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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상의 우리家 행복한家] 양성평등과 새로운 가족운동

2015-10-15
[이제상의 우리家 행복한家] 양성평등과 새로운 가족운동

개인 측면서 양성평등 이룬 한국
반면 부부 간 性불평등은 고착화

저출산은 ‘극과 극 대비’의 산물
새 가족운동으로 부부 성평등을

로버트 드 니로와 앤 해서웨이가 주연한 영화 ‘인턴’을 봤다. 기업 부사장까지 지내다가 은퇴한 70세 벤이 30세 여성 CEO 줄스가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 회사에 ‘시니어 인턴’으로 채용되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그린 영화다. 필자에게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여주인공 줄스는 사장이지만, 그녀의 남편은 전업주부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줄스가 일과 가정 사이에서 힘들어할 때, 벤이 가정을 위해서 회사를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보기 힘든, 외국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스토리다. 한국은 현대사회의 남녀 간 성역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양성평등을 꺼내면 머리부터 아픈 남성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입으로 양성평등을 외치고 남성을 돈 벌어오는 사람으로 여기는 여성들도 아직 많다. 양성평등은 한국 사회에서는 극과 극을 달린다. 남녀 개인 측면에서는 사실상 양성평등을 이루었지만 부부, 즉 가족 측면에서는 정반대로 성불평등이 고착화되어 있다.

개인 측면에서 보면 남녀 사이에 차별이 없다. 2014년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74.6%로 남성(67.6%)보다 높았고, 여성이 2009년 남성을 앞지른 후 그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거나 경제적으로 재산권을 행사하는 데 동등하다. 1999년 말 군가산점제가 위헌결정을 받았고, 2005년 가부장적 호주제가 폐지되었다. 기회의 균등이 보장되는 공무원 시험이나 교사 임용시험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압도하고 있다. 결혼 교육 건강 등 개인 측면에서 선진국 수준의 양성평등이 실현되고 있다.

그러나 부부, 즉 가족 측면에서 보면 실질적 양성평등은 바닥 수준이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취업해서 일하는 가족생활을 영위하는 측면에서 그 수준이 지극히 낮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4년 성격차지수(Gender Gap Index)에서 한국은 142개국 가운데 117위이고, 우간다·네팔·쿠웨이트·스리랑카보다도 낮다. 높은 수준의 양성평등을 보여주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성불평등지수는, 개인 측면의 교육 건강 비중이 높게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양성평등 수준을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꼴찌 아니면 그다음이다. 2013년 성별 소득격차가 36.3%로 가장 높고, 2위 일본(26.5%)과 3위 포르투갈(16.3%)을 현저히 따돌리고 있다. 남성 대비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일본, 이탈리아와 함께 7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여성 대비 남성의 가사노동분담률은 19%로 OECD 평균(53%)에 한참 못 미친다.

특히 일하는 여성에 대한 양성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유리천장지수(Glass-ceiling Index)’가 2014년 25.6으로 꼴찌인 데다 OECD 평균(60.3%)과 비교하기도 부끄럽다. 여성이 아이 키우며 일하기 가장 힘든 나라다.

한국의 양성평등이 개인에게는 선진국 수준이지만 가족으로 보면 개발도상국, 그것도 저(低)개발도상국 수준이다. 극과 극으로 대비되는 이 상황이 사회적으로 빚어내는 비극으로는 저출산이 대표적이다. 결혼을 늦게 하고 아이를 적게 낳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워킹맘의 출산율이 2013년 0.74명이다. 워킹맘이 아이 1명을 낳아 키울 수 없다. 정부도 학자도 국민도 모두 ‘돈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구조적인 성 불평등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양성평등 수준이 출산율을 결정하는 요인이란 주장이 최근 서구 학계에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저출산이 세대갈등, 교육, 주택 등 대부분의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대학시절 가부장제 타파를 외쳤던 여성운동(페미니즘)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았던 필자에게 이제야 여성운동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21세기 들어 여성운동이 이주여성, 성소수자운동 등 다양성 담론으로 분화해갈 것이 아니라, 양성평등 문제로 되돌아와 남성과 함께하는 새로운 가족운동을 전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전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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