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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日帝의 축구통제령과 바보축구

2008-03-17
[아침을 열며] 日帝의 축구통제령과 바보축구

혹시 '축구통제령(蹴球統制令)'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는지? 이 생소한 이름의 법령은 일제강점기인 1934년 조선총독부가 만든 작품이다. '아니~ 축구를 법으로 못하게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의아해 할 분이 많겠지만, 그때는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는 조선점령 초기에 무력(경찰·헌병)을 앞세운 살벌한 무단통치(1910~1919년)로 조선인의 기개(氣槪)를 짓눌렀다. 그래도 나라를 찾겠다는 민초의 저항은 3·1운동을 위시한 항일운동으로 계속되자 문화말살로 민족분열을 획책하기 위한 문화통치(1919~1931년)를 자행하였다. 축구통제 역시 그러한 정책의 연장선상이었다.

일제가 축구를 통제하려 했던 속사정은 무엇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축구경기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혹시라도 군중소요를 일으킬까 겁이 났고, 조선인의 축구 실력이 일본인을 압도하자 축구장이 나라 잃은 울분을 해소하고 민족 자긍심을 회복하는 장소로 거듭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관서체육회장 조만식(曺晩植) 선생을 위시한 민족지도자들의 강력한 반대로 법령의 시행은 무산되었지만, 그 시절의 우리 조상들은 공놀이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축구는 조선 말기인 1882년, 인천항에 들어온 영국 군인을 통해 소개되었다. 이어서 1902년 배재학당이 최초로 축구부를 만들었고, 1921년에는 제1기 전조선축구대회가 열렸다. 특히 1929년부터 시작된 경평(京平)축구대회(서울-평양간 지역대항전)는 경기장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을 만큼 인기였다. 이때부터 일제는 본격적으로 문화 탄압에 돌입하였다. 발을 묶기 전에 먼저 입부터 막았다. 1931년 11월, 경산의 자인공립보통학교에서 한국어수업을 최초로 금지시켰다. 1938년의 제3차 조선교육령에 의한 전면금지 이전의 시범지정이었다. 우리 고장이 제일 먼저 민족정체성 말살을 위한 목적타를 맞은 것이다.

한편 의욕적으로 추진한 축구통제령이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일제는 축구를 강제로 막기보다 야구를 더 널리 전파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야구는 일본이 우리(1905년)보다 훨씬 일찍 도입(1870년)해서 당연히 우위였으며, 조선에서 야구 보급을 확대해 자국의 문화지배력을 높이려 한 것이다. 억지로 이름을 붙이면 '숭야억축(崇野抑蹴)'정책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먼저 전국 주요 고교에 야구부를 만들었다. 1940년대 후반까지 전국 고교의 팀 창단 현황을 보면, 야구(20개)가 축구(12개)보다 더 많고, 특히 야구는 지역 명문학교가 주축이었다.

조선 축구가 일제에 미운 털이 박히다 보니 '축구'라는 단어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오래 전 경상도지방에서는 조금 모자라는 행동을 하는 이를 일컬어 '야~ 이 바보축구야~'라며 놀려대곤 했다. 여기서 축구가 왜 나왔을까? 불교용어인 축괴(逐塊: 흙덩이를 쫓아가는 개의 바보스러운 행동)나 온갖 짐승을 일컫는 축구(畜狗)등이 어원이라고 하지만, 축구를 바보짓으로 비하했던 일제(친일파)의 창작이라고 판단된다.

훗날 축구와 야구는 국내를 대표하는 인기 프로스포츠의 양축으로 발전하였지만, 그 인기의 근간은 서로 달랐다. 축구가 국가대항전(애국심) 위주로 인기를 얻은 반면, 야구는 사회지도층들의 관심과 후원 속에 성장한 고교야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그 열기는 그대로 프로야구(1982년 출범)로 이어졌다. 프로야구가 출범 초기부터 프로축구(1983년)의 인기를 앞선 데에는 확실한 지역연고제(애향심)가 큰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인 축구·야구의 동시 강국이 된 데에는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3·1절이 있고 프로축구도 개막하는 3월을 맞아, 불행했던 역사를 되돌아보니 좋아하는 운동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현실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피부로 느낀다.

◇최종준(프로축구 대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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