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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시선] 직장 내 성희롱은 노동안전권의 문제

2019-06-20

근본적 환경개선 외면한채
성희롱에 대처하는 방법만
직원들에 가르치면 뭐하나…
사업주의 배려차원이 아닌
책임의 문제임을 명심해야

[목요시선] 직장 내 성희롱은 노동안전권의 문제

‘나체로 문을 열었을 때’ ‘안전점검 중 하의를 벗은 모습을 봤을 때’ ‘안전점검 중 갑자기 등 뒤에서 몸을 밀착했을 때’ ‘큰 개를 잡아달라고 부탁하고 옆을 보니 하체를 다 벗고 있는 고객을 봤을 때’ ‘입구에 문을 열어놓고 들어갔는데, 문 잠그는 소리가 들릴 때’ ‘내 스타일인데 놀고 가죠?’ ‘애인 할래요?’ ‘가스 점검 중에 슬쩍 엉덩이를 만지는 경우’ ‘예쁜 아줌마 몇 살?’ ‘점검 후 나가려는데 껴안는 경우’ ‘점검하고 있는데 음담패설을 하는 경우’. 현재 울산 공공운수노조 경동도시가스 고객서비스센터 분회에서 파업을 하면서 나온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고객에 의한 성희롱 내용이다. 경동도시가스 고객서비스센터 분회는 ‘2인 1조 근무’ ‘안전점검 예약제 실시’ ‘성범죄자와 특별관리 대상 가구 고지’ 등의 대책을 요구했다. 한 안전점검원은 “누가 나가 죽어야 이 환경을 바꿔줄거냐”며 울부짖었다.

지난 5월 모 연수원에서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의뢰받았다. 모 기업 고객지원팀의 도시가스검침원, 상담사, 시설기사를 대상으로 3번을 나누어 교육하기로 했다. 첫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연수원 담당자가 필자에게 잠시 좀 보자고 하더니 “내일 강의 때는 오늘 강의 가운데 한 말 중 ‘노조’ 이야기는 빼 주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왜요?”라고 묻자 “오늘 저희 연수원에 신청한 기업의 사장이 직접 오셔서 들었는데, 이 기업은 노조가 없는데 노조 이야기를 해 사장님이 불편해 합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강의를 듣던 검침원들과 울산의 도시가스검침원들이 소리낼 수 있었던 이유가 노동조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 건 당연한 사실인데, 굳이 노동조합 이야기를 안 하는 조건으로 강의하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반사회적인 것도 아니고 노동자들의 법적 권리인데 굳이 말하지 말라고 하니 저는 승낙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결국 집으로 돌아온 지 1시간 만에 내일 강의를 다른 강사에게 맡기겠다고 취소 전화가 왔다.

사실 성희롱예방교육을 하면서 노동조합 이야기를 한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번 교육대상자는 가스 안전검침원이 대다수였고, 필자에게 의뢰한 기업의 교육 목적이 ‘직원과 고객의 안전 최우선 가치 실현’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또한 직장의 성희롱을 예방하고 근로자의 안전한 근로환경 및 건전한 문화 조성을 기대효과로 본다는 기업의 교육목표는 그저 형식적인 표현일 뿐이었다.

울산지역에서 파업이 일어나기까지 몇 년간 수없이 요구했던 안전한 근로환경을 기업은 이런저런 핑계로 외면했으며, 그나마 노동조합을 통해서 약자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을 그날 강의를 듣고 있던 모 기업의 안전검침원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개인이 잘 대처할 수 있는 방법만을 이야기하라고 전하는 기업의 사장과 책임자들은 노동자들을 대체 어떻게 보는 것일까.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이 수년째 10% 수준을 맴돌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의 노조가입은 2%도 되지 않으며,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정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그런데도 종종 ‘대한민국은 강성노조 때문에 기업하기 힘든 나라’라는 소리를 듣곤 한다.

경동도시가스는 울산지역에 독점으로 가스를 공급하며 2017년 270억원, 2018년 34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흑자를 낼 수 있는 것은 가스요금원가 산정에서 과도한 이윤을 책정했거나, 회사가 노동자들의 노동을 과도하게 착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울산시의회 박병석 의원은 지적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에 가입되었건 아니건 직장 내 성희롱은 노동(자)의 안전권 문제이다. 안전에 대한 근본적인 환경 개선을 외면한 채, 직원 개인에게만 성희롱에 대처할 수 있는 대응방법을 말하는 직장 내 성희롱예방교육은 껍데기다. 결국 성희롱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직장에서 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를 제기하는 것이며, 사업주의 배려가 아닌 책임의 문제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승연 (소우주 작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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