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90325.010170801000001

영남일보TV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당신에게서 꽃내음이 나네요

2019-03-25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당신에게서 꽃내음이 나네요

꽃내음 가득한 봄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당신에게서 꽃내음이 나네요~’라는 감미로운 가사로 시작하는 ‘사월과 오월’의 ‘장미’라는 7080시절 노래를 기억하시나요? 이 노래는 서로의 체취조차 향기롭게 느끼게 하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심리상태를 잘 표현한 노래 같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는 꽃내음이 나지만, 흥미롭게도 질병을 가진 사람에게선 다른 냄새가 납니다. 이미 기원전 400년경 인류의 의성(醫聖) 히포크라테스는 특정 질병에 걸린 환자의 날숨에서 나는 냄새는 정상인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나라와 중국 전통의학서에도 등장하는데, 환자 날숨 냄새만으로 질병을 진단하는 것은 매우 간편한 진단법이 될 수 있어 그간 이에 관련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실제 질병에 따라 환자 날숨에서는 각기 다른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당뇨를 앓는 환자의 날숨에는 글루코오스와 아세톤이 포함되어 있어 유성 매직 냄새가 나며, 유방암을 앓는 환자는 날숨에 프로판올이 있어 소독용 알코올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날숨을 이용한 진단방법이 뇌질환 진단에도 활용될 수 있을까요? 최근 대표적인 퇴행성뇌질환의 하나인 파킨슨병을 가진 환자 체취에서 정상인과는 다른 향이 난다는 사실을 영국 맨체스터대학의 페르디타 배런 교수와 에든버러 대학의 틸로 쿠나쓰 교수 연구진이 2019년 3월 ‘ACS Central Science’에 보고하였습니다. 이 연구는 평범한 사람과는 달리 아주 뛰어난 후각능력을 소유한 한 영국 간호사의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간호사 조이 밀른은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에게서 사향 냄새 같은 향이 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밀른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남편 체취와 특정 병과의 연관성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과 함께 환자 지원 봉사를 위해 찾은 파킨슨병 환자 병동에서 자신의 남편에게서 나는 향과 환자들에게서 나는 향이 같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밀른은 그 사실을 파킨슨병 전문가인 에든버러대학의 틸로 쿠나쓰 교수에게 이야기하였고, 쿠나쓰 교수는 검증 차원에서 정상인과 파킨슨병 환자가 입었던 티셔츠들을 밀른에게 주고 구별해 보도록 합니다. 밀른은 남편에게서 나는 특이한 향과 같은 향이 나는 티셔츠를 하나 지목하였는데, 놀랍게도 그 티셔츠의 주인은 8개월 후 파킨슨병 진단을 받습니다.

이 발견을 바탕으로 밀른과 쿠나쓰 교수는 화학물질 성분분석 전문가인 맨체스터대학의 배런 교수와 함께 공동연구를 수행하여, 이번에 파킨슨병 환자 몸에서 감지되는 대표적인 화학물질 성분을 밝힌 것입니다. 향후 개발을 통해 이 기술의 완성도가 높아져 기존의 비용이 많이 드는 복잡한 검사 없이 간단한 체취 검사만으로도 퇴행성뇌질환을 진단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밀른 간호사의 뛰어난 후각능력에 따르면 파킨슨병 환자와 달리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서는 옅은 바닐라 향이 난다고 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밀른 간호사처럼 후각이 뛰어나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을 체취만으로 감별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밀른 간호사가 단순히 그녀의 후각능력 덕분에 남편의 파킨슨병 냄새를 알아차린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남편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된 관심이 남편 체취의 변화를 알아차리게 한 것이죠. 오늘 여러분도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만 보지 말고 그 사람의 향을 느껴보기 바랍니다. 그럼 여러분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꽃내음은 물론 어쩌면 여러분이 사랑하는 이의 질병내음을 미리 감지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DGIST 디지스트 뇌·인지과학전공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