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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리의 공예 담화(談話)] 재활용 공예

2019-09-20

플라스틱, 예술로 ‘업사이클링’

20190920
스위스 취리히에 위치한 ‘프라이탁 플래그숍’ 내부에 진열된 가방들.
20190920
‘한국업사이클센터’ 1층에 위치한 소재 전시실(M-LAP 디자인소재랩).
20190920
다양한 업사이클 제품을 만나볼 수 있는 ‘한국업사이클센터’
20190920

우유갑, 요구르트 병, 사발면 용기, 통조림 캔 등 쓰임을 다하여 버려진 물건들은 우리 일상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초등학교 미술교육에서 자주 등장하는 재료이다. 공예 부자재가 다양해진 것만 제외하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폐품을 이용하여 만든 연필꽂이는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자원의 재활용과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 등을 교육하며 동시에 만들기를 통하여 창의성을 증진시킬 수 있기에 저비용 고효율의 교육안이다. 그러한 이유로 몇 십 년 동안 교육 현장에서 ‘재활용 공예’라는 이름으로, 고전처럼 한편으로는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스테디셀러처럼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자원의 재활용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며 혁신적인 방법이 생겨났다면 혹은 우리가 공기청정기라는 또 하나의 신(新)문물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살고 있다면, 이런 폐품으로 만들기 시간은 사라졌거나 줄었어야 한다.

편리함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진화된 위생에 대한 기준은 1회용품을 생산해 냈다. 1959년 국내 처음으로 값싸고 모양 성형이 쉬운 새로운 자재로 각광받으며 플라스틱이 등장한 이후 우리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1회용품을 소비해 왔다. 그리고는 반 세기가 넘었다. 국내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사용량의 단 2%뿐. 그럼 다 어디로 갔다는 이야기인가. 전 세계인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주었던 중국 왕구량 감독의 2016년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차이나’에는 중국경제 성장의 어두운 이면과 참혹한 일상을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가 소비하고 버린 일회용품들의 끝나지 않은 끝을 보여준다.


일회용품 소비 반세기, 국내 재활용률은 단 2%
방수포천·자전거 튜브·안전벨트로 만든 가방
단 하나뿐인 희소성, 전세계 소비자 마음 충족
커피 찌꺼기로 만든 테이블·폐유리병 조명…
쓰레기에서 창의·환경적 가치있는 작품 재탄생
더 많은 사람 움직이는 윤리적 생산과 소비 기대


우리가 직면한 환경적 문제를 물질 사회 속 생산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생산의 숫자를 줄이는 것도 답이 될 수 있으며,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제작하는 것도 답이 될 수 있다. 옷감의 낭비 없이 옷을 만드는 제로 웨이스트(Zero-Waste), 100% 생분해성 소재로 제작하는 방법 등 생산 자체부터 다시 생각하자는 움직임 역시 답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미 생산된 물건과 버려진 물건들은 그저 과거에 대한 반성과 윤리적 죄책감의 울타리 안에서 머물고만 있어야 하는가. 버려진 혹은 쓰임을 다한 물건도 업사이클링(Upcycling)의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쓰임과 가치를 갖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재활용’의 뜻 ‘리사이클링(Recycling)’과 ‘개선’이란 뜻의 ‘업그레이드(Upgrade)’의 합성어인 업사이클링은 버려질 뻔한 것을 개선해 새로운 가치를 담는 것이자, 창의적인 재사용 방법을 의미한다. 자원을 재활용한다는 의미의 리사이클링과 달리, 업사이클링의 핵심은 더 나은 질적 가치와 환경적 가치를 가진 물건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업사이클링이란 용어는 1994년 독일의 엔지니어 리너 필츠(Reiner Pilz)가 한 가구 및 건축 전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이지만, 그 개념과 디자인 방법에 대한 논의는 2000년대에 들어서서 시작된다.

업사이클링이라는 용어조차 언급되지 않았던 1993년, 업사이클링의 가장 성공적이며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스위스 프라이탁(Freitag)의 경우, 트럭 위를 덮는 방수포인 타풀린(Tarpaulin) 천과 자전거 튜브, 안전벨트로 만든 메신저 가방을 첫 선보였다. 트럭에 사용되었던 가지각색의 낡은 타풀린 천이 프라이탁만의 독특한 상징이다. 최소 5년 이상 사용된 타풀린으로 가방을 만들었기에 육안으로도 세월의 흔적이 가방에서 보인다. 새 물건 같지 않은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왜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었을까. 나는 취리히 본사 매장에서 다양한 디자인의 가방에 어느 하나 똑같지 않은 패턴과 색상을 실제로 보고 난 후에야 어떠한 매력이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공정의 80%가 수작업으로 제작된 프라이탁 가방은 가방의 재료가 어디서 왔는지, 가방이 되기 전 어떤 삶을 살았는지의 이야기를 담은 설명서가 가방과 함께 동봉되어 있다. 각기 다른 패턴과 화려한 색상들, 단 하나뿐인 가방이라는 희소적 가치, 방수 재질 천으로 인하여 비 오는 날에도 내용물을 안전하게 보호하며 멜 수 있는 가방의 실용성은 윤리적 소비를 원하는 소비자의 마음을 충족하고도 넘친다.

그 누구도 추한 업사이클 제품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업사이클링 할 재미있고 신선한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그것을 받쳐 줄 가공 능력 또한 필요하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국내 최초의 업사이클 산업 공공 인프라 구축 및 공공부문 지원기관인 ‘한국업사이클센터’가 3년 전 옛 대구지방가정법원 자리에 문을 열었다. 학생들의 디자인적 사고와 창의적 표현 능력을 함양시키고자 매년 수업 과정에서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나에게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센터 1층 입구에 들어서면 할머니 집 가구로 취급받았지만 지금은 애물단지가 된 자개장과 버려진 고가구들을 모아 만든 안내데스크가 시선을 사로 잡는다. 1층 한편에는 업사이클의 다양한 재료들의 자료를 정리한 소재 전시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커피 찌꺼기로 만든 테이블, 폐유리병과 버려진 자전거로 만든 조명 등 실제 업사이클 된 제품을 진열해 놓은 전시실이 있다.

업사이클링 제품들이 관심받는 이유 중 하나는 물건에 많은 유머와 아이디어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제품들은 종종 ‘내가 과거에 무엇이었는지 맞춰봐’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공예가들의 상상력과 솜씨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며 너무도 당연하게 폐기하고 또 흔하게 볼 수 있는 쓰레기마저도 과거를 숨길 수 있게 만든다. 쓰레기마저도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두 개의 전시가 있다. 두 전시 다 ‘플라스틱 플라스틱 플라스틱’의 동일 제목으로 이동춘 작가가 2004년과 2017년에 기획한 플라스틱 장신구 전시이다.

친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주며 플라스틱이라는 재료의 잠재적 가능성과 작가들이 만든 조형적 유희가 인상적인 전시였던 2004년의 전시는 나에게 굉장히 신선한 기획의 전시로 기억된다. 2017년 전시에서는 더욱 새로워진 재료적 해석, 조형적 즐거움, 가공 기술로 9명의 작가들의 친환경 메시지와 각기 다른 플라스틱 장신구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특히 색색의 플라스틱 세제 용기를 자르고 쌓고 가공하여 만들어진 이동춘 작가의 브로치들은 플라스틱 재료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감동적 작품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필(必)환경의 시대인 오늘날, 물질 사회 속 생산자로서 공예가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이 전시들을 통해 더 많은 공예가들의 아이디어와 기술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해 공헌하는 소망과 함께, 또한 이러한 작품들이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 윤리적 생산과 소비 등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계명대 공예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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