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위해 몸 바친 그날의 167명…서훈 받지 못한 인사 40% 넘어
광복절을 앞둔 지난 12일 대구 상원고 학생들이 모교 전신인 대구공립상업학교 학생이 주축이 돼 벌인 태극단 학생독립운동을 기리며 기념탑에 헌화를 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
일제강점기 대구지역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독립운동가의 학교별 명단이 최초로 공개돼 주목을 받고 있다. 앞으로 이들에 대한 선양사업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일제 눈 피해 비밀 활동했는데
증빙자료 부족 등 이유로 제외
학교별 현창사업 적극 나서야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실질적 고증 작업 벌여
최근 영남일보는 ‘출신학교별 독립운동가 명단’을 단독 입수했다. 권영배 계명대 겸임교수(사학과)가 주축이 된 모임(이하 연구모임)이 각종 사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이 자료에는 과거 대구지역 중등학교 등 11개교 출신 독립운동가 167명에 대한 정보가 명시돼 있다.
연구모임 측은 “대구는 3·1운동부터 광복에 이르기까지 다른 어느 지역보다 독립운동을 통한 항일투쟁이 활발했지만, 이들에 대한 현창사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이에 해당 학교를 비롯해 교육 당국 등이 나라를 위해 몸 바친 독립운동가를 기리도록 학교별로 명단을 작성했던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국가보훈처에 등재돼 있는 독립운동가 자료(공훈록)를 근거로 했다. 이 명단을 바탕으로 각종 사료를 통해 추가로 검증 작업을 벌였고, 다시 학교별로 분류한 것이다.
권 교수는 “(국가보훈처에)등록이 안 된 사람도 많았다”면서 “하지만 이들과 함께 활동했던 인사의 이름이 국가보훈처에 올라있는 경우도 발견됐기 때문에 추가 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은신하느라 주소지가 불분명한 경우를 비롯해 자료를 확인할 수 없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에 연구모임은 학교별 역사가 정리된 고문헌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각 학교를 찾아 졸업생에 대한 내용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경북고의 전신인 대구고등보통학교 등은 학교에 불이 나면서 학적부와 같은 자료가 불에 타 없는 경우도 있었다. 연구모임은 생존자 증언이나 묘비 등을 확인하기도 했다.
객관성을 확보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검증 작업도 여러 단계를 거쳤다. 학적부 등을 통해 확인한 자료는 독립운동에 대해 명시한 각종 문헌과 여러 학자들이 쓴 논문 등을 통해서 추가 확인 작업이 이뤄졌다.
연구모임 측은 “가령 ‘대구공립상업학교’의 경우 ‘태극단 학생독립운동’이, 또한 ‘대구사범학교’는 ‘대구사범학생 독립운동’이라는 문헌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후손이 있다면 찾아가서 조언을 구했고 묘비명을 확인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167명 중 비(非)훈격 인사 71명에 달해…학교별 현창 사업도 제각각
이처럼 학교별 독립운동가 명단이 어느 정도 완성됐지만, 훈장 등이 수여된 경우는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연구모임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67명의 학생 독립운동가 중 96명(57.5%)에 대해서만 훈격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나머지 71명(42.5%)에게는 표창이나 훈장이 전달되지 않았다.
권 교수는 “국가보훈처에서 정한 기준(형량 등)에 못 미치거나 증빙 자료가 없어서 서훈을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후손이 없거나 찾지 못한 사례도 있다”며 “이와 함께 사상적인 이유로 빠진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즉, 검증 작업이 여의치 않아 훈격을 ‘정하지 못한’ 경우도 있겠지만, 기준과 어긋나기 때문에 훈격을 ‘정하지 않은’ 사례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가보훈처 공훈심사과 관계자는 “독립운동의 내용을 판단한 후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포상 여부를 정한다"며 “월북한 경우엔 포상을 하기 힘들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자진해 북으로 넘어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희곤 경북독립운동기념관 관장도 “서훈을 인정받지 못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정부가 정한 포상기준에 미달하거나 독립운동 후의 행적이 친일이나 월북 등으로 반정부적인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며 “자진 월북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정부 기관의 기준은 명확해야 하므로 우리 정부는 자발적 월북자는 포상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에 영남일보가 확인한 자료는 최근 대구시교육청에도 전달됐다. 대구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내 학교별로 독립운동가의 명예 선양 작업을 벌일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선양 움직임은 천차만별이었다. 학교 역사관에 별도의 부스를 마련해 전시하는 등 헌액을 하는가 하면, 홈페이지에 게시하거나 학교 게시판을 활용해 알리는 정도로 그치기도 했다.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친 ‘자랑스러운 선배’를 기리기 위해 보다 공을 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사철 대구상원고 교장은 “올해 광복절을 맞아 얼마 전 학생들과 함께 학교 안에 있는 ‘태극단 추모비’를 참배하고, 깨끗이 청소하는 시간을 가졌다”며 “대구에서 많은 학생들이 자발적이고 조직적인 항일운동을 벌였다는 사실을 이번에 새롭게 알고 적잖이 놀랐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역사는 미래의 열쇠다. 하지만 요즘 학교가 입시만 강조하면서 역사에 관심을 못 가지고 있어 안타깝다”며 “‘독립운동사’는 사실상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전부”라며 “우리 후손들이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살아가는 데 중요한 하나의 기준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경열기자 bky@yeongnam.com
최보규기자 choi@yeongnam.com
대구 학생들이 결성한 항일단체
●태극단= 1942년 대구공립상업학교와 인근 학교 재학생 26명이 모여 민족해방을 목적으로 만든 독립 결사단체다. 이들은 무장항일투쟁을 준비하다 이듬해 5월 단원 전원이 체포됐다. 태극단 학생독립운동은 1920년대 광주학생의거와 함께 대표적인 학생독립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적우동맹= 1928년 2월26일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를 중심으로 대구공립농림학교와 대구공립상업학교 학생들이 모여 조직했다. 신우동맹으로 1927년 11월15일 창립됐다가 그해 말 혁우동맹으로 개편된 이후 적우동맹, 일우동맹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무우원= 1940년 대구사범학교에서 조직된 항일비밀단체.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행복한 나라’를 만들자는 취지로 불교정신을 통해 정신적 강화와 결합을 도모했다. 유대인처럼 경제력을 길러 독립을 쟁취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손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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