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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칼럼] 흥부는 보았지만 놀부는 보지 못한 것

2019-03-26

富는 고정불변아니라 순환
개인의 이익 극대화보다는
상호 호혜적인 상황서 증식
누군가에게 베푸는 행위가
결국 자신에 돌아올 가능성

[3040칼럼] 흥부는 보았지만 놀부는 보지 못한 것

2015년에 금수저와 흙수저, 헬조선, N포 세대 등 사회에 대한 청년의 불만을 반영한 신조어가 대거 등장했다. 2019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신조어에 함의된 자조적인 시각은 유효해 보인다. 특히 금수저, 흙수저와 같은 용어는 수저계급론으로 고착화되면서, 부모 세대로부터 세습된 부(富)의 크기에 따라 인간의 계급을 나눌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되어버렸다. 인간을 판단하는 잣대에 돈이 위치하게 되면서 정작 ‘부’를 소유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점점 소외되고 있다. 마치 ‘흥부전’에서의 흥부처럼 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흥부는 놀부의 동생이다. 놀부는 자신이 장자(長子)임을 강조하면서 부모의 재산을 독차지한다. 흥부는 굶고 있는 사람에게 밥을 주고, 병든 사람에게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주기까지 하는 인물이다. 자신이 속한 마을공동체에 문제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움을 주기도 한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재산을 증식시키거나 그 ‘부’를 이용해서 어떤 종류의 이익도 추구하지 않는다. 돈을 모으고 불리는 데 삶의 초점을 맞추던 놀부에게 이런 흥부의 행동은 언짢게 보일 수밖에 없다. 흥부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존경하며 이웃 간의 화목과 친구 간의 신의를 지키는 인물로 평가되지만, 놀부에게 있어서 흥부는 자신의 재산을 갉아먹는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흥부를 집에서 쫓아내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시작된 흥부의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곳저곳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빌어먹는 삶으로 연명해야 했던 흥부는 어느 날 아내와 의기투합하여 온갖 품을 팔기 시작한다. 그러나 각종 잡일까지 도맡아 해도 하루 먹을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급기야 돈을 받고 남의 매를 대신 맞아주는 ‘매품 팔기’까지 시도한다. 눈물로 만류하는 아내를 뒤로 하고 겨우 감영(監營)으로 향하지만, 생존을 위한 마지막 보루였던 매품 팔기도 실패하고 만다. 심술궂은 놀부는 가산을 모두 차지하고 호의호식하는데, 착한 심성을 지닌 흥부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역전시킨 것이 바로 ‘제비 박’이다. 흥부는 구렁이에게 잡아먹힐 뻔한 제비를 구해주고 박씨를 선물로 받는다. 그 박에서 나온 재물로 순식간에 부자가 된 흥부의 모습에서 ‘흥부전’을 향유하던 당대 민중의 소망을 확인할 수 있다. ‘선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논리를 긍정하듯, 제비 박이라는 환상적인 장치를 통해 흥부의 운명을 한순간에 뒤바꿔놓은 것이다.

그런데 ‘흥부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비 박은 요행처럼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가난한 와중에도 동물에게까지 은혜를 베푼 흥부의 행위는 집에서 쫓겨나기 전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었던 선행의 연장선상에 있다. 제비 박은 선(善)이라는 윤리적 가치가 부(富)라는 경제적 관념과 무관한 것이 아니며, 누군가에게 베푸는 행위는 단순히 부의 증여에서 머물지 않고 순환하면서 증식된 형태로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래서 부자가 된 흥부는 “부자라고 자세(藉勢)말고 가난하다고 한(恨)을 마소”라고 외친다. 흥부는 ‘부’라는 것이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며 언제나 순환해야 함을 적시한다.

놀부는 억지로 제비의 다리를 분지르고 다시 치료해줌으로써 제비 박을 얻어내지만, 오히려 제비 박에서 우르르 몰려나온 사람에게 자신의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마지막에는 똥물까지 뒤집어쓴다. 반짝이는 금을 원했지만 놀부가 얻은 것은 금보다 누런 똥물이었다. 흥부와 다르게 ‘부’를 독점하고자 한 놀부의 욕망이 결국 그의 삶을 패망으로 이끌었다.

‘흥부전’은 흥부와 놀부의 교차되는 삶을 통해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보다 상호 호혜적인 관계망 속에서 ‘부’가 순환되어야 한다는 당위를 역설한다. 태어났을 때 손에 쥐어진 수저의 색이 금빛을 띠더라도, 그 수저에 집착하는 순간 언제든지 똥물을 뒤집어쓸 수 있음을 ‘흥부전’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흥부는 보았지만 놀부는 보지 못한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부’를 대하는 삶의 태도에 따라 제비 박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신호림 (안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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