눈에 들어온다. 석축건물 옆에 나 있는 좁은 공간을 돌아 앞으로 나서니 죽 늘어선 비석과 제단들, 지붕이 무너진 건물들, 그리고 건너편의 또 하나의 피라미드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잃어버린 세계’다.

정글 한가운데 자리한 아름다운 마야궁전과 사원을 둘러보며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았다. 티칼이 경제, 군사 및 정치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시대를 상상해 보면, 과거 문명사회 주민들의 예술적 재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최전성기에 수만명의 인구를 자랑하던 도시가 어떤 이유로 불과 한 세대 만에 버려진 도시가 되었을까. 티칼 몰락의 수수께끼는 마야 문명 붕괴의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나올 때는 마치 과거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듯한 몽롱한 상태에서 하염없이 정글 속을 걷기 시작했다. 숲속 유적지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자며 여행자를 부르고 있다. 시간여행을 하려는 듯 발걸음은 자꾸 과거로 내디디려 하지만, 현재의 시간 속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제 과테말라를 떠나 멕시코의 빨랑케로 가야 한다. 자유여행가·전 대구시 도시철도건설본부장

ymahn1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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