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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호기자의 법조이야기 .28] 향기로운 사람, 최재형 판사

2006-09-15

양심을 생명처럼 여기는 법조인
몸으로 사랑 실천하는 독실한 기독교인
친자식에다 가슴으로 '둘' 입양해 길러

[최영호기자의 법조이야기 .28] 향기로운 사람, 최재형 판사

법조계에서 '영원한 대법원장'으로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 가인(街人) 김병로 판사다.

대법원장 재직 중에 이승만 대통령이 현역 대위를 권총으로 쏘아죽인 피고인에게 1심 법원이 정당방위라며 무죄를 선고하자 "어떻게 그게 무죄냐"며 항의한 적이 있다. 가인은 "판사가 내린 판결은 대법원장인 나도 뭐라 못한다. 유죄라면 항소하라"고 맞받았다.

가인을 '대법원에 있는 헌법'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인이 헌법 원칙을 들어 정부를 사사건건 견제하는 걸 비꼰 말이다. 가인은 1957년 "사법 종사자들에겐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굶어 죽는 게 영광"이라는 말을 남기고 물러났다. 그 자신이 국산 담배를 꼭 반으로 잘라 나눠 피우고, 기름을 때는 공관에서도 톱밥과 연탄으로 겨울을 났다.

60년대 서울고법원장까지 지낸 김홍섭 판사는 남대문시장에서 사서 집에서 물들인 군 작업복에 흰 고무신 차림으로 출근하곤 했다. 어쩌다 입는 양복도 남대문시장에서 구입한 헌 옷이거나 장인의 옷을 줄인 것이었다. 김 판사는 후배들에게 "직장이나 동료에 불명예를 끼치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고 어떤 이득이나 특권도 탐하지 말라"고 했다.

조진만 대법원장은 61년 취임하자마자 판결문과 법원 기록을 모두 한글로 적으라고 지시했다. '한글만 아는 국민도 법을 읽고 이해해야 법 질서가 바로 선다. 어려운 말로 유식한 체하는 습관 때문에 법률문화가 뒤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법조계에는 이처럼 삶의 귀감이 된 인물들이 많다. 최근까지 대구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다 서울고법으로 자리를 옮긴 최재형 판사도 후배들이 존경해 마지않은 '향기로운 사람'이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그는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는 판사다.

경기고 재학시절 다리가 불편한 친구를 등에 업고 등교시킨 일화는 '경기고의 전설'이 됐다. 중학교 때 교회에서 만난 친구가 수술 후유증으로 1년 늦게 경기고에 입학하자, 신촌에서 경기고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 몸 등교'를 했다. 그리고 81년에 나란히 사법시험에 합격,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됐다. 친구는 변호사의 길을 가고 있지만, 지금도 두 사람은 같은 교회 장로로 일하며 우정을 키워가고 있다.

최 판사의 친구인 강명훈 변호사는 "최 판사는 신이 보낸 천사이며, 법조인의 양심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최 판사는 슬하에 2명의 자녀가 있는 데도 2명을 입양했다. 최 판사는 입양의 계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하나님의 뜻"이라고만 짧게 대답했다. 그러나 첫 아이 입양날짜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올해 대구고법으로 전보온 뒤 또 한 명의 자녀를 봤다. 김천 모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던 사내아이를 가슴으로 안았다.

최 판사는 2001년 사법연수원에서 발행하는 잡지 '미네르바'에 기고한 '입양 이야기'에서 자신의 마음을 내비쳤다.

"저희에게 한 가지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좀 더 많은 아이들이 가정을 갖게 되고 나아가 우리 아이 주위에도 그런 친구들이 많이 생겨, 나중에 아이들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에 크게 가슴앓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모든 사람들에게 입양하기 전에는 '입양, 우리의 부담'이었으나, 입양한 후에는 '입양, 우리의 기쁨'이 됐으면 합니다."

최 판사는 '소신판결'로도 유명하다. 올 2월 구체적인 설명 없이 '부적격 교사' 명단을 공개해 해당 교사 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임원 5명에게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들의 명단을 공개한 것은 전교조나 명단 내 교사들을 비방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학습권 등 공공의 문제를 다루려는 목적이었고, 명단 내용도 대체로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6개월간의 짧은 대구생활 가운데서도 후배 법조인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남겼다. 최 판사가 사법연수원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자신에게 배운 후배 법조인들이 식사를 대접하려 하자 식사 대신 이들에게 책 한 권씩을 선물했다. 각각 다른 책을 선물받았지만, 적혀진 메모 내용은 같았다.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법조인이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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