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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 문·이과 통합과 메디치 효과

2014-11-03
[월요칼럼] 문·이과 통합과 메디치 효과

에어컨 없는 대형 쇼핑몰
르네상스 이끈 메디치家
학문 장벽 헐고 이룬 성과
문·이과 통합-인문학 열풍
진지한 성찰이 전제돼야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의 이스트게이트 쇼핑몰에는 에어컨이 없다. 그런데도 이 10층짜리 쇼핑몰 내부는 언제나 24℃를 유지한다. 바깥 온도가 40℃에 이르는 데도 쇼핑몰이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은 독특한 건물 구조 때문이다. 건물 꼭대기에 여러 개의 수직 굴뚝을 설치해 더운 공기를 빼내는 한편, 아래층을 모두 비워 신선한 공기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도록 했다. 건축가 믹 피어스는 아프리카 흰개미집의 환기 시스템에서 착안해 이런 건물을 지었다. 짐바브웨 출신인 피어스가 흰개미의 생태환경을 알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스트게이트 쇼핑몰은 건축과 생물학이 만난 결과물이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면서 비잔틴제국의 수많은 학자가 이탈리아 피렌체로 몰려들었다. 당대 유럽 최대 부호인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데 메디치가 예술인과 과학·철학자들을 열렬히 후원했기 때문이다. 메디치가에 난민처럼 몰려든 학자들 사이에 토의와 논의가 이뤄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전혀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 사이에 자유로운 학습이 이뤄졌다. 일종의 포럼을 형성한 학자들은 다른 영역을 넘나들며 한껏 창의성을 발휘했다. 피렌체가 융합을 통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래서 전혀 다른 역량으로 생겨나는 창조와 혁신을 ‘메디치 이펙트’라고 부른다. 하라레 쇼핑몰은 메디치 이펙트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사례다. 그러나 융합을 통한 혁신으로 가장 주목을 끈 인물은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다. 2011년 3월 아이패드 출시 설명회에서 잡스는 “사람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애플의 DNA는 기술과 인문학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우리기업들이 융합과 인문학에 본격적인 관심을 쏟은 것은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통합적 사고를 통해 성과를 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흐름이다.

우리사회엔 인문학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과학과 경영에 바야흐로 인문학의 옷을 입혀야 한다는 것이 요즘 기업들의 생각이다. 대기업 입사시험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묻고, 인문학 강좌는 길거리에 널렸다. 무슨 ‘레터’란 형식의 인문칼럼이 아침마다 e메일함에 서너 편씩 들어오고, 인문학 강사들의 인기가 스타 연예인 못지않게 치솟고 있다. 이를 인문학의 부활이라고 반기는 기류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최근 열풍은 어딘가 불편하다. 그런다고 갑자기 인문학적 소양이 깊어질 리 없다. 느닷없이 나타나 물건을 팔고 날렵하게 사라지는 흥행몰이가 아닌지 걱정이다.

교육부가 얼마 전 고교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확정안을 발표했다. 모든 고교생이 문·이과 구분 없이 사회·과학 분야 과목을 통합교과서로 배우게 된다는 것이 골자다. 통합과정은 현재 초등 6학년생이 고교에 진학하는 2018년부터 적용된다. 공교육 정상화나 학습부담 경감으로 모아지던 교육정책이 교과내용으로 방향을 돌렸다. 인문·과학에 대한 통합적 사고 없이 국가경쟁력을 강화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과목의 칸막이를 없애고 울타리를 낮춘다는 면에서 일단은 합당한 변화다. 다만 이를 어떻게 준비하고 뒷받침할 것인지는 숙제다.

고교 문·이과 통합과 인문학 열풍은 인문/과학으로 분리된 학문의 통섭을 추구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또 그것은 우리 내부의 진지한 성찰에서 나와야 마땅하다. 하지만 인문학을 대하는 우리 대학과 기업의 행태는 지극히 이율배반적이다. 이래서는 메디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저 잡스라는 천재의 그림자를 따라가는 것에 불과하다.

박경조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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