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5(일)

“순종 남순행 당시 일본군복 입어…동상의 대례복은 역사 왜곡”

| 2017-08-31 07:34:50

■ 순종 어가길 논란 확산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를 비롯한 23개 지역시민단체가 29일 대구시 중구 달성공원로에서 개최한 '순종 동상 철거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후 동상 철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 재난이나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여행이다. 역사를 바로 보자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최근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비무장지대(DMZ), 제주4·3 평화공원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대구에서 다크 투어리즘을 표방하며 조성된 ‘순종황제 어가길’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그 이유를 살펴봤다.

◆2008년부터 추진

2008년 12월, 대구 중구청 상황실에서 ‘순종황제 어가길 역사적 고증과 활용방안 연구’ 용역 중간보고회가 열렸다. 용역의 연구책임자는 김재원 영남대 문학박사(영남불교문화연구소장), 공동연구자는 김일수 한국역사연구회 연구회원(성균관대 대학원 문학박사)과 김호동 영남대 독도연구소 연구교수(영남대 대학원 문학박사)가 참여했다. 이때 순종 어가길의 역사적 복원과 관광자원화에 대한 논의가 처음 이뤄졌다. 앞서 아파트 개발업체의 한 관계자가 대구 도심 역사를 담은 책 ‘대구 신택리지’(거리문화시민연대 지음)에 실린 순종 어가길의 내용을 발견하고, 옛 전매청 부지와 일대를 개발하기 위한 명분으로 다크투어리즘을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용역 연구책임자인 김재원 박사는 “(순종 어가길에) 일본의 의도가 깔렸지만, 순종 순행 이후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 애국계몽운동, 객사사수운동 등이 전개됐다”며 “순종 어가길이 관광자원으로 잘 활용되면 ‘번영의 길’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
5월부터 “친일사업” 지속 비판
동상 우상화 문제점 등 지적

중구청 사업백지화 불가 입장
“고증했고 친일미화 의도 없어”



윤순영 중구청장도 당시 “순종 어가길의 조명은 일제의 침탈에 맞선 민족운동의 의미를 역사적으로 재인식하고 식민지 시대 대구 모습의 복원을 통해 대구의 근대모습을 재현하는 역사적 의미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이후 순종 어가길 복원사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2012~2013년에는 역사·지리·문화재 등 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들로부터 역사고증 자문 및 감수도 거쳤다. 용역을 맡았던 김재원 박사는 수필작가, 한국학 수업을 듣는 학생, 문화산업기업 관계자 등을 모아 다크투어리즘의 필요성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순종황제 어가길 조성사업은 2013년 국토교통부 도시활력증진지역개발사업 공모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중구청은 올해까지 5년간 70억원(국·시비)의 예산을 들여 수창동~인교동 일원 2.1㎞를 꾸몄다. 순종이 다녀간 북성로에 쌈지공원을 만들고 민족지사 양성소였던 우현서루 터와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인 광문사 터(현 수창초등 후문 대성사 자리)에도 공원을 만들었다. 노후된 하수관거 정비, 가로등과 보안등 설치, 가로수 식재, 보도 및 인도 정비 등 공구골목의 환경개선사업도 이뤄졌다.

논란이 불거진 건 순종어가길 복원사업이 마무리된 뒤였다. 민족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대구지부는 지난 5월 순종 어가길 사업을 ‘반민족·친일역사 선양사업’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연구소 측은 “일제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식민지 지배를 앞당기기 위해 조선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을 꼭두각시로 내세운 행차였다”면서 “일본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선전해야 했던 비극적인 여행이다. 지금이라도 순종 어가길 사업을 전면 백지화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중구청은 “굴욕의 역사도 직시해야 한다”고 맞섰다.

◆순종 동상 역사왜곡 논란

순종 어가길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달성공원 앞에 설치된 5.5m 높이의 ‘순종황제 동상’이다. 동상은 대례복을 입은 순종의 모습인데, 방문 당시 복장은 제국군복을 입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중구청은 2015년 5월 순종 어가길 상징 조형물 공모를 통해 작품 6점을 심사했다. 평가위원 7명이 매긴 점수를 합산한 결과, 김기로·양세훈·양장원 작가의 작품이 선정됐다.

작품 설명문에는 ‘남순행 당시 순종의 복장은 제국군복이었으나, 백성을 걱정하는 왕의 마음과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근엄한 대례복을 입은 모습으로 설정했다’고 적혀 있다. 이에 중구청은 ‘비극으로 얼룩진 역사를 억지로 들추어내는 게 아니라 과거를 반성하고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소망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공모에서 ‘달성토성의 경관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조형물’이라는 조건을 내건 것이 화근이었다. 중구청은 공고문과 제안요청서에 순종 어가길에 대한 설명을 붙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접수된 작품 6점(순종 어가행렬을 묘사한 조형물, 대례복·제국군복을 입은 순종 동상, 왕을 상징하는 용과 봉황을 묘사한 조형물, 신천과 분지를 형상화한 조형물 등) 모두 다크투어리즘의 성격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예비평가위원 21명 중 추첨을 통해 선정된 평가위원 7명은 역사학자가 아닌 건축과 미술 관련 전문가들로, 역사 고증보다는 조형미에 심사의 초점을 맞춘 것이다.

역사 고증을 위한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조형물을 설치할 경우 미술작품심의위원회를 거치거나 건축법에 근거한 동상 기념비 조형물 관리조례를 따라야 하는데 순종 동상은 해당사항이 아니다. 대구시 관계자는 “순종 동상 건립에 있어 대구시에서 자문할 법적 근거가 없다. 중구청이 자체적으로 고증을 마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소 측은 동상을 세우는 것이 우상화의 의미를 담는데 치욕을 겪은 순종 동상은 부당하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연구소는 순종 동상 철거운동을 시작으로 순종 어가길 조성사업의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고 나설 계획이다. 순종 어가길 조성사업이 아픈 기억들을 반성과 교훈으로 삼아 역사를 재인식하기 위한 다크투어리즘의 취지와 부합하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중구청은 동상 철거를 비롯한 순종 어가길 조성사업의 백지화 불가라는 입장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순종 어가길은 수창동~인교동 일원을 역사문화가로로 만드는 것인데, 시선이 순종 동상에만 집중돼 있다. 2008년부터 전문가들을 통해 역사 고증을 거쳤고, 친일 미화 의도도 없다”며 “순종 어가길 조성사업은 10년 전부터 진행해왔는데, 왜 이제 와서 백지화하란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동순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67)는 “중구청은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안목과 양식을 갖춘 시민대표, 지식인들로 구성된 특별심사위원회를 열어 속히 논란을 종결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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